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는 무엇을 잘 해야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개인마다 답이 다를 것이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기획력이라 답하는 디자이너가 있을 것이고, 시각적 결과물의 완성도를 답하는 디자이너가 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먼저 떠올릴 것이고, 그것을 충족시킨 미래의 모습이 인정받는 디자이너일 것이라 생각한다. 공감한다. 인정받고 싶다면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 된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나를 비롯한 많은 디자이너에게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조직에서 시각 디자이너는 결과물의 완성도만 책임져선 안된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었더라도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그 디자인은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많은 디자이너가 공감할 것이다.)
특히 자신의 디자인을 조직의 리더가 대신 설명해 주는 분위기라면 더 위험하다. 조직의 리더는 자신을 대신해 디자인을 그리고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대리인이 아니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할수록 디자이너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성장하지 못한다. 또한 조직에서 신뢰도 점점 떨어진다. 디자이너의 생각이 신뢰와 공감을 잃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렇기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 능력을 키우면 좋을지 이야기하려 한다.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 조직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생각이 신뢰와 공감을 얻을 때까지 노력하자.
메신저와 메일 등에서 디자이너는 디자인 공유 및 설명을 상세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재택근무와 같이 비대면으로 업무를 해야 하는 요즘은 그 빈도가 훨씬 높아졌다. 글을 잘 쓴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쓰기를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이해하는 글보다 상대방이 이해하는 글이어야 한다.
상대방 관점에서 글을 쓰자.
상대방과 일정 수준의 이해도를 가진 분위기라도 상대방은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많은 것을 요약하고 대명사(그것 이것 저것 등)를 반복해 사용한 글은 상대방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상대방 관점에서 어려운 글이다. 글은 길면 안 되지만 필요 이상으로 생략하는 글쓰기는 피해야 한다.
상대방 관점에서 글을 쓴다면 많은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를 선택하게 되고, 어쩔 수 없는 전문 용어를 사용할 경우 주석을 달아 충분한 설명을 이어갈 것이다. 전문 용어를 남발하면서 전문가처럼 보이려는 글보다 쉽게 이해되는 글이 더 멋지고 전문가처럼 보인다.
우리는 디자인을 만들 때 사용자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조직 내에서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내 글을 읽는 리더 혹은 구성원의 관점에서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즉 상대방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정보가 무엇일지, 자신과 어느 정도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고민하면 공감을 얻는 글쓰기를 할 수 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정보와 상대방이 보고 싶은 정보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프로젝트를 어렵게 풀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확실하게 이해시키려 노력하자. 쉽게 풀 수 있는 과제를 어렵게 쓴 글로 힘들게 돌아가지 말자.
글은 디자인과 동일하게 친절해야 한다.
정보 구분이 잘 된 글을 쓰자.
편집 디자인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편집 디자인을 할 때 정보의 우선순위를 분류해 레이아웃을 구성한다. 메신저와 메일에서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정보는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이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도록 환경에 맞게 분류해야 한다. 메신저일 경우 말풍선을 분류해 정보를 강조할 수 있고, 메일일 경우 크기 굵기 색상 변경 등 방법은 다양하다.
즉 글을 읽는 대상이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글을 쓴 본인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놓치지 않고 정보를 모두 읽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 상대방의 능력을 탓하지 말고, 정보를 쉽게 분류하지 못한 본인 스스로를 탓하자.
또한 URL, 첨부파일, 이미지와 글을 같이 전달할 경우 어떻게 묶어서 전달하면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을지 충분히 고민하자. 이 또한 상대방 관점에서 고민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면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해하는 것까지가 일의 끝이다.
사소한 습관으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습관적으로 쓰는 잘못된 글쓰기를 피하자.
우리는 평소 글을 쓸 때 "~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 것 같습니다." "~해보았어요."등 자신이 작업한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명확하지 않은 표현을 자주 쓴다. 굉장히 사소한 부분이지만 중요하다. 자신 외에 작업물을 명확하게 설명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보다 명확하게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 좋습니다." "~입니다." "~했습니다." "~ 제안합니다." "~이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등의 표현으로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자.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만든 작업물임에도 긴가민가하단 이유로 명확하지 않은 글쓰기로 정보를 전달하면 안 된다. 명확한 글쓰기는 디자이너의 자신감과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높은 결정권을 가진 리더에게 정보를 보낼수록 이 부분을 특히 신경 쓰면 좋겠다. 자신의 작업물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는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연차와 무관하게 아마추어로 보일 것이다. 내가 만든 작업물인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자.
논리적인 글쓰기는 프로젝트를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 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글을 잘 쓰기 위해선 프로젝트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충분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어야 핵심이 담긴 글을 쓸 수 있다.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지 않게 된다. 프로젝트의 배경, 목적, 목표, 달성 효과 등. 프로젝트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는 정보들을 이해해 논리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프로젝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충분히 이해하면 보다 자신감 있게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전달해야 할 정보를 전달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전달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는 것이 적을수록 글을 주저리주저리 쓰게 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좋은 글쓰기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니 프로젝트의 정보들을 가능하면 많이 머릿속에 저장하자.
대면 회의, 화상 회의, 연봉 협상, 평가 리뷰 등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경우 자신감 있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당연히 알 것이다.) 부족한 점이 있다는 이유로 어눌하고 힘없는 말하기가 반복될수록 만만한 존재이자 신뢰 가지 않는 디자이너로 비칠 수 있다.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말하기를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TPO에 맞는 말하기를 하자.
말을 잘하는 사람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신뢰와 공감을 얻는 말하기를 하기 위해서 TPO(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를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생각한다.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필요한 말하기가 있고, 이슈가 발생해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에 필요한 말하기. 또 동료들과 점심 식사 자리에서 필요한 말하기가 있다.
TPO에 따라 말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논리적인 말하기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말하기를 고집하는 것도 좋지 않다. TPO에 맞는 말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논리적인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예시로 시간이 적고, 많은 구성원이 피로한 상황은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TPO에 맞는 말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지 않고 핵심부터 이야기한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준비한 말하기의 순서를 바꾼다.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생길 경우 필요에 따라 부연 설명을 이어간다. 이처럼 TPO를 고려해 준비한 말하기를 눈치 있게 바꾸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하자.
상대방 의견만 수용하는 만만한 존재가 되지 말자.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면 상대방 의견에 대답도 할 수 없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상대방의 의견이 더 맞는다고 생각될 경우도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면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의 말이 맞냐 틀리냐를 따지고 결정하는 것이 회의의 목적이 아니다. 회의를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과 비교해 맞다 틀리다를 생각하지 말자.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의견은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상대방 의견만 수용하는 사람은 생각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만만한 존재가 된다. 물리적인 부담감도 늘어난다. 자신만 힘들어질 뿐이다.
누가 봐도 틀린 의견을 자신감 있게 말하라는 것이 아니다. 수용할 건 수용하더라도 내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하자. 그리고 수용하되 자신의 의견을 일부 적용할 수 있을지 제안하자.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이야기한다면 조금이라도 내 의견이 적용될 수 있다. 단 자신의 의견을 꼭 반영해달란 고집을 부려선 안된다. 이 점을 유의하자.
회의 내용을 반복해 말하지 말자. 대화에 집중하자.
가끔 회의나 대화 자리에서 나온 내용을 반복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신뢰를 잃는 안 좋은 습관이다. 식곤증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잡생각이 많아 대화에 집중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니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본인 스스로가 환경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복해 이야기하는 습관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꼭 고치자. 남들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편이라면 2~3배는 더 노력해 대화를 준비해야 한다. 집중력 있는 모습으로 말하는 사람은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모든 상황에서 집중하려 노력하자.
회의에서 아무런 의견 없이 듣기만 하지 말자.
의견 없는 디자이너는 의욕 없는 디자이너다.
회의에서 의견이 없다는 건 시키는 것만 하겠다는 의지로 비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성장을 고민하는 디자이너로 평가받기 어렵다. 일정 수준까지 합의가 된 상황이라면 의견이 적을 수 있다. 하지만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의견이 없다는 건 의욕 없는 디자이너일 뿐이다. 적어도 1개 이상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면 좋겠다. 그러니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가지자.
억지로 의견을 만들지 말고 프로젝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준비하자.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더가 아니더라도 실무 담당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필수라 생각한다. 회의에서 아무런 의견 없이 듣기만 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말자. 말하는 사람은 다음 회의 때도 말하고, 듣는 사람은 다음 회의 때도 듣기만 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의견과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에서 언급한 의견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아이디어 측면의 의견이다. 아이디어는 내지 않고 힘든 상황만을 말하는 디자이너가 되지 말자. 힘듦은 상대적이다. 즉 모두가 힘들다.
"인원을 충원해달라" "힘드니 한 명만 붙여달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등도 회의에 필요한 의견일 수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안정권까지 끌어올릴 방법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의견 자체가 없는 것도 위험하지만 의견의 질도 중요함을 명심하자.
확실한 정보가 아닐 경우 말하지 말자. 아는 척은 위험하다.
말하고 싶다면 근거를 준비해라.
간혹 회의 자리에서 근거 없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최근 가장 매출이 높은 서비스는 OO인 것 같다" "요즘 모두 OO만 사용한다" "한국의 MZ세대들이 OO서비스를 많이 사용한다" "일본 사람들은 모두 OO할 것이다" 등 확실한 근거가 없는 정보를 사실처럼 이야기해 전략수립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필요한 정보를 회의에서 꼭 이야기해야 할 경우 확실한 근거를 준비하자. 보도자료, 사용자 조사 리포트 등 데이터로 기록된 정보를 준비하자. "어디 어디서 봤다" "최근 그렇게 보인다" 등에 근거는 의미가 없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사실처럼 이야기할 경우 오히려 동료들에게 반박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사람으로 비치기 때문에 신뢰까지 잃을 수 있다. 명심하자.
지금까지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내용은 굉장히 사소하고 또 어떤 내용은 뻔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붙어있기 때문이다. 가장 사소하고 가장 일상적인 것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디자이너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 스스로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해 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처음부터 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능력의 가치를 잘 안다. 그리고 감사할 줄 안다. 오늘도 노력하는 디자이너가 되자.
평생 힘을 갖고 산 강한자는 힘을 존중할 줄 모르지만, 약한자는 힘의 가치을 안다.
완벽한 인간은 아니지만, 훌륭한 인간은 될 수 있다.아브라함 어스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