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힘든 시기에 그는 취업을 준비했다. 영국 런던에서 석사를 하며, 독일과 영국의 자동차 회사에서 인턴도 하고, 공모전에서 상도 타고, 이렇게라면 졸업하고 바로 취업에 성공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다.
그런데 석사를 졸업하기 위한 전시를 밤을 연달아 세어가며 준비할 즈음에 코로나라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는 황당한 뉴스를 접했다. 하지만 설마 그 작은 바이러스가 그의 취업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어마어마한 바이러스는 2020년 아니 지금까지 세계를 괴롭혀왔고, 우리도 지독하게 괴롭혔다. 결국 그의 졸업 전시는 미루고 밀리다 취소되고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그에게 졸업 전시는 매우 중요한 기회였다. 주로 자동차 회사들의 디자인 디렉터들은 졸업 전시에 와서 신진 디자이너들을 발굴한다. 일반적인 공채로 뽑기보다는 졸업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면 연락을 주고받으며 특채처럼 채용이 된다. 모든 학생들이 이를 기대하며 영혼을 갈아 졸업 전시를 준비한다. 그런 어마어마한 기회의 장이 코로나로 인해 날아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팬데믹에 회사들은 신입 디자이너를 뽑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회사원들까지도 자르기 시작했다. 매일 그런 뉴스가 나오고, 록다운이 연장될수록 그는 조급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록다운으로 인해 2020년 3월부터 나는 집에서 일했다. 우리 부부가 24시간 붙어있게 된 거다. 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매일 일분일초 타인과 붙어있으면 힘든 법이다. 그런데 취업 준비를 하는 남편과 한 식탁에서 매일 9-6시를 마주 보고 일해야 한다니. 이제 와서 솔직히 털어놓으련다. 그도 나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매일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업그레이드했고, 이를 첨부해 수 백 개의 메일을 보냈다. 링크드인, 인스타, 지인의 회사 동료나 매니저들 이메일, 심지어는 이름으로 유추한 이메일 주소들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세계에 흩어진 자동차 회사들의 디자인 팀에 연락을 했다. 설마 답장을 줄까 싶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정식으로는 모집 공고가 거의 뜨지 않았고, 그가 지원하고픈 외장 디자인 팀은 전혀 사람을 뽑지 않는 듯 보였다.
그래도 답장을 주는 꽤 많은 디렉터들이 있었다. 간절한 마음이 닿은 것일까. 가고 싶은 회사들의 디자인 디렉터들이 꽤나 답장을 주었고, 포트폴리오 리뷰를 정성 들여해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금 당장은 사람을 뽑지 않지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고마운 답장들은 아슬아슬하게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앞서 다른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린 대학 시절부터 연애하며 함께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리고 약속했다. 디자이너로서, 결혼하고선 부부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자고. 호기롭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의 부모님께 왜 그가 유학을 가면 좋은지, 그 후엔 어떤 과정을 거쳐 자동차 디자이너가 될 건지, 이를 같이 준비하고 이겨내겠다고 당돌하게 말씀드린 기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처음엔 기대였고, 간절한 바람이 되었다가, 나중엔 오기까지 이어졌다. 물론 나보다 그가 더 힘들었을 테다. 우리에게 2020년은 최악의 해라고 웃어넘기는 하루하루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드디어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었다. 졸업식이 2020년 2월이었으니 꼬박 1년 3개월이 걸렸다. 매일을 같은 의자에 앉아 디자인을 했다. 나도 그도 같은 자리에서 서로 다른 디자인을 했다. 그는 개인 프로젝트를 하며 포트폴리오를 업그레이드했고, 나는 회사 일을 했다. 종종 서로에게 디자인 피드백도 주고, 디자인 이야기로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3-4개월 전에 보냈던 이메일에 답장이 왔다. 심지어 그가 이름을 통해 회사 이메일 주소를 유추해 반신반의하며 보낸 것이었다. 보통 이메일 주소가 존재하지 않거나 수신자의 이메일 용량이 부족하면, 자동 이메일이 반송된다. 반대로 자동 이메일이 반송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전송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매우 큰 이탈리아의 한 회사 부사장에게 겁도 없이 포트폴리오를 보냈고, 그 사람이 인사팀에 전달해서 답장이 온 것이었다.
그 후에 모든 과정은 꽤나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는 일주일 뒤에 인터뷰를 보았고, 일주일의 테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후 며칠 뒤, 그는 오퍼를 받았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회사였다.
그가 오퍼 전화를 받고 있을 때, 나는 옆에서 숨죽여 그 내용을 듣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인터뷰가 집에서 줌 콜로 이루어졌고, 덕분에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화가 끝나자 어안이 벙벙한 그를 껴안고 소리를 질렀다.
때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당황스러운 상황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냥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랄 때. 누군가가 나의 안부를 묻는 것조차 불편할 때. 그저 기다리는 것이 답일 때.
그럴 땐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같이 기다려주는 것이 큰 힘이 된다. 당연히 쉽지 않다. 같이 기다려준다는 것은 상대방의 답답함, 염려, 괴로움, 짜증을 받아준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나 자신만 생각하기도 벅차는데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까지 받아내라는 건 때론 과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연애를 막 시작한 커플, 오래 같이 살아온 부부, 자기가 낳은 아이와 자기 사이, 그 누구에게도 힘든 일이 분명하다.
그래도 그 힘든 일을 해내는 관계가 오래간다. 과연 서로 좋은 모습만 볼 수 있는 깊은 관계가 있을까. 내가 이 사람과 오래 보고 싶다면, 그만큼 가치가 있다면 같이 기다려주는 건 어떨까.
때론 “같이 기다려줄게”라는 말이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