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맞이해 방문한 음식점에는 코로나가 무색할 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무래도 외식은 무리일 것 같아 음식을 포장하려는데, 앞에 다섯 명이 훨씬 넘는 무리가 종업원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종업원은 가족 외 5인 이상의 식사는 불가하므로 가족관계 여부를 명확히 확인해 달라 요청했고,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간 끝에 중년 남성은 “에이 X발. 우리가 여기 말고 먹을 데가 없을 줄 알아?”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 순간 종업원과 눈이 마주쳤고, 씁쓸한 눈인사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 부산국제아트센터 공사 현장에 걸린 현수막이 논란이 일었다. 공사 현장에서 ‘안전’을 강조하는 표어가 시대에 역행하는 여성혐오적인 표현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문구는 “사고 나면 당신 부인 옆엔 다른 남자가 누워 있고, 당신의 보상금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였다. 해당 문구 옆에는 이불에 누워 있는 여성과 현금 다발 뭉치가 이미지로 제시됐다. 이 현수막은 설치된 지 약 세 시간 만에 각종 민원을 받고 철거되었다.
고객응대 근로자, 출처: 한국 산업안전 보건공단
이러한 현수막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본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혐오적인 표현으로 희석될 뿐만 아니라 메시지의 수용자에게 불쾌감을 전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로 상관이 없는 자극(안전-불쾌)이 조건화되면, 수용자 입장에서는 공사 현장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안전’이 부정적인 자극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유의하게 챙겨야 할 안전인데도 어쩐지 부정적인 기분이 들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고’가 꼭 자의적으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님에도, 표어는 사고를 오롯이 피해자의 잘못으로 치부한다. 때문에 만약 불우한 사고를 당한다면, 그건 안전을 챙기지 않은 본인의 탓이므로 사랑하는 가족이 부정한 관계(?)를 저지르는 것도, 그 보상금을 쓰는 것도 괜찮다는 늬앙스를 띈다. 일종의 저주의 말인 것이다.
고객응대 근로자, 출처: 한국 산업안전 보건공단
이렇듯, 우리는 일상에서 걱정을 가장한 악담을 자주 듣곤 한다. 안전을 지키려면, 일을 잘 하려면, 좀 더 나은 삶을 사려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에게 불행한 일이 닥친다고 말이다. 사실 상대에게 조언을 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악담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안전보건공단X광고천재 이제석, 보호구 포스터 8종, 출처: 한국 산업안전 보건공단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안전 보건 공단>에서 공개한 포스터가 눈에 띈다. 포스터는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감정 서비스 노동자와 건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여타부타 말없이 매우 직관적이고 간결하게 ‘지켜야 한다’고만 말한다. 감정 서비스 노동자에는 최근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화두가 된 콜센터 직원, 마트 종사자, 경비원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각각 ‘슬퍼도 웃어야 하는 사람들’, ‘속으로만 아파야 합니다’는 표어를 제시한다. 건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포스터의 경우, 좌측에는 안전보호 장치를 작용한 모습을, 우측에는 장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모습을 제시해 주목성을 높였다.
안전보건공단X광고천재 이제석, 보호구 포스터 8종, 출처: 한국 산업안전 보건공단
또한, 논란이 된 현수막이 이미지보다 문구가 주가 되었다면, 이번 <안전 보건 공단>에서 공개한 포스터는 이미지가 주가 된 양상이다. 이러한 연출은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번 포스터는 광고 천재로 불리는 이제석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충분히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전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조금 더 면밀하고 세밀한 감수성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을 말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