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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주니어를 뽑아야 할까요?

박지수| 2023.01.30

결론부터 얘기하겠다.
스타트업은 주니어를 뽑아야 한다.

"아니 잠깐, 네가 주니어가 많은 곳은 피하라고 하지 않았어요?"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 글을 썼었다.)
맞다. 주니어만 있는 회사는 피할 수 있음 피해라. 하지만 주니어라고 다 같은 주니어가 아니다. 진정하고 주니어와 시니어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해보자.

일반적으로 우리가 주니어와 시니어를 구분하는 포인트는 연차인 것 같다. 3년 미만 또는 사람에 따라서는 5년 미만 정도의 사회 경험을 쌓은 사람을 주니어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를테면 대리를 달지 못했거나 갓 대리를 단 사람 정도의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그 이상의 연차가 쌓이면 시니어가 되는 것인가?

연차는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쌓이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나이를 자동으로 먹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나이가 많다는 것이 무기가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물론 한 사람이 견뎌온 세월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누구나 각자의 인생의 나름의 풍파를 견디며 나이를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할 때, 그가 세월의 풍파를 '어떻게' 이겨냈고 그래서 현재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는 눈여겨보지 않는다. 여전히 '얼마큼 긴 시간'을 살았는가 만으로 충분히 그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큰 착각이다.

장담하건데, 연차만으로 주니어와 시니어로 구분하고 채용이나 인사 관련 의사결정을 내리게되면,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연차에 더해 어디 회사 출신이냐까지 포함되면 판단력은 완전히 흐려진다. 이를테면 삼성 출신 10년 경력자라고 하면, 무조건 바지춤 걷어올리고 모셔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듯이 말이다.

연차와 출신 회사. 두 가지의 정보만으로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쉽게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은 어느새 사실이 되어있다. 결국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1달, 3달,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깨닫는다.

따라서, 연차로 주니어와 시니어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판단기준이 되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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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와 시니어를 구분하는 기준은 문제 해결 능력과 명확한 직업의식이다.


이를테면 시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제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과 비즈니스를 이해하여 적합한 제품 경험을 여러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주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이것의 중요성과 나름의 방법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실제로 커리어에서 행해왔는가 또는 지금 우리 회사에서 업무로써 행할 수 있는가가 그를 '시니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그가 '10년 경력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기대되는 성과를 요구한다면, 서로에게 불행만 안겨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연차를 기준으로 주니어, 시니어를 구분 짓는다. 그게 쉽기 때문이다.
좋다. 어찌 되었든 나는 스타트업에서 경력이 짧은 주니어를 뽑아도 좋다는 말을 하고 싶다.



스타트업이 '경력이 짧은' 주니어를 선택해도 좋은 이유는 3가지다.

1. (스타트업도 주니어도) 선택지가 별로 없다

솔직해지자. 토스나 당근마켓 정도가 아니라면, 하다못해 수백억 대의 투자를 받아 TVCF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회사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여기에서 일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잠재력 있고 비전이 좋은지와 무관하다.
뱅크샐러드에서 인재를 모시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이벤트와 노력을 했는지 셀 수도 없다. 그러나 시리즈 B를 받고 TVCF를 론칭하고 나니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이력서가 들어오더라.
그전까지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경력자는 본인의 커리어가 박살날 수도 있는 초기 스타트업에 발을 들이기 쉽지 않다. 더하여, 아마도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시니어는 우리가 지불할 수 없는 몸값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선택지란 사실 주니어뿐이다. 스타트업이 인재가 간절한 만큼 주니어도 경력이 간절하다.

2. (주니어는) 잠재력이 있다

나는 나쁜 물에서 10년 놀아본 시니어보다, 백지장같이 하얀 주니어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까만색 물을 잔뜩 빨아들인 스펀지에 노란색 물을 들이려면, 까만색 물을 빼내는 노동과 이것을 덮기 위한 엄청나게 많은 물감과 물이 필요하다. 그마저도 까만색 물을 빼겠다는 당사자의 의지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시니어를 모실 기회가 생겼다면, 우리는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을 원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서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색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많은 연차와 멋있는 회사 출신이라는 사실에 현혹되지 말지어다.
반면 하얀 종이에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 또한 아직 많은 물감이 묻지 않은 스펀지는 무엇이든 빨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따라서 주니어가 그리고 싶은 그림과 회사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일치한다면 누구보다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대체로 이 불일치에서 많은 불행이 발생한다.)

3. (주니어는) 순수함이 있다

우리는 순수함을 Naive 함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말하는 순수함은 아는 것이 없고, 남에게 잘 속는 무지함이나 순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투명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실제로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있다. 몇 개의 팀에게 제한시간 동안 마시멜로우와 스파게티면만을 이용해서 가장 놓게 탑을 쌓아 보라고 했더니 그중에 유치원생들이 모인 팀이 우승을 한 비율이 높았다. (이 실험은 동일한 구성으로 여러번 반복 시행되었다.) 다른 팀에는 MBA출신, 명문대 출신 등 소위 엘리트 팀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우승한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유치원 아가들의 비결은 뭐였을까? 이 아이들은 이해관계가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마시멜로우와 스파게티면으로 탑을 더 높게, 더 빨리 쌓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을 뿐이다. 반대로 머리가 크고 가방끈이 긴, 사회생활을 오래 한 어른들은 그들 간의 이해관계가 우리가 달성해야 될 목표보다 더 중요했다. '저 사람은 공학 박사니까 나보다 더 잘하겠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무언가 지시하면 기분이 상하겠지' 등 탑을 쌓는다는 목표와 전혀 관계없는 고민과 계산들로 시간을 낭비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팀워크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부족한 시간과 비용 속에서 빠른 결과물을 내야 하는 스타트업의 상황과 맞닿아있다. 스타트업에선 공동의 목표와 관계없는 사사로운 고민과 계산들은 사치다. 목표지향적인 태도로 빠른 추진력과 행동력을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함'만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이 순수함은 연차가 쌓일수록 빠르게 퇴색된다. 따라서 주니어가 가질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스타트업은 이 순수한 폭주기관차를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길 기도해야 한다.

이제 주니어와 시니어의 기준을 다시 정의해보자.
그럼에도 경력이 짧은 이를 여전히 주니어라고 칭하고자 한다면, 그들을 연차라는 기준 외의 기준으로 다시 바라보자. 연차와 출신 회사는 '절대 척도'가 아닌 '참고 지표' 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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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인턴 디자이너에서 제품총괄까지, 스타트업 A to Z를 경험했습니다. 현재 아웃앤아우터 대표이자 프로덕트 코치, 스타트업 랜선사수,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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