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당신의 첫 경험을 사겠습니다.

박승원| 2022.07.29

당신의 지나온 삶에 값어치를 매겨보자.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당근 할 것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휴대폰. 얼마에 올리고 싶은가? 어제 입고 나갔던 청바지는? 지난겨울의 추억이 담긴 머그잔이라면 조금 더 받을 수도 있다.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준 향수는 올리브영 세일 때 사둔 향수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 당신의 전화번호부. 팔리고 나면 기억할 수 없다. 얼마에 올리고 싶은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떨리는 첫 데이트의 기억. 감히 사겠다고 덤벼든다면 얼마를 부를 것인가. 마스크 없이 낯선 나라에서 맞이했던 노을의 추억. 그리고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하다 못해 울컥하는 당신만의 그 경험.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인가?

얼마에 팔겠다고 가정조차 못할 만큼 소중한 것들은 아마도 물리적인 형태가 없을 것이다. 기억, 추억, 감정, 정확히 말하면, 어떤 특정한 경험. 글의 제목을 읽으며, 당신의 첫 경험에는 얼마만큼의 값어치를 매길 생각이었는가? 얼굴이 붉어졌다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하고 있는 첫 번째 경험, 가장 오래된 기억을 말한 것이다. 보통 4-5세 전후로 형성되어 있다. 인간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 그때 어느 정도 완성되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한 것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나온 기억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매일 기억이 리셋되는 대신 매일 1억을 받을 수 있다면, 수락할 것인가? 메멘토를 기억하자. 그 돈의 출처를 알 수 없다면 그것은 엄청난 공포가 될 수 있다. 설령 마음 편히 돈을 쓴다 한 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소중한 관계 역시 공통의 기억을 연료로 한다. 여기서 '기억'이란, 경험에 한정되어 있다. 심리학자들이 기억을 분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중 의미기억과 일화기억이라는 분류법이 있다. 의미기억은 사전적 정의나 지식을 말한다. 일화기억은 경험에 대한 기억이다. 물이 산소와 수소로 구성된다는 지식이 한여름 체육시간 시원한 냉수 한 잔의 기억보다 소중할 수는 없다.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경험이다.모든 것은 경험으로 기록된다모든 의미기억은 일화기억을 포함한다. 물이 산소와 수소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당신이 저절로 알게 되었을 리 없다는 뜻이다. 그 지식을 습득한 것은 결국 어떠한 경험에 의한 것으로, 일화기억으로도 저장됐을 것이다. 물론,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기억이 없는 것과 인출에 실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이것은 기억 장에서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모든 것이 경험이라는 명제에 집중해보자.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글의 서두에서 '모든 것'으로 언급했던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역순으로 나열해보면, 노을의 추억, 데이트의 기억, 전화번호부, 향수, 머그잔, 휴대폰. 추억과 기억은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쉽다. 전화번호부는 휴대폰이 대신해주는 일종의 의미기억이다. 모르는 사람이 저절로 저장되었을 리 없으므로, 이 역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향수, 머그잔, 휴대폰은 앞의 무형가치와는 명확하게 성격이 다르다. 이것들은 유형의 재화다. 이것들도 경험이라고 볼 수 있을까?

머그잔을 떠올려보자. 일반적인 형태의 머그잔. 이것은 의미기억이다. '당신의' 머그잔을 떠올려보자. 코코아나 커피를 타 마시던, 회사에서 사용하는, 지금 책상에 놓여있는. 이것은 일반적인 머그잔이라는 개념적인 지식이 아니다. 당신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당신 삶의 일부로써 어떠한 경험과 연관되어있다. 여행지에서 기념품으로 구매를 했던 경험, 뜨거운 코코아를 호호 불며 손을 녹이고 혀를 데인 경험, 자취를 시작한 친구의 집들이 선물로 건네준 경험. 당신의 물건은 당신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양자역학이나 인식론과 같이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몰라도 고양이가 귀엽다는 것만 안다면 읽을 수 있도록 써 내려갈 예정이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귀엽다'는 정서를 가진다. 식육목 고양이과의 포유류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고양이의 애교스러운 박치기는 우리에게 사랑스러움이라는 정서를 남긴다. 이것이 유형의 존재들이 우리에게 경험되는 방식이다. 이제 수긍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은 경험으로 기록된다.


삶의 모든 것은 경험이다. 이것을 나만 알고, 이 글을 읽는 당신만 알고 있는다면 우리는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공부하고, 심지어 사업도 하고 있다. 고객경험 CX, 브랜드경험 BX, 사용자경험 UX, 요즘은 그중에서도 UX writing이라는 분야가 인기라고 한다. 용어가 어렵다면 다른 예시를 떠올려보면 된다. 놀이공원은 전형적으로 경험을 파는 공간이다. 더 현대 서울은 상품과 식음료를 넘어 경험을 팔기로 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경험 역시 기획이 필요하다. 상품, 서비스, 행사, 브랜드. 모두 기획이 필요한데 경험만은 알아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예전의 경험디자인(=기획)이 단순히 친절한 응대에 그쳤다면, 지금의 경험디자인은 더 폭넓게, 그리고 더 세세하게 적용되고 있다. 친절한 직원을 만나는 경험만 경험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가고, 모든 접점이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거의 모든 기업이 총체적인 경험을 디자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PM(기획자)의 채용공고가 눈에 띄게 늘었다. 개발자 전성시대라고 하지만, 개발자가 늘어난 만큼 더 많은 기획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문과에게도 봄은 오는가!


그러나 아직 경험을 디자인하는 기획자들은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UX 디자이너, 서비스 기획자, 상품 MD, 브랜드 매니저. 그들은 경험디자인을 각각의 분야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고, 훌륭하게 성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야의 기반이 되는 인간 경험(HX)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은 여전히 생소한 듯하다.

메타버스라는 이슈가 뜨겁다. 앞으로의 생활은 온라인 가상현실로 옮겨갈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이 많다. 문화, 경제, 일. 벌써 많은 분야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인간의 경험도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간 경험에 대한 통찰력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여기까지의 내용에 공감한다면, 앞으로 이어지는 글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의 경험에 대한 심리학 관점의 해석, 경험 디자인의 방법론, 분야별 적용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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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HX(Human eXperience)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습니다. 사람과 경험에 대해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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