이름을 짓고 나니 막상 할 일이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사업이란 것을 시작할 마음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직접 발로 뛰며 영업을 하면 되지 않냐 할 수 있겠지만 회사 이름으로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 없이 '저희 좀 써주세요'라고 말을 할 만큼 나는 씩씩하지 못했다.
야심 차게 이름을 지은 후 우리는 별다른 성과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렇게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회사일에 열중했고 친구도 학교 강의에 집중했다.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당시 뭐라도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우리는 공개입찰 및 지원사업 제안서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중 천만 원짜리 국가지원사업의 최종 수행팀에 들게 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는 간단했다. 아트 스트리트 프로젝트(Art Street Project)라는 사업으로 당시 충남에는 한창 도시재생사업으로 크고 작은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 중이었는데 그중 우리가 실행하게 된 일은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는 칙칙한 원도심 지하도를 *슈퍼그래픽을 활용해 탈바꿈하는 일이었다.
*슈퍼그래픽은 1960년대 즈음 나타난 환경디자인의 일환으로 건물 벽면이나 큰 옥외공간 등에 컬러, 패턴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일로 얻은 수익은 제로였다. 완전히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디자인이야 늘 하던 일이니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우리를 신뢰하지 못했던 클라이언트의 관리와 예산관리, 이 두 가지가 문제였다
한 달 월급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내가 사업비를 관리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또 국가지원금으로 실행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사용내역 영수증과 서류 준비 등 거쳐야 할 페이퍼 워크들이 많았으며 여기에 촉박한 일정으로 디자인, 시공감리까지 모든 것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해야만 했다. 온전히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두 가지 일을 병행했던 나는 낮에는 회사, 밤에는 사업을 위해 밤을 지새웠던 터라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친구는 이러한 나를 위해 혼자 모든 것을 관리했다. 결국 다양한 사태들로 인해 우리의 첫 프로젝트 수익은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 들어가는 실행비 외에 예비비, 유지관리비 등 다양한 방면의 비용을 고려했어야 했는데, 애초에 우리는 이러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우리의 디자인이 도시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것과 그 일이 우리의 첫 프로젝트였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즉 착한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다.
사실 이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사람마다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환경에 해가 가지 않는 재생종이, 친환경 잉크 등 하드웨어를 고려한 결과물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소수자, 장애인 등 특정 대상을 위한 개념 성립과 그 개념을 통한 결과물들이 착한 디자인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착한 디자인의 정의는 다방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착한 디자인은 '우리의 디자인이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으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는 아트 스트리트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던 중 슈퍼그래픽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캠페인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파벨라 페인팅(Favela Paitng)'이라는 팀을 찾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페인팅 아트를 접목시켜 공공디자인을 하는 그룹 정도로 이해했는데, 회사 홈페이지를 방문한 이후 이들의 목적이 단순히 거리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Favela painting group https://favelapainting.com/
파벨라 페인팅팀은 COMMUNITY ART FOR SOCIAL CHAGE(사회변화를 위한 공동체 예술)라는 미션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로 전 세계 곳곳의 슬럼화 된 도시에 페인팅 아트를 통해 도시의 활기를 불어넣고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이들의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또 시각적인 효과만 개선하는 것이 아닌 지역역량강화 교육을 통해 모든 프로젝트에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이들이 시행한 예술활동이 지속 가능하도록, 더 나아가 본 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뿐만 아니라 유나이티드 페인팅 아카데미(United Painting Academy) 운영으로 조금 더 사회에 영향력 있는 예술활동을 위해 교육과 연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팀의 예술활동을 통해 슬럼화 된 지역에 살고 있는 어린 아동들은 낙후된 자신의 동네에 형형색색 표현된 아름다운 작품을 보며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느끼고 있으며 이와 같은 페인팅 프로젝트는 지역의 인식개선 등에 도움이 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동안 몸담고 있는 디자인 세계에 대한 불편함이 늘 존재했다. 특정단체만 즐길 수 있는 스페셜한 디자인 행사를 위해 일하는 것은 큰 자부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 행사가 우리의 세계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라는 질문이 나를 종종 찾아왔으며 한번 쓰고 버려지는 수많은 인쇄물, 전시나 각종 행사가 끝나고 나면 대량으로 나오는 폐기물들을 바라볼 때면 마음 한편이 어려웠다.
내가 생각하는 착한 디자인의 정의와 멀었기 때문이었을까?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디자인이란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이상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안에도 이 것을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은 기회로 아트스트리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고 이 프로젝트가 우리 회사의 첫 프로젝트였다는 것이 내게는 큰 의미였다.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은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 원인을 해결해 보자 한다면 '디자인'이라는 방법 자체는 사라져도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거리예술을 보며 꿈을 키워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디자인의 힘은 분명히 있다.
<마케팅 관점으로서의 디자인 VS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놓고 본다면 전자가 후자보다 나쁜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둘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또 나의 최대 숙제일 것이다.
수익금 제로의 <아트 스트리트 프로젝트>는 나에게 착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이 질문은 우리 회사의 방향성을 생각해보게 한 프로젝트였고 앞으로 수행할 프로젝트를 선택할 때에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가지고 묵묵히 앞으로 한걸음 또 나아갔다.
착한 디자인은 무엇일까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