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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을 위한 디자인

노트폴리오 매거진| 2021.09.23
세종대왕, pixabay


분기마다 새로운 읽기 자료를 찾다보면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다. 책이 가지고 있는 내용자체는 너무좋은데, 이를 전달하는 요소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해야할까. 특히 ‘언어’에 관심이 생길 무렵의 아이들이나 문자 습득에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단조로운 톤의 책 구성은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가뜩이나 재미 없는 문자를 더 재미 없게 만들어 시각적 피로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문자 학습에 흥미를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피카소도 나처럼 글자가 무서웠대, 출처: 알라딘


특히 가상공간이 현실세계 만큼이나 중요해진 지금, 문자의 역할은 다방면에서 그 중요성을 발휘하고 있다. 바야흐로 영유아부터 노년층까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층이 없고, 다양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습득해서다. 문제는 우리의 ‘언어’가 왜곡된 형태로 쓰이고, 이를 재생산하는데 있다.



일례로, 우리는 어떤 한 담론에 대한 논의에서 ‘난독증’이라는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들은 가상공간에서 논쟁의 맥락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해당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의하는 ‘난독증’은 병리적 관점에서의 난독증과 명확한 차이가 있다. 실제로 임상에서 정의하는 ‘난독증’은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문자를 소리부호로 전환하지 못하는 장애를 일컫는다. 때문에 난독증 소견을 가진 이들은 글자를 전혀 읽을 수 없다.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문자가 어떤 소리를 표상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종 포털 기사 댓글란에 달리는 ‘너 난독증이냐?’는 조롱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피카소도 나처럼 글자가 무서웠대, 출처: 알라딘


이러한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 글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특히나 문맹률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장애물이 된다. 때문에 난독 소견을 보일 경우,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대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진다.

피카소도 나처럼 글자가 무서웠대, 출처: 알라딘


난독증을 개선하는 기초적인 방법은 글자를 이루는 형태를 하나씩 분절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이제 막 문자언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4세 아동의 문자습득 과정과 매우 유사한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자모음이 결합된 통글자가 아닌 하나의 글자를 구성하는 문자들을 시각적으로 잘 변별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난독증 치료를 위한 교재, 출처: designzip


이런 맥락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난독증 소견이 있는 이들은 스스로 문자의 자/모음 구성요소를 변별할 수 없으므로 구조화된 디자인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난독증의 임상적 소견을 잘 반영한 디자인이 있다. 바로 <읽기 자신감>이다. 1~6의 단계로 구성된 해당 시리즈는 한국어 문자를 그림에서 문자로 점진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제시한다. 때문에 난독증세가 심한 사람의 경우, 초기 단계에서 온전히 그림을 통해 문자의 소리감각을 습득한다. 예컨대 ‘가지’의 ‘가’, 가방의 ‘가’를 해당 그림 카드를 통해 소리내어 읽고 같은 소리가 나는 글자를 찾는 것이다.

난독증 치료를 위한 교재, 출처:designzip


하나의 통글자를 구성하는 자/모음을 변별하는데도 디자인의 힘은 필수적이다. 예를들어, 어두초성은 분홍색, 모음은 초록색, 어말종성은 노란색으로 연출하여 시각적인 변별을 유도하는 것이다. 마치 운전을 할 때 출구 지점에 연출되어 있는 분홍색과 파랑색의 유도선처럼, 단순한 시각적 연출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난독증 환자를 위해 채혜선 디자이너가 개발한 서체, 출처: 오픈컬리지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서체 디자이너도 있다. 기본적으로 난독증 소견이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형태의 문자를 인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ㅁ,ㅂ,ㅍ/, /ㅅ,ㅈ,ㅊ/처럼 비슷한 형태를 갖는 문자를 변별하는데 어려움을 갖는다. 차혜선 디자이너는 본인이 경험한 난독증 증상을 기반으로, 인식에 어려움을 주는 기존 서체의 단점을 보완하여 난독증 서체를 개발했다. 때문에 그녀가 디자인한 서체를 보면, 여타 다른 문자들과 혼동되지 않을 명확한 형태로 글자가 제시되어 있다.

난독증 환자를 위해 채혜선 디자이너가 개발한 서체, 출처: 오픈컬리지


그 어느 때보다 난독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때이다. 잦은 스마트폰 사용과 휘발성 정보 습득으로 이러한 문제가 생겼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만, 실은 그건 ‘문해력’의 문제이지 ‘난독증’의 원인은 아니다. 글자를 온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복과 노력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디자인은 앞으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이처럼 디자인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일 수 있다면, 난독증을 위한 디자인 역시 공공디자인이 아닐까. 앞으로 약자를 위한 어떤 디자인이 탄생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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