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26. 고흐의 자취를 따라서

김나훔| 2022.09.15

다음날 L누나와 노르망디 지역을 여행하기로 했다. 우린 그 전에 오베르 쉬즈 우아즈에 들리기로 했다. 오베르 쉬즈 우아즈는 빈센트 반 고흐가 프로방스의 정신병원에서 힘든 시기를 보낸 뒤 말년에 정착한 파리 외곽의 한 마을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곳이며 동생 테오와 함께 잠들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린 아침부터 차를 렌트해서 떠났다. 날이 흐렸다. 차를 타고 도심 밖으로 나오자 넓은 들판과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사람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누나는 내게 요즘 어떤 음악을 듣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독일 음악가인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누나는 카플레이로 리히터의 Dream13을 틀었다. 지금 풍경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음악에 귀 기울이며 창밖을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뿌연 안개와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한 시간쯤 되었을까 조용한 마을에 도착했다. 누나는 한 교회 앞에 차를 세웠다. 이 교회가 바로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고흐의 그림 오베르 교회라고 했다. ‘그렇구나!' 난 급히 차에서 내려 여러 각도로 교회를 둘러보다가 그림과 같은 구도를 찾았고 그 자리에 바로 섰다. 130년 전 고흐도 이 언저리에서 교회를 유심히 바라보았을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그의 그림에도 한 여인이 서있지 않던가. 사진 촬영을 위해 누나에게 그림과 같은 위치에 서있어 주기를 요청했고 누나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다. 사진을 찍어보니 고흐가 딱딱하고 직선적인 교회를 얼마나 유연한 시각으로 그림 안에 풀어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예술이란,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시켜 새롭게 담아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났던 고흐의 오베르 교회와 실제 오베르 교회


다음으로 고흐가 생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그의 방을 방문했다. 세계 여러 화가들 중엔 당대에 인정을 받아 좋은 집이나 정원을 소유해 살던 화가들도 있었지만 고흐의 삶은 반대였다. 삐그덕 거리는 여인숙의 낡은 계단과 방은 말년까지 구석으로 내몰린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벽에는 금이 갔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이 방에서... 가슴의 총상으로 괴로워하던 빈센트, 그리고 형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극진히 간호를 했던 테오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고흐의 마지막 그림 배경이 된 밀밭과 고흐 형제가 잠들어있는 공동묘지에도 갔다. 겨울의 밀밭은 약간의 초록빛이 섞인 평지였다. 농기계가 만든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걷자니 기분이 묘했다. 생의 끝에 다다른 고흐의 그림이기 때문일까 작품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유난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삶의 처절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끝내 간직하겠다고 애쓰는 고흐의 모습이 상상된다. 걸음음 옮겨 묘지의 입구로 들어섰다. 유럽의 공동묘지는 처음이었는데 그 형태나 방식이 다양해서 흥미로웠다. 감정이 무거워지기 쉬운 장소이지만 여러 방식으로 잘 꾸며진 묘지들을 보며 땅속에 묻힌 고인이 생전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가를 미뤄볼 수 있었다. 이 또한 사랑의 묘현이겠지... 생각하며 묘지 사이를 걷고 있는데 누나가 한 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훔아 이게 고흐 형제의 묘지야"

낮은 곳에 위치한 묘비 두 개가 있었다. 다양한 묘지들 사이에서 반 고흐 형제의 무덤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또 그런 무덤이 그들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했다. 특히 고흐의 삶을 가슴 깊이 사랑하는 L 누나는 묘비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난 말없이 무덤을 한참 응시했다. 산다는 건 뭘까. 지금은 세기의 예술가가 되었지만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그린 수백 점의 그림들 중에서 단 한 작품밖에 판매하지 못한 이 가난한 예술가의 인생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또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형에 대한 심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테오의 희생과 고통의 삶. 두 형제의 짧은 인생 앞에서 뒤늦은 세계적 관심과 평판, 명예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비가 묘하게 이 날의 장소와 잘 어울렸다.


반 고흐 형제의 묘지 / 형 빈센트 반 고흐의 묘비


불꽃처럼 뜨거웠던 예술가는 이제 땅 속에 묻히고 차가운 묘비 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정신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꺼지지 않고 세월과 국경을 넘어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 그 사실은 나 자신도 시대의 흐름이나 타인의 시선을 위해서가 아닌 내가 믿는 가치와 신념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사명에 힘을 실어줬다. 그렇다면 내가 믿는 가치는 무엇일까? 당장 그 답을 알 수 없지만 이 날은 커다란 물음표 하나를 얻어오는 것만으로도 내게 큰 수확이었다.


오베르 성당과 마을의 모습

" 너와 그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지금은 편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해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 1874년 1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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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훔

[뭐]저자
사진과 글, 그림을 그리는 김나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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