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은 주위에 많습니다. 가장 가까이에는 인터넷이 있고, 또 전문적이고 다양한 도서들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얻고 싶은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가 있습니다. 디자인과 관련된 도서를 구매해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개념적이거나 기술적인 내용의 도서가 많습니다.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 역사와 같이 전공과 관련된 이론지식을 다루기도 하고, 어떠한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어떤 툴과, 폰트, 색상을 사용해야 하는지 등의 다양한 스킬을 다루기도 합니다. 디자인을 할 때에는 이러한 개념적이거나 기술적인 부분도 매우 중요하지만, 포토샵을 켜기 전에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요소들이 있고 저는 이 요소들이 그 어떤 화려한 스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비 전공자로서 이제 막 디자인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혹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갑자기 나 혼자 디자인을 해야 한다면, 누군가 알려주기 전에는 디자인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마케팅 팀에 근무하고 있는데 아직 디자이너가 채용되지 않아서 팀 내에서 디자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디자인을 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고, 이 상황에서 타이포그래피의 역사부터 공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만약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빠르게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어떤 것에 중점을 잡을지 모를 때에는 수많은 이론서를 찾아보기 전에 [디자인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만 기억하면 됩니다.
디자인 표현 스킬을 향상시키는 일은 디자이너로서 매우 중요하며, 스킬의 미세한 한 끗 차이에서 디자인의 완성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표현력보다 더 중요한 건 목적성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광고주가 무작정 “화려하고 심플한 느낌으로 잘 해주세요”라고 의뢰를 한다면 디자이너로서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수많은 실무 디자이너들이 겪는 문제이죠. 무작정 멋진 디자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목적과 방향에 맞지 않아 다시 처음부터 디자인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디자이너는 화려한 스킬을 표현하는 능력보다 [어떤 디자인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지표를 세우는 능력 또한 필요하며, 이것이 포토샵 스킬을 익히기 전에 알아야 할 개념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은 글로 정리하는 단계 없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바로 아트웍 작업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을 빗대어 강조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디자인은 ‘디자인적 기획’이 뒷받침되어야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브레인스토밍 단계를 통해 디자인을 어떻게 구현할지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내고 스케치할 수 있다면 디자인을 구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획 없이 디자인을 구현하는 것은 비디자이너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저 또한 디자인을 하면서 스스로 방법론을 정의해 보기도 하고, PM(project manager) 역할로서 디자이너들이 좀 더 쉽고 간단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이 개념만 잘 이해하고 익힌다면, 아마 디자인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목적에 맞는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1) 목적과 기능
2) 디자인 콘셉트
3) 디자인 키워드
“잘 된 디자인은 모두를 충족시키는 디자인이 아닌, 특정 누군가를 충족 시키는 디자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듯 디자인의 목적성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디자인은 이 디자인이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지, 어떤 목적의 디자인인지, 이 디자인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얻고 싶은지 등의 최종 목적이 있습니다. 포스터 디자인을 예시로 들어보면 이 포스터는 어떤 종류의 포스터인지, 이 포스터가 어느 곳에 배포되는지, 이 포스터를 보고 찾아올 관객이나 소비자는 누구인지, 소비자가 이 포스터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을지, 더 나아가서 포스터를 주최하는 행사는 어떤 종류의 행사인지와 같은 ‘목적’이 정해져야 디자인의 전체 방향성을 끌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직업체험 박람회에 들어갈 행사 디자인을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 귀엽고 컬러풀한 느낌으로 행사 VI(visual identity)를 제작하고 포스터와 굿즈 상품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였습니다. 맨 처음 목표로 삼은 타겟층(아이들)은 높은 만족도를 보냈고 일반적인 소비자들(길에서 포스터를 마주친)은 디자인을 보고 ‘유치하다’는 반응을 보냈다면 그 디자인은 목적과 기능을 아주 잘 달성한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누군가는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이 디자인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디자인도 일종의 도구이자 수단으로서 바라보고 이 결과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디자인 작업 과정에서 막힘이 없습니다.
tip. 디자인 하기 전 목적을 파악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한다.
디자인이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질문해 본 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리했다면 전체적인 디자인 방향성은 이미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중요한 것은 바로 디자인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2) 콘셉트(형용사적인 단어)와 그 콘셉트를 구성할 3) 키워드(의미 요소)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무엇이 우선순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디자인의 목적을 찾는 단계에서 전체적인 방향성을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키워드가 도출될 수도 있고, 반대로 어떤 키워드를 담아낼지 고민하다가 전체를 이끌고 갈 방향성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세 가지 요소]을 기억할 때에는 순서대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이 요소들의 의미하는 개념적인 이해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게 더 중요합니다.
콘셉트의 사전적인 의미는 [1. 개념, 관념 2. 의미 개념 3. (상품의) 콘셉트] 말 그대로 개념입니다. 즉 디자인을 할 때에도 개념을 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에 각자의 특징이 있듯이 디자인도 시각적 개념을 잡고 시작해야 합니다. 시각디자인에서는 심플한, 화려한, 역동적인, 미니멀한, 부드러운, 어두운, 젊고 트렌디한, 정열적이고 강한 등의 콘셉트가 있습니다. 형용사적인 단어이자 디자인의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죠.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평소에는 보이시한 스타일로 옷을 입다가 갑자기 오늘만큼은 우아하고 싶어서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었다면 그날의 스타일 콘셉트는 ‘우아한 콘셉트’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어떤 디자인을 보고 콘셉트에 대해 물었을 때 “심플하면서 미니멀한 콘셉트입니다”라고 얘기한다면 그 디자인은 일관된 콘셉트를 유지하는 좋은 디자인일 수 있지만 “부드럽지만 날카롭고 강한 느낌의 콘셉트입니다”라고 얘기한다면 듣는 이는 두 가지 콘셉트 사이에서 혼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 번쯤 “화려하지만 심플하게 느낌 있게 디자인해 주세요”와 같은 말을 들어 보았을 겁니다. 물론 어떠한 두 개 이상의 콘셉트가 접목되어 멋진 결과물로 완성될 수도 있지만, 물과 기름처럼 혹은 따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도저히 엮일래야 엮일 수 없는 콘셉트는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콘셉트가 섞이는 경우 대부분 실패한 디자인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의 분위기를 이끌어갈 콘셉트는 보다 명확하게 하나의 형용사적 단어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하고 모호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콘셉트 자체가 [모호함, 어지러움,혼란]이라면 모든 콘셉트가 섞인 그 자체가 하나의 콘셉트가 됩니다.
위에서 들었던 예시를 이어서 얘기해 보면, 아이들을 위한 행사 디자인을 목적으로 ‘희망차고 밝은’ 콘셉트를 도출했다면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지만 ‘고급스럽고 우아한’ 콘셉트를 도출했다면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얘기하였지만 콘셉트와 키워드는 중요 순서가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목적과 기능을 찾는 단계에서 키워드가 도출될지, 혹은 키워드가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콘셉트를 도출할지는 실무에서 매번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순서보다 글로서 정리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콘셉트가 형용사적 단어를 의미한다면 키워드는 사랑, 희망, 믿음, 신뢰, 감사, 성장, 기쁨, 행복 등과 같은 명사적 단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또한 콘셉트는 디자인을 이끌고 갈 하나의 분위기를 뜻하여 최대한 한 가지로 정리하는 것이 좋지만, 키워드는 하나의 디자인에서 3~4개 이상 여러 가지로 도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젊은 부부의 행복한 육아를 위한 캠페인 디자인을 위해 [사랑+희망+신뢰] 라는 키워드를 담아 [부드럽고 감성적인 콘셉트] 을 도출할 수도 있고, 1인 가구의 홈 트레이닝 제품을 위해 [열정+미니멀] 이라는 키워드를 담아 [스포티한 콘셉트] 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공통점은 디자인에 들어가는 명사적 키워드는 여러 가지이지만 콘셉트는 한 가지라는 겁니다. 꼭 이 법칙을 지켜야 하는 건 아니지만 숙련된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대게 여러 개의 콘셉트를 접목시키면서 모호하고 불분명한 콘셉트로 도출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한두 가지로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또한 디자인의 방향성과 어울리는 키워드들을 한 데 나열해 보고 이 모든 것들이 이질감 없이 잘 매치되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 처음은 어렵겠지만 습관을 들인다면, 자기가 한 디자인은 물론 누군가가 한 디자인을 보고도 그 사람의 의도를 읽어내고 키워드로 도출할 수 있게 됩니다.
tip. 디자인 전체 방향성을 이끌고 갈 하나의 콘셉트 정리하기
tip. 디자인의 방향성이 정해졌다면, 그와 어울리는 콘셉트[형용사적 단어]와 디자인 키워드[명사적 단어]를 나열해 본다. 이때 중요한 점은 디자인의 목적/기능과 상반되는 단어는 배제해야 명확하고 일관된 디자인 콘셉트가 도출될 수 있다.
평소 디자인을 할 때 앞서 나온 세 가지 요소를 기억하고 실행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을 더 잘 하고 싶고 실력을 빠르게 상승시키고 싶다면, 평소에 어떤 디자인이나 광고 등을 본 뒤 그 디자인의 요소를 직접 정리해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조립된 장난감 부품을 하나씩 뜯어본다고 생각하면 쉽죠. ‘이 부품은 머리 부분이고 이 부품은 발 부분이네’ 하고 완제품을 뜯어본다면 다음번 조립이 더 쉬운 것처럼 이 디자인은 어떤 목적과 기능을 가지고 있고, 어떤 키워드를 활용해 어떤 콘셉트를 도출했는지 분석해 보는 겁니다. 이는 디자인 작업 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꼭 필요한 습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 디자인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디자인을 분석하고 재해석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부품을 뜯어본 뒤 비슷한 새 제품을 조립하는 것과 같이 ‘나라면 어떻게 디자인을 할까?’ 하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본 뒤 실행해 보는 겁니다. 디자이너들도 기존에 이미 잘 된 디자인을 분석하고 리뉴얼 하면서 실력이 상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디자인을 배울 때, 선생님으로부터 시중에 나와있는 디자인과 똑같이 디자인을 해오라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똑같으면 똑같을수록 높은 점수를 준다고 하기에 하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카피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과제는 디자인적 스킬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제였으나,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스킬을 표현하기 전에 이 디자인에 대한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분석하는 과정을 익혔다면 디자이너로서 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실무에서 디자이너들은 “그냥 해봐”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직장 상사나 회사의 대표가 “그냥" 시키는 디자인은 목적과 콘셉트가 정해져있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만족을 시킬 수 없습니다. 결국 디자이너는 의도치 않게 평가절하 되어 안 좋은 피드백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명확한 의도와 명확한 업무 프로세스는 디자이너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입니다. 모든 디자인에는 의도와 목적이 있고, 이것이 어떤 사용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 기획하는 것이 디자이너(기획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디자인에 정답은 없을지 몰라도 해답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해답을 찾는 과정을 머릿속에 쉽게 그릴 수 있다면 시각적으로 디자인을 구현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세 가지 요소를 익혔다면, 이제 비로소 포토샵을 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