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동물과 함께하는 디자인

노트폴리오 매거진| 2022.01.18

생각해보면 꽤 어릴 적부터 고양이와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삶이었는데, 그간 동물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친할머니댁에 놀러 가면 똑같이 ’나비‘라 불리는 길고양이들이 네다섯 마리, 외할머니댁에 놀러 가면 세상에 하나뿐인 믹스 아이들이 즐비했다. 당시 서울에서 동물을 반려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 할머니 댁에 가기만 하면 동물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떼를 부리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 댁에 있는 동물이나 그 후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우리 집에 오게 된 진도 친구를 돌이켜 보면 ’동물은 동물답게 키워야 한다‘는 편견 아래 숱한 잘못을 저질렀었다.

고양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길고양이를 식용으로 쓰는 노인들이 많으니 ’눈에 띄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음식물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주던 할머니와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고 듣고 자라 산책 한 번 제대로 시키지 않고 짧은 줄에 묶어 살게 하던 나였다. 당시에는 그게 동물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고, 무엇이 잘못된 지도 몰랐다. 그래서 ’동물‘은 고등사고와 인지를 하는 ’인간‘보다 더 낮은 지위를 갖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생각해보면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해로운 존재임에도 말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이러한 편견에 서서히 금이 가게 된 건, 정말로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만나면서 부터다. ’동물복지‘라는 말은 ’동물‘을 주제로 작업하던 작가를 인터뷰하면서 처음 접해봤고, ’동물 실험‘이란 말은 들어는 봤지만 얼마나 비윤리적인 과정을 거치는지 알지 못했다. ’동물에게 권리가 있는가‘는 명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동물과 교감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그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인간‘을 중심으로 판가름할 수 없으며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점이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2020년이 시작되며 세계는 전례 없는 지독한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올여름은 유독 이상기후 증세로 비가 많이 내렸다. 인류는 먹지 말아야 할 개체를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섭취했고, 무분별한 자연개발로 동물들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인간이 먼저다‘라는 사고 아래 죄의식조차 없어 보였지만, 이제 사람들은 전염병과 이상기후의 징후를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함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때보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이미지 출처: 동물자유연대 블로그

그런 맥락에서 ’도봉구‘와 ’포스코‘가 선보인 길고양이 공공급식소는 지자체와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시한다. 지난 11월, 서울 도봉구와 <포스코>건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는 관내에 길고양이 공공급식소 5개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보랏빛과 분홍색이 주는 따뜻한 색감뿐만 아니라 길고양이들이 안정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삼각형 모양의 디자인이 눈에 띈다. 해당 급식소는 급식소별 ’캣맘‘을 배정하여 책임관리를 맡게 한다. 이러한 시도가 더 특별한 건, 공공기관과 대기업, 시민단체, 그리고 개인 봉사자의 노력이 한 데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북서울꿈의숲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이미지 출처: <카라>


사실 동물단체와 지자체의 ’동물 연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북서울꿈의숲>은 동물권행동 <카라>와 연계하여 2018년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북서울 지역에서 많은 이용객이 찾는 해당 공원은 사람만큼이나 많은 길고양이와 유기견, 비둘기, 거북이가 찾는 곳이다. 지금까지 추정된 바에 의하면 <북서울꿈의숲>에 생활하는 고양이는 약 50여 마리 이상에 이른다. 특히, 특정 구간에 거주하는 길고양이는 근처 주민 및 캣맘과 교감을 하고 있기도 하다. <카라>에서 북서울꿈의숲에 설치한 길고양이 급식소는 5개이며 특정 장소에는 ’사료 기부함‘이 설치되어 있어 일반 시민들이 편히 사료를 기부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카라>

1. 북서울꿈의숲에서는 길고양이 보호와 깨끗한 공원환경을 위하여 시민과 서울시, 동물권행동 카라와 함께 공원급식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 공원에 사는 길고양이는 중성화수술을 하여 그 수가 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3. 먹이(사료, 캔 등)을 주고 싶으신 분은 길바닥에 주지 마시고 아래의 기부함에 넣어주시길 바랍니다.

4. 기부함의 먹이는 급식소를 관리하는 봉사자분들에게 전달하여 지정된 장소에서 길고양이가 위생적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동물자유연대 블로그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차에 발자국을 남겨서, 쓰레기 봉투를 터뜨려서 사람들은 쉬이 길고양이를 배척한다. 한때는 그 마음을 격하게 이해했던 사람이지만,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는 사고와 쓰레기 봉투를 터뜨리지 않을 만큼 굶주림을 해소한다면 어떨까. 동물은 선택할 권리가 없고, 권리를 택할 수 있는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쉽게 약자를 사지로 내몰기도 한다. 이처럼 보다 더 나은 ’디자인‘이 동물과의 상생 역시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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