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지 다크매터랩스 시스템디자이너와의 인터뷰
다크매터랩스(Dark Matter Labs)는 영국의 시스템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국제기구, 비영리단체, 공공기관, 사회적기업, 자선단체 등과 함께 다양한 사회 이슈를 시스템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고 풀어나가 보자는 취지로 설립되었어요.
독특한 이름에 눈길이 먼저 가는데요. 다크매터, 암흑 물질은 우주에 널리 퍼져 있으면서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 하나입니다. 어떤 입자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무게를 지닌 미지의 물질이에요. 다크매터랩스는 이를 우리 사회에 대입해 설명합니다. 어떤 사회 현상이 주요한 하나의 원인이나 주체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미처 보이지 않는 다른 수많은 현상과 그 사이의 연결고리로 인해 일어나기 때문에 모두가 미지의 변수를 함께 찾아가야 한다는 관점에서요. 다크매터랩스는 이것을 ‘지루한 혁명(Boring Revolution)'이라고 불러요.
다크매터랩스를 공동창업한 인디 조하(Indy Johar) 대표는 권력이 분산된 사회,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창업자, 디자이너, 건축가예요. 2005년 프로젝트 제로제로(Project00)를 설립해, 전부터 하고 있던 사회 실험 프로젝트를 이어갔고 다크매터랩스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시스템 사고방식을 적용해, 사회의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제도 인프라를 개선하고자 했어요. 이를 통해 무수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고 공동의 선을 도모하는 사업에 돈이 몰릴 것이라고 봤고 결국 다크매터랩스를 사업화했습니다.
슬로워크 뿐만 아니라 사회변화에 관심 있는 비즈니스들이 흥미로워할만한 모델인데요. 마침 다크매터랩스의 강은지 시스템디자이너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에이전시도, 컨설팅 회사도 아닙니다”라는 은지님의 이야기로 시작한 흥미로운 대화를 정리해보았어요.
다크매터랩스의 정체(?)
다크매터랩스, 과연 정체가 무엇인가요?!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스튜디오’예요. 워크숍 스튜디오에 가면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내고 다음 단계를 발견해 나가잖아요. 예를 들어 “의자를 만들어볼까?”라는 아이디어를, “제일 멋진 의자를 만들어보자”는 의제로 발전시키고 그 방법을 함께 발견하는 것이 저희가 하는 일이죠.
그럼 에이전시, 컨설팅 회사 아닌가요? 클라이언트가 다크매터랩스에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자고 요청하고, 다크매터랩스는 조건이 맞으면 일을 진행하니까요.
아니에요. 기존의 에이전시, 컨설팅 회사에는 다른 큰 회사들이 와서 “문제가 있으니 해결책을 주세요”라고 하잖아요. 다크매터랩스는 아니에요. 클라이언트도, 저희도 어떤 현상이 어떤 현상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없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보고 모든 가능성을 연결해봐요.
클라이언트들은 무엇을 믿고 찾아오나요?
다크매터랩스의 미션을 이해하고 여기에 공감해서 찾아와요. 제도를 투명하게 만들어 인간의 삶을 더 낫게 만들려는 의지가 있고, 사회가 권력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는 조직들이요. 당장의 답을 구하려는 클라이언트는 애초에 의뢰하지 않아요. 다크매터랩스로 와서 오픈 브리프를 하면서 함께 접근법을 고민하려는 조직이 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영국왕립예술학교, YMCA, 유엔개발계획(UNDP), 맥코넬 재단(McConnel Foundation), 2020 두바이엑스포, 스톡홀름 시의회 등 다양한 국제파트너들과 함께 했어요. 한국에서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위키하우스를 전시했습니다. 프로젝트 제로제로의 ‘아키텍처 제로제로(아키텍처00)’가 제안했지요. 지금은 이것을 비즈니스로 발전시켰어요.
다크매터랩스 프로젝트의 성격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궁금해요. 이해하기 쉽도록 예시를 공유해 주시겠어요?
어떤 지역 정부에서 공공주택임대사업을 하는데, 일반적으로 공공주택에 사는 가족들이 겨울만 되면 월세를 잘 안내서 사업 유지가 잘 안되는 거예요. 당장의 해결책으로 ‘난방비로 돈을 많이 써서 잘 못내나보다'라는 진단으로 중앙 난방 시스템을 설치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월세를 잘 내지 않는 거예요. 그랬을 때 문제의 원인이나 현상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실패’라고 단정 짓고 꼬리표를 달기 쉽습니다. 하지만 다크매터랩스는 큰 그림, 현상 사이의 연결고리를 봐요. 현상을 선형적, 단편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 궁극적인 결과가 정말 사회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오랫동안 추적합니다. 그런 프로젝트 위주로 일을 맡고요.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갔어요?
난방이 잘 된 덕분에 지역 정부의 세금이 절약되었어요. 의료비는 줄어들었고 어른은 일터로, 아이는 학교로 잘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공공주택임대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그 목표가 달성된 것이지요.
현상 1에 해결책 1을 대응시켜서 현상 1을 해결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자 혁신을 외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모두 알다시피 사실 사회는 복잡하고 선형적이라기보다는 상호의존적이니까요. 이 현상은 심화될 것이고요.
그래서 다크매터랩스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된다고 보나요?
궁극적으로 사회 질서를 최대한 수평적으로 잡아가고, 권력을 분산시키며 제도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연결고리와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그나마 쉽게 볼 수 있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솔루션을 구상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우리가 그 문제를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고, 제대로된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죠. 이런 철학을 퍼뜨리고 다크매터랩스가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워크숍 형식의 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글도 많이 쓰고 있어요.
한국의 조직들은 전반적으로 위험성, 복잡성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이 만능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결과가 최대한 빠르게 나와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협업하기 어려울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어떤 조직이든 다크매터랩스의 방법론을 작게나마 도입한다면 획기적인 레퍼런스를 만들 수 있겠습니다.
네. 다크매터랩스는 ‘우리가 답을 안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협업하면 프로젝트에 시스템적 사고방식을 도입해 더 설득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를 질문하고 함께 이야기합니다. 어차피 모두가 사회문제에 질퍽하게 발을 담그고 있으니까요.
흥미로워요. 협업하고자 하는 국내 조직을 위해서 프로젝트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세 가지 특징이 있어요. 심층적인, 장기적인,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합니다. 주거비, 환경오염, 교통, 고독, 정신건강, 먹거리 등 서울을 포함한 대부분의 도시가 안고 있는 현대 문제의 겉모습만 보고 해결하려고 하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거나,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짧게 보면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또 다른 비즈니스와 일자리를 만들기 때문에 그리 보이겠지만 더 깊고 넓게 생각하지 않으면 미래의 위험성을 그대로 떠안게 되는 것이에요. 다크매터랩스가 해결책이 아닌 접근법을 고민하는 이유예요.
다크매터랩스의 조직문화
은지님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는 배울 것도 많고 일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전세계에 흩어진 다크매터랩스 구성원 15~20명은 인디 조하와 오랫동안 일을 같이 했고 그의 미션에 크게 공감하고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일을 하는 동력이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도전적인 부분은 없나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벗어나야 해요. 프로젝트의 주제가 속한 시스템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공부해야 하니까요. 동시에 ‘다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은 단편이다’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공부하는 시스템의 경계가 거의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는데 그때 언제 멈춰야할지 늘 고민해요.
정말 어렵네요. 혼자서는 더더욱 힘들겠어요. 밀접하게 협업하지는 않더라도, 다크매터랩스 구성원은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케이스 스터디를 많이 해요. 예를 들어 나이키 광고를 보면서 세련되게, 통속적으로 보이지 않게 내러티브를 짜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또 테드톡(Ted Talk)이나 즐겨듣는 음악을 공유할 때도 있어요. 스토리텔링에 도움이 됩니다.
업무 난이도가 높다보니 조직 내부에서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나 봅니다. 은지님, 다크매터랩스의 정체부터 프로젝트, 조직 내부 이야기까지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슬로워크도 다크매터랩스처럼 창의적이고 영감을 주는 솔루션으로 조직과 사회의 변화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우선 어젠다로서 정부 제도와 사회 시스템, 미디어의 역기능을 디자인과 기술로 보완하고 개선하자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어요. 메르스 확진자 동선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정확한 정보로 사회에서의 신뢰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했고, 한국 시빅해킹을 지지, 지원하며 정부 제도와 사회 시스템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기술 측면에서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데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슬로워크의 일, 프로젝트 진행을 통해서도 구성원의 역량으로 변화에 기여하고 있어요.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웹사이트 제작 프로젝트는 구성원의 전문성을 드러내며 클라이언트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소셜섹터에서 슬로워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어요. 슬로워크 내부 프로젝트였던 로드킬 프로젝트는 공공디자인으로서 디자인이라는 ‘실천'을 통해 로드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슬로워크의 이메일 뉴스레터 오렌지레터는 미디어로서 유용한 정보를 큐레이션해 모두에게 유통하며, 소셜섹터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정보의 창으로 자리매김 했어요.
슬로워크는 이외에도 변화를 만드는 프로젝트들을 해왔고, 하고 있으며, 해낼 것입니다. 사회 변화를 위한 어젠다도 꾸준히 만들어나갈 계획이에요. 슬로워크와의 협업을 통해 조직과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어보세요!
정리 | 슬로워크 테크니컬 라이터 메이
이미지 | 슬로워크 디자이너 길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