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와서 디자이너로 살아간 지 어느덧 7년 차가 되었다.
이미 7년의 시간을 먼저 경험하신 선배님들도 있고 아직 이 시간이 한참 멀게 느껴질 후배들, 그리고 직장 동료 디자이너들, 내 주변엔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살아간다. 문득 내가 알고 있는 그들과 날 아는 그들 모두가 과연 디자이너로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일을 겪었다.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해서 전공을 계속 살린 동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디자이너도 있다. 패키지 디자이너 A 27세 / 제품 디자이너 B 28세. 모두 후배들이며 이들과 나는 디자인적인 고민, 개인적인 고민을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친한 사이이다. 약 한 달 전의 어느 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 두 디자이너 A, B는 나에게 [디자인적인 고민] 혹은 [삶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나에게 말했다.
A, B: "퇴사하려고요"
나: "왜?"
A, B: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너무 즐거워요. 그래서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너무 기쁜 마음이었어요. 그러나 매일 아홉 시에 출근해서 열두 시에 집에 가요. 너무 힘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망각하게 되어버렸어요. 이런 삶을 계속 살고 싶지 않아요.
나: 음.. 너 그 회사에서 근무한 지 얼마나 되었지?
A, B: 6~7개월 된 것 같아요.
나 : 디자이너에게 경력이란 포폴만큼 중요한 거고 1년도 안된 경력은 다른 곳에서 잘 인정해주지 않아.. 나도 짧게 회사를 옮겨다닌 적도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만 더 참고 다녀서 1년은 채워야 할걸 하는 후회를 많이 했어. 연봉을 올리고 퇴사해야 이직했을 때 연봉을 올릴 수 있어.. 아무튼 그 후회는 꼭 다른 회사에서 인정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도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조금만 더 참아보는 것이 어때?
A, B : 저도 참고 참다가 6개월이 되어버렸어요. 이젠 더 이상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요.
나 : 네가 정 그렇게 힘들면 하루빨리 그만두자! 사실 그 정도 근무환경이면 점심 먹고 도망가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수준인데 아직도 그런 미친 회사가 있다는 것에 정말 놀랍다. 직원을 그렇게 부릴 거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쩜 이렇게 동시에 두 명에게서 같은 고민을 들었을까. 그리고 나도 언젠가 같은 문제로 미친 듯이 괴로워하고 우울해하지 않았던가.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을, 고민할 이 문제들을 나는 왜 [나만 괜찮다는]이유로 안일하게 살았을까? 라는 후회와 반성을 가진 채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을까? 과연 디자이너들의 행복도는 어느 정도 일까."
5년 전에도 나는 후배들이 했었던 고민과 똑같은 고민을 했었다.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지만 평균 12시간 많으면 14시간 동안 매일같이 일을 하는 회사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회사는 다 이러니까 특히 디자이너라면 다 이렇게 살아가니까, 주변 디자이너들도 다 이렇게 살아가고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6개월 남짓을 버텼었다. 그러나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퇴사를 선택했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
지옥 같은 회사에서 퇴사를 하고 나서 내가 내린 나의 기준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얇고 길게 살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 스타일과 감성대로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건 당연히 뿌듯하고 자존감이 올라가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몸과 마음이 망가지면서 까지 이렇게 일을 해야 한다면, 내 기준에서는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은 포기할 수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이력서를 다시 넣게 되었으며 결국 현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중이 기본이 되는 회사, 워라밸이 지켜지는 회사, 최소한의 나의 색(color)을 존중해주는 회사를 찾아서 잘 다니고 있고, 결국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보다 행복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나의 저녁과 주말에 하기로 마음먹었고 잘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디자이너들에게는 어릴 적 미술학원을 다닐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하고 싶은 것' / '나의 것'을 찾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누구보다도 예민한 구석이 있고, 누구보다도 내 감정을 만족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이니.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러나 사회생활에서의 디자인이란, 나의 것을 채우는 것에 연연하면 항상 다른 구석이 채워지지 않아 불행하곤 했었다. 그래서 어떤 것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선택에 집중하며 또 다른 '나의 것'을 찾아 살아갔다. 난 결국 현재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은 곧 나의 현명한 선택에서부터>
나의 후배들에게 혹은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내가 했던 선택처럼, 어떠한 [선택]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했다는 것은 100% 나의 생각과 감정에서 기인한 나의 판단이며 나의 방법이다. 이 방법을 타인에게 권유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판단의 기준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리 결정되어지는 것이니까. 그러나 [선택]을 하는 것은 맞다고 본다. 내가 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어떠한 선택을 한 것인가 스스로 고민해보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후배들의 판단은 퇴사였고 지난 회사보다 더 나은 환경으로 이직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선택에 100% 지지하며 응원해 주었다. [선택]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기준을 우선순위별로 나열해두고, 그 순위별로 나의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가령 나는 잘 만들어진 포트폴리오에서 얻는 만족감으로 행복을 채운다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맞고, 저녁이 있는 여유로운 삶으로 나의 행복을 채울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스스로만이 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들이 모여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절대 해당 회사의 명성과 포트폴리오만으로 회사를 선택해서는 안됨을 말해주고 싶다. 우리들의 예민함을 만족과 행복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 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참고 살아가지 말고, 내가 원하는 것을 계속 쟁취해야만 하는 사람들..
결국 모두
해피엔딩 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