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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 284,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展

노트폴리오 매거진| 2021.10.12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展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던 일본이 선조들을 탄압하는 방식은 비단 물리적 차원에만 그치지 않았다. 민족 고유의 정신은 문화에서 비롯함을 익히 알고 있던 그들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인 한글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민족의 얼’을 뺏기 시작했다. 언어를 둘러싼 담론에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 그중에서도 언어학자 ‘사피어-워프의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은 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내용을 주장했다. 바로 ‘언어결정론’이다.



언어결정론이란 말 그대로 ‘사용하는 언어가 사용자의 사고와 세계를 결정 한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과정은 종국에는 ‘문화를 창조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접근은 시류에 따라 변하는 신조어 사용의 문화적 변화를 설명하기도 한다. 예컨대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에 줄곧 등장했던 ‘오글거린다’는 표현은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사용되었으나, 누군가의 진지한 감상과 행위를 냉소적으로 조롱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외에도 ‘관종이다’, ‘TMI다’라는 표현 역시 행위주체자의 언행을 무의식적으로 평가 절하함으로써 생각과 표현을 제한하게 만든다.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展


몇 년 사이 뜨거운 감자가 된 젠더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행위와 언어사용을 그대로 차용해 사용하는 ‘미러링’은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잘못된 혐오 언어사용과 특정 주체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은 역설적으로 그간 우리사회가 얼마나 그릇된 언어사용을 용인하였는지 반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자와 언어의 사용은 특정 사회를 대변하며 시류를 읽는다. 그래서 언어는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 문화역 서울 284에서 진행되고 있는 <타이포잔치 2021: 여우와 두루미>는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의 문자와 언어에 대한 감각을 되새기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다. 2021년 올해 타이포 잔치의 주제는 ‘문자와 생명’이다.


생명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순환의 고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순환을 만물의 이치이자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문자를 통해 그 도구적 활용을 넘어 바람, 신념, 상상 등 무형의 개념을 형상화해 표현하고 향유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메신저 대화창에서, 태블릿 스크린에서, 이메일 작성 창에서 누구나 바라는 바를 더 정확하고, 더 강하고, 더 아름답게 드러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문자를 다루는 기술’을 의미한 타이포그래피는 점차 시대의 취향을 드러내는 기호,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그림 등의 다양한 재료를 아우르며 진화해갑니다. 출처: 타이포잔치 2021 전시서문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展


문자와 언어가 시대를 반영한다는 전시문의 입장은 언어결정론의 맥락과 같이한다. 때문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차용하여 언어를 표현한 것은 언어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과거부터 이어진 전래동화를 표상한 오브제를 만날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 역시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구어의 속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展


문자가 매력적인 이유는 비단 생각을 산출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바람과 생각을 기호로 표상하는데 있다. 이러한 염원은 부호와 상징으로 나타나는데, 전시장 안쪽에 위치한 부적형태의 작업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좀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일은 무언가를 소망한다는 측면에서 삶을 살게 하는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기원과 기복’에서는 생성과 호기심을 주제로 원초적 바람과 기원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담은 작품을 소개합니다. 다양한 상징을 통해 각자의 바람을 표현한 ‘기도들’, 물건에 행운을 비는 마음을 담는 풍습을 해석한 ‘홈 스위트 홈’, 기념일이나 명절, 생일 등 특정한 날에 가족 간에 주고받는 인터넷 메시지를 소재로 삼은 ‘참 좋은 아침’의 세 챕터를 통해 스물두 팀의 작가들이 평면과 입체, 스크린 등 다양한 지점을 다룹니다.



'기록과 선언’에서는 분열과 결실, 열정과 직관을 주제로 동시대의 화두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깊은 성찰을 담은 작품을 전시합니다. 글과 그림이 주고받은 이야기와 목소리를 다룬 ‘말하는 그림’, 바닷가의 암석화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채집하고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관찰의 대상으로서 환경 문제에 접근하는 ‘흔적들’, 2015년도 이후 한국의 도서들 가운데 출간 당시에는 쉽지 않은 시도를 통해 이후 북 디자인의 지형 변화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모은 ‘생명 도서관’의 세 챕터로 구성되고, 일곱 팀과 마흔여덟 권의 도서가 참여합니다.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展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展


전시에서 알 수 있듯, 언어와 문자는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며 변화를 거듭한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표상을 통해 우리는 과거 선조들의 정신을 잇고 시류를 좇으며 개인의 가치관을 만들어 간다. 이렇듯 '생명'이라는 이번 타이틀에 부합하는 전시를 통해 지금 또한 활기차게 변화하는 타이포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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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21년 9월 14일 – 2021년 10월 17일
운영시간 AM 10:00 - PM 7:00 (*월요일, 설날 당일 휴관)
관람료 무료
장소 문화역서울284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1)
문의 문화역서울284 / 02-340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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