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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주는 백화점

박승원| 2022.08.17



| 없는 것이 없는 백화점에도 단 두 가지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시계, 그리고 창문.

공간 설계에 경험 디자인의 관점이 적용되기 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에 시계와 창문을 두지 않는 것은 모두가 아는 불문율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백화점의 1층에는 남자화장실이 없었다. 남자화장실을 찾는 고객에게는 항상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안내를 전해야 했다. 또한 포인트 등 단순 문의를 위해 방문한 고객은 고객상담실을 찾기 위해 맨 위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조금 더 악랄한 마트나 백화점은 상행과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엇갈리게 배치한다. 1층에서 출발하여 2층에 도착한 에스컬레이터의 옆에는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2층으로 내려오는 출구가 위치한다. 3층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매장을 반 바퀴 돌아야 한다.


백화점은 경험 디자인을 할 줄 몰라서 우리를 불편하게 할까?


설계자가 멍청해서 위와 같은 불편함을 만들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창문과 시계를 두지 않는 것은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고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함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엇갈리게 배치하고, 단순 업무 고객센터를 맨 위층에 두는 것은 동선을 의도적으로 길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동선이 길다는 것은 방문자에게 노출되는 매대의 수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남자화장실이 2층에 있었던 것은 1층 잡화 매장의 주요 고객이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을 것이다. 이 정도는 대부분 상식 선에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백화점의 경험 디자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층 잡화 코너의 향수 매장들은 그 시즌의 주력 상품이 되는 향수를 주기적으로 매장 주변에 뿌린다. 그 향이 곧 해당 브랜드의 인상이며, 보이지 않는 광고와도 같다. 이 때문에 백화점에 방문하는 고객이 1층 출입문을 지나면 고급 브랜드의 향수 냄새를 맡으며 백화점에 입장하게 된다. 한 가지 더, 1층의 향수 매장들은 지하에서 올라오는 음식 냄새를 차단해준다. 통상 2층은 여성복 3층은 남성복이 위치하게 되는데, 1층은 냄새가 배지 않는 가방, 장갑, 지갑 등의 잡화가 위치하기 때문에 향수의 영향을 덜 받는 동시에 음식 냄새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리고 1층의 향수에 가려 지하의 식품관 냄새는 2층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백화점보다 종합쇼핑몰이라는 형태가 우리에게 더욱 익숙해졌다. 대형 빌딩 속에는 명품 브랜드관이 가득 들어차는 대신, 식품과 문화생활이 쇼핑과 공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방문자의 니즈 역시 다양해졌고, 운영사는 자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맞게 공간을 설계한다. 지하 식품관, 1층 잡화, 2층 여성복, 3층 남성복, 시계와 창문은 삭제와 같은 불문율들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제공하고자 하는 경험에 따라, 쇼핑몰의 설계 역시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틀을 깨는 공간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 사진: 더 현대 서울 내부(한국경제)


경험디자인의 주요 목적은 참여자에게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험 디자인의 목적이 가장 행복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만 맞춰져 있지는 않다. 무조건 좋은 것을 주려고만 하기 전에, 경험 디자인 자체의 목적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글의 초두에서 언급한 백화점의 의도된 불편함 들은 모두 매출의 상승과 연관되어 있다. 방문객에게 다소 불편함을 주더라도 매출이라는 목표가 더 우선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방문을 꺼리게 할 만큼의 치명적인 불편함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유발되는 불편함이 본인의 것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적다는 이유로 장애인 화장실을 10층에 배치하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일 사용자는 얼마나 될까 | 사진제공: JTBC


사진을 포함한 정보공유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대이다. 더 현대 서울은 특별한 SNS 공유 이벤트 없이도 자발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수도 없이 공유되었다. 이것은 브랜딩의 힘인 동시에 훌륭한 경험 제공의 힘이기도 하다. 단순히 단기적인 매출 상승이 목적이었다면 방울이 떠다니던 그 핫플레이스에는 어떤 브랜드의 매장이 들어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공간을 온전히 경험을 위한 공간으로 디자인 한 덕에 더 현대 서울은 수천만 원어치의 광고효과를 누렸다. ‘매장 하나가 낼 수 있는 단기적인 매출 상승‘보다 ‘훌륭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압도적으로 큰 시대이기 때문이다.

경험은 목적에 맞게 디자인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참여자에게 유쾌한, 편리한, 감동적인 경험을 주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러나 브랜드의 방향성과 공간의 역할, 시대에 따라 경험 디자인의 목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종합적인 사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제공하는 경험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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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HX(Human eXperience)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습니다. 사람과 경험에 대해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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