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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선도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철학

바다김| 2022.05.16


빠르게 변하는 UI/UX 트렌드를 따라가기 바빠진 요즘, 더 견고하고 지속 가능한 디자인 법칙은 없을까 해서 펼쳐본 책, 뉴욕 지하철 노선도로 유명해진 마시모 비넬리의 <비넬리의 디자인 원칙>을 꺼내 들었다. 비넬리 마시모, 그는 1950년 - 195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가로 디자이너의 삶을 시작했고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로고 디자인, 뉴욕 지하철 지도 디자인, 베네통 로고 디자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브랜딩, 포스터, 건축, 그래픽 다방면에 활동하며 201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원칙'을 중시하는 디자이너였다.

책은 2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그의 디자인 원칙을 서술했으며 2부는 효과적인 타이포그래피를 위한 실용적인 팁들이 적혀있다. 이 글에서는 그의 디자인 원칙에 대한 이야기만 다루며 흥미로웠던 그의 생각 몇 가지는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다.



디자인은 원칙이다

서울시의 지하철 노선도


그를 유명하게 해 준 지하철 노선도. 최소한의 색상으로 수백 개의 역을 구분했으며, 실제 역 사이의 거리에 비례하지 않고 모든 역 사이의 거리를 통일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지면을 활용했다. 노선에 쓰인 색상은 서로 명확히 구분되어 강렬한 이미지를 남겨주며,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서울시의 지하철 노선도는 그가 40년도 전에 내놓은 디자인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는 시스템을 좋아했으며, 우연적인 것을 싫어했다. 원칙 없이는 어떤 스타일도 좋은 디자인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그가 생각한 원칙은 디자이너 스스로가 지켜야 할 지침이며, 원래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고 창의적인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 도구였다. 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가 정한 디자인 원칙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했고, 이 노선도에는 그의 7가지 디자인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디자인에는 항상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서로 정확히 의미를 이어 줄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별 의미 없이 줄을 긋는다던가 요란한 색으로 페이지를 뒤덮는 것은, 의도적이었다면 일종의 범죄라고 여겼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잘 사용하면 됐지 무슨 의미를 찾는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디자인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했던 그의 관점은 오늘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앱스토어 홈페이지 갈무리


지금은 비넬리가 활동하던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디자인이 생겨나고 있다. 기존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복제되는 시대다. 앱스토어에 등록된 200만 개의 앱의, 애플이 말한 대로 모든 기분 좋은 경험을 준다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있는가. 심지어는 인디 게임 개발자 2명이 자동으로 이미지와 효과음만 바뀐 게임을 양산형으로 자동 복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4년 동안 1500개의 게임을 찍어내고 그로 인해 16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던 유명한 [사례도 있었다.](https://www.gameinformer.com/2019/10/10/how-two-developers-made-a-living-with-awful-games) '의미 없는 디자인'이 넘쳐나는 시대에 '의미'를 찾는 것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추위와 더위를 피해 옷을 사는 것이 아니며, 집을 더 따뜻하게 하기 위해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로 하는 소비의 시대는 끝났고 스스로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물건과 제품을 소비한다. 결국 시장에서 선택받는 것은 '의미'의 발신처와 수신처가 정확할 때다.

시장조사, 포커스 그룹보다 용기가 중요하다고?


'굿 디자인을 위해 필요한 것은 포커스그룹이 아니다. 바로 용기이다.'

유일하게 넘기길 망설였던 페이지는, 마케팅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적은 글이었다. 그는 마케팅이 재무 계획, 디자인, 그리고 제조와 함께 제조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면서도 제품 제작의 중요한 결정 요소로 마케팅 이론이 활용되는 것을 불신했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들은 통계와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과감히 위험에 도전한 사람들이라며, 포커스그룹에 의해 판매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유럽의 기업에 의해 성공적으로 사업화한 주전자의 예를 들었다.

이는 결국 애매하게 정성적으로 얻은 데이터보다 직관이 중요하다는 소리다. 그는 마케팅 이론이 사용자 인터뷰를 할 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원하는 것을 물어보기 때문에 위험을 최소화하는 결정만을 하며, 이는 상품의 미래를 결정짓기에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그가 왜 직관에 의해 도전한 사람들의 수많은 실패는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의문이다. 우리의 직관은 틀릴 때가 더 많다. 특히 내가 사용자가 아닐 때는 더욱. 스타벅스 유머의 예시를 보자.


고객에 대한 이해를 상상으로 넘기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한 때 디자인띵킹, 디자인 프로세스를 거친 서비스 중 상당수가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 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그러한 기사와 비넬리의 생각을 더하면 디자인 방법론의 효용은 허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새로운 서비스와 사업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그러한 방법론이 '적절하고 옳은 방법으로' 쓰이고도 망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배트를 들고 그라운드에 올라간다고 매번 홈런을 치는 것이 아니다. 실력 있는 타자만이 유의미한 성적을 내고, 그렇지 않은 선수는 헛스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인터뷰, 페르소나, 유저 저니를 통해 얻은 정성적 데이터와 수많은 데이터 분석가와 기획자들이 사용자 체류 시간을 측정하고 수많은 A/B 테스트를 거쳐 얻은 정량적 데이터는 '훌륭한 사용자 경험'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 대상이 앱이었든 실제 물건의 판매이었든 올바른 데이터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넬리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 모두에.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올바른 '원칙'을 세울 수 있다. 용기는 직관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얻은 결정을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뿐이다.


비넬리의 디자인 원칙 (The Vignelli Canon), 2013|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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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KRAFTON에서 Product Insight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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