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테니스 강습을 망치고 얻은 것

김나훔| 2022.11.30

2020년 7월. 아내와 함께 강릉 종합운동장 근처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테니스 수업을 끊었다. 당시 아내가 아직 서울 집을 빼기 전이라 우리는 서울과 강릉을 왕래하던 시기였음에도 마음먹은 김에 운동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덜컷 신청을 했다. 매주 아침 3회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7월은 조금 바빠서 사정상 몇 차례 빠지게 될 것을 예상은 했지만 하필 수업이 있는 요일에 서울 출장과 미팅, 경조사까지 잡히는 바람에 우리는 예상보다 더 자주 수업을 빠지게 되었다. 심지어 우천 시에는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마 기간이었던 7월 결과적으로 절반도 채 수업진행이 되지 못했다. 마지막 주에는 “오늘도 참여가 힘들 것 같아요.”라는 문자를 선생님에게 보내기에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야외에서 테니스를 치는 일은 매우 즐거웠다. 테니스장 주변으로는 초록 나무들이 바람에 기분 좋게 흔들거렸고 아직 햇빛으로 달궈지지 않은 테니스코트는 운동하기에 딱 좋은 온도였다. 태양 아래에서 땀을 흠뻑 빼고 나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바람을 맞으면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때의 감정은 손에 꼽을 정도로 우리에게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있다. 낮은 참여율로 테니스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지만 이 수업과 관련하여 뜻밖에 얻은 세 가지가 있어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그 첫 번째는 갤러리 겸 편집샵으로 운영중인 오어즈의 공간을 계약하게 된 일이다. 테니스를 치기 위해 차로 오가던 길 중간에 오어즈의 공간이 있었다. 몇 번 지나가면서 창문에 빨간 ‘임대’ 글씨를 봤는데 워낙 크고 붉은 글씨라 임대료도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던 장소였다. 그날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그날따라 무엇에 홀렸는지 “저기 2층 구경이나 한 번 하자”고 아내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 공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도 집에 두고 온 상태여서 집에 들렀다가 바로 부동산으로 가서 계약을 했다.




두 번째로 얻은 것은 몇 장의 테니스장 사진이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아름답던 날, 테니스 수업을 마치고 들뜬 기분으로 마침 가방 안에 있던 카메라를 꺼내 연신 테니스장 주변을 찍었다. 행복한 마음이 담겨서일까 그때 찍은 사진이 내가 찍은 사진들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들었다. 올해 오어즈의 벽면을 포스터 전시로 전환하게 되어서 해당 사진을 포스터로 인쇄해 전시 판매를 하게 됐다. 좋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아니어서 화질은 별로지만 워낙 아끼는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사진은 오어즈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판매가 잘되는 작품이 됐다. 얼마 전 이 장소를 다시 지나가는데 부지가 전부 철거되어 황무지가 된 모습을 보게 됐다. 알아보니 테니스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이었다. 역시 기록은 할 수 있을 때 미루지 말고 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라진 테니스장의 여름을 온전히 간직하게 되었다는 묘한 쾌감이 마음에 일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그림 하나를 얻은 것이다. 테니스 수업을 마치고 아내와 경기장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여름 햇살이 뜨거웠는지 아내가 나무 그늘 아래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순간 누워있는 아내와 그 아래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나무 사이로 펼쳐진 햇빛까지 이 모든 조화가 여름의 향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어놨다가 그림으로 옮겼다. 이 그림도 작년 아시아프에서 한 점 주인을 찾아갔고 오어즈에서 엽서로도 많은 방문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아침운동 (2020)


이렇게 위에 열거한 내용들이 테니스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나와 인연을 맺지 못했을 세 가지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렇기에 주어지는 뜻밖의 일들이 놀랍고 감사하다.

난 지난달부터 다시 테니스 강습을 받고 있다. 실내 테니스장이라 우천의 영향도 받지 않아 거의 빠짐없이 나가고 있다. 더디긴 해도 점점 테니스 실력도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야외 테니스장의 활기는 여전히 그립다. 꾸준히 정진해서 내년 봄과 여름의 테니스 코트를 다시 꼭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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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훔

[뭐]저자
사진과 글, 그림을 그리는 김나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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