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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에게 에이전시가 꼭 필요할까?

신디강 Cindy Kang| 2022.10.17

일러스트는 분야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광고, 에디토리얼(편집), 동화책, 라이센싱으로 나눌 수 있다. 더 나아가 게임이나 캐릭터, 애니메이션 분야가 있지만 그건 사용하는 프로그램도, 계약서 형식도 크게 다르고 팀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르게 구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작업들을 묶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두고 그걸 토대로 의뢰되는 작업을 하는데, 이게 한 가지인 작가들도 여러 가지인 작가들도 있다. 나는 여러 가지인 축에 속하는데 광고, 에디토리얼, 동화책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한 사람(나)이 한 작품이라 다 같은 스킬 그리고 비슷한 분위기나 주제를 다루다 보니 너무 이리저리 스타일이 널을 뛰진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작업 형식이 다르다 보니 세 가지로 나뉘게 되는 것 같다. 벤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면 이런 느낌일지도.



나의 세 가지 포트폴리오가 모두 겹쳐지는 부분은 없다. 그래서 나도 몇 년째 스타일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이러면 절대 안 된다거나, 미래가 불투명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건 어렵지만 어떻게 보면 일러스트레이터의 숙명이기도 하다. TV 광고도 하고, 상품을 위한 그림, 책을 위한 그림- 모두 하게 되어 있다. 사방팔방 나눠져 있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두 세 갈래의 시장 중심 포트폴리오를 각각 뚜렷하게 어떤 클라이언트를 위한 건지 알고 잘 구분하고 있는 것, 그리고 퀄리티가 안 좋은 쩌리를 몰아둔 두 번째 세 번째 포트폴리오를 둘 게 아니라 셋 모두 알차게, 탄탄하게 만들어두는 부분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시장을 염두에 둔 포트폴리오가 완성되면 내가 에이전시가 필요한 경우인지, 어떤 에이전시와 대화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에이전시는 쉽게 말해 일러스트레이터의 소속사다. 블랙핑크와 YG 엔터의 관계와 같다. 클라이언트를 관리하고 프로젝트의 딜을 얻어오고 아티스트의 편에 서서 예술가 권리 보호, 비용 네고 등 계약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작가들은 자신이 잘하는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담당하는 에이전트가 프로젝트의 커미션을 가져가는 형식으로 함께 일하는 구조다.

해외에서 작업을 하면 일러스트레이션 에이전시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주로 Commercial (상업) 일러스트를 다루는 부티크들은 그걸 전문으로 하고 Publishing / Children's Books (출판, 동화책)을 다루는 곳은 또 따로 있다. 이걸 종합적으로 다루는 에이전시도 있는데 흔하지는 않다. 그런 곳들은 주로 에이전트도 여러 명이고 소속되어 있는 작가도 40-50명대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에이전시가 꼭 필요할까? 개인마다 일하는 스타일도, 분야도 천차만별이니 모두가 하는 생각이 다르겠지만 내 생각엔 MUST는 출판/동화책 분야의 에이전트다. 책 관련 일을 주로 하는 게 아니라면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글과 일러스트를 함께 작업해서 작가로 데뷔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해외 시장에선 Literary Agent는 필수다.

광고나 에디토리얼을 위주로 작업을 한다면 필수가 아닐 수도 있다. 에이전트가 있으면 더 큰 프로젝트를 가져다 줄 가능성도, 더 큰 금액으로 네고를 성공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더 많을 수는 있지만, 필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큰 프로젝트보다 작은 프로젝트들이 많기 때문에 적은 금액에 커미션까지 떼가면 아티스트의 속이 새까매질 수도 있다. 그림 외에 홍보나 회계, 이메일, 계약서를 다루는 데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면 에이전트가 없어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이래서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의 일하는 시간은 하루 12시간이지만 이걸 숙명으로 받아들이면 불가능하진 않다 (^_T)

대신 동화 출판은 다르다. 물론 에이전트 없이 출판을 하는 작가들도 간혹 있지만, 이 시장의 기본 룰은 에이전트가 있어야 에디터 눈앞에 내 원고가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에이전트 없이 하는 경우에는 기회도 주지 않을뿐더러 계약에 관련해서 후려치기(!) 당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개인적으로 소문으로만 들은 Work-for-hire(저작권 양도계약서)라는 계약서를 처음으로 동화책 시장에서 봤는데, 이게 유명한 구름빵 작가님의 소송 이야기에 등장하는 계약서다. 에이전트가 있어도 후려치기 당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출판 시장에서 에이전트 없이는 어떨지 싶다. 출판 딜을 만들려면 물론이고, 권리 보호와 출판권을 여러 나라로 확장하고 싶다면 에이전트는 필수다. 글을 쓰지 않고 그림만 작업하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결론은 동화 출판은 에이전트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 상업 일러스트 에이전시가 요즘 한국에서도 부쩍 많아지는 것 같던데 다음엔 계약서에서 주의해야 하는 걸 써볼 생각이다. 예술가들이 야무지게 비즈니스를 하고 권리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220709 1: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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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강 Cindy Kang

뉴욕에서 그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신디강입니다. 방황하던 미대생부터 프로페셔널까지, 일러스트레이터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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