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는 터라 글이든 그림이든 뭐든 기록을 남겨놓는 편이다. 일기에서 에세이로, 에세이에서 브런치로 넘어오는 과정처럼 자연스럽게 나의 그림노트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는 일은 당연한 결과 였다. 나는 주로 라인드로잉을 그리는 편인데, 선이 주는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는 스타일을 좋아해서 나의 그림 도구는 플러스펜, 검은 잉크펜이 주를 이룬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애플펜슬로 업그레이드 되긴 했지만)
5년 전에 처음으로 그림 계정을 만들고 그림을 업로드 했다.
오브젝트를 보고 상상을 더해서 그리는 걸 좋아해서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때가 많았다. 일단 뭐라도 그려보자하는 마음에 그렸던 터라 주제도 중구난방에, 스타일도 확고하진 않았다. 그래도 일단 올려보자라는 소정의 목표를 달성했다. 생각보다 꾸준하게 올랐던 팔로워가 신기하기도 하고 답글도 꼬박꼬박 달고, 업로드도 꾸준하게 하기 시작했다. 팔로워를 1000까지 만들고 나니까 생각지 못한 외주 작업도 들어오고, 전업 작가로의 길도 열리는 듯 했다.
팔로워가 늘어가면서, 점점 내 그림은 내가 그리고 싶어하는 그림이 아닌 남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을 그리는 데 초첨이 맞춰졌다. 재밌기만 하던 그림이 일이 되어가면서 버겁게 느껴졌다. 아이디어도 점점 고갈되가고, 그림에 대한 정체성도 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체적인 활동이 아닌 기계처럼 그리는 그림을 사람들이 좋아할리 만무했다. 점점 그림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잠시나마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멈추고 휴식기를 가져보기로 했다. 내가 뭘 그리고 싶어하는지를 찾아보기로
뭐든 그려보자라는 마음이 잘 그려야된다라는 압박이 나의 어깨를 짓누를 때 마다 모른 척 했던게 화근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게 번아웃이 되어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일명 잘 먹히는 그림을 내려놓고 부담없이 그리다보니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용기가 생겼다. 새마음 새 뜻으로 다시 인스타 아이디를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오브젝트를 찾아다니자라는 의미의
find_object
이름을 정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걸리지 않았다. 백수니까 김백수라고 할까 하다가 그래도 의미가 담긴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파인드오브젝트라는 이름으로 정했다.이제 목표는 욕심내지 말고 딱 1일 1그림만 꾸준히 하는 것.
두 달 정도 꾸준히 계정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소심한 관종이란 이런걸까
아무런 설명 없이 올리던 그림에 조금씩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공감할만한 스토리가 뭘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좋아했을 때 그 묘한 쾌감을 느낄 때가 좋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사람들과 그림으로 얘기하고 싶다. 꾸준하게 활동할 수 있는 작가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