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예술이니 상술이니?”
2020년 초, 두 번째 인턴 근무의 마지막 날 팀장님과 단둘이 식사하던 중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았다. 어떤 시험의 느낌이 아닌 순수한 궁금증이라 느껴졌다. “팀장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질문이 어려워 당황한 탓일까. 대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질문을 해버렸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 “상술이지. 하지만 예술이라 믿고 싶다.” 그렇게 식사가 끝날 때까지 답하지 못한 채 퇴사 후 집으로 돌아왔다.
광고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 가슴을 울리고 머리에 찌릿한 영감을 주는 느낌이 벅차도록 좋았다. 수십번을 질리도록 돌려보며 이게 좋다 느니 저게 맞다 느니 동기들과 밤새도록 갑론을박하며 피워 올렸던 뜨거운 열정에 그을린 영감이라는 화상의 자국들, 그리고 그렇게 연소시키며 배설해낸 수많은 생각들이 모여 ‘광고’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 나도록 마음이 벅차올랐던, 그것을 신성시하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만든 작업물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자식처럼 대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문제점은 찾지 않은 채 내 자식이라 함함하며 과잉보호하고 한 폭의 작품이라 취급하며 그저 관람, 어쩌면 방관을 했다. 그 결과 클라이언트 혹은 소비자를 위한 작업이 아닌 나의 만족만을 위한 객관성이 결여된 작업만을 했고 결국 성과 없이 모든 대회에서 탈락하며 패잔병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자기성찰 하지 못한 채 심사위원들의 안목을 지적하며 스스로를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자의 슬프고도 당연한 최후였다.
그 후로 객관성을 찾기 위해 내 작업을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만든 광고를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다짐하였으며 작업물들을 가혹하게 비판하고 더 이상 예술 하지 않고 상업하기로 했다. 그 결과 회사와 대회에서 적지 않은 성과들을 만들어 내며 한발 도약하는듯 했다. 하지만 내디딘 발은 낭떠러지 앞이었으며 추락의 시작이었다. 내가 저지른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애정을 가지고 만든 자신의 작업을 작품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혐오를 느끼기 시작했다. 작품이라 지칭하는 것은 그저 애정의 표현이었을 텐데 광고라는 상업의 영역에서 스스로를 예술가라 올려 친다며 그들에게 추악하고 건강하지 못한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느꼈던 것, 광고에 예술성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예술이란 무엇이지? 클라이언트의 지시에 따라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며 자신의 주관을 거의 배제시켜 뱉어 낸 창작물을 감히 창작물이라 말할 수 있으며 예술의 영역에 귀속시켜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팀장님의 질문을 받기 전까지 두 번째 회사를 마지막으로 광고를 그만두려 했다. 애정 없이 하는 작업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으며 그것으로 어떠한 성과를 내도 기쁨과 보람이 없었다. 더 이상의 성장도 없었다. 모든 것이 부정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까지만 조금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던 만큼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답을 내기 위해 수많은 창작자와 예술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다. 생각이 죽어 있는 것은 상술이고 살아있는 것은 예술이다. 단순히 아름답고 화려하며 고고하게 물감을 발라야만 예술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쌀알 한 톨조차도 예술이다.
‘우리 돈으로 예술 하지 마세요.’라는 광고주의 말처럼 어쩌면 광고 영역에서 예술은 금기시된다. 자료와 데이터가 기반 되고 객관성을 중요시하는 영역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풀어내는 자신만의 주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아야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어느 유명한 영화감독의 말처럼 나를 잃는 순간 창의성은 증발한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생각. 자신의 주관이 결여된 채 객관성만 남는다면 광고는 팔리지 않는 상술의 영역에 고립될 것이다. 결국 광고란 자신의 생각이 적절하게 살아 있다면 예술, 그저 죽어 있다면 상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어린 내가 느꼈던 그것은 예술이 맞다고, 정말 예술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