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아욱| 2022.03.22


0. 들어가기 앞서


부끄럽지만 나는 입사한 지 6개월이 채 안된 신입 디자이너다. 여러 면접자의 포트폴리오를 검수하고 쌓은 안목으로 바탕으로 이 글을 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그러나 취업준비를 했던 시기가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기에, 반성과 아쉬움이 더 깊고 입사 전후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만 취업준비생들에 해 줄 수 있는 조언이 있지 않나 싶었다. 내가 앞으로 디자인업계에 계속 머무를지 모르겠지만 경력이 쌓인다면 나도 모르게 취준생들에게 공감보다 훈계의 태도를 갖추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동네 형/언니의 어리숙하고 정돈되지 않은 말들이 고루한 부모님의 말씀보다 더 멋진 말로 다가오는 것처럼,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내 경험을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읽어 줬으면 한다.



1. 첫 번째 페이지에 PORTFOLIO라고 쓰지 않아도 괜찮다.

인사팀은 포트폴리오라고 적힌 메일을 받고 포트폴리오라는 이름의 파일을 열어본다. 그리고 첫 페이지에 쓰여있는 것이 고작 PORTFOLIO라면? 아마 나라면 맥이 빠질 것이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에 PORTFOLIO라는 글자와 자신의 이름을 적는데, 사실 둘은 면접관이 이미 알고 있다는 한에서 정말 불필요한 정보다. 디자인의 기본은 중요한 요소를 강조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삭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면접자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소개서가 글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양식이라면 (물론 회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 따위로 자신을 속여야 하지만...) 포트폴리오는 시각적 언어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둘째는 자기 어필, 다르게 말하면 어그로다. 수많은 메일들 사이에서 나의 포트폴리오를 어필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페이지에서 '이 포트폴리오는 특별하다'라는 사실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약간의 재치를 곁들인 문구로 면접관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이제 디자이너 채용으로 고민하지 마세요. 믿을 수 있는 디자이너 @@@'로 광고 카피라이팅의 콘셉트를 잡아서 자신의 디자인 성향을 살짝 내비칠 수도 있겠고, 'I make better world with better design.'처럼 사실 별 의미 없지만, 영문장이 주는 '있어 보임'과 색다름을 줄 수도 있다. 주의할 것은 어디까지나 면접자의 입장임을 감안하고 너무 무겁거나 가르치는 듯한 문장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점. 이를 테면 '좋은 디자인은 세상을 바꾼다.'라는 문장은 위에서 예시로 든 문장과 의미적으로 다를 바 없지만. 부정적으로 비출 위험이 있다. 문구는 어디까지나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의 성향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하는 게 좋다. 강한 인상을 주는 사진 한 장으로 이목을 끄는 것도 방법이다.



2. 색은 생각보다 매우 매우 중요하다.

이전에도 브런치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의외로 국내 대학 디자인과에서 색채학을 깊게 공부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색은 이미지의 순간적인 인상을 결정하고 포트폴리오는 재빠르게 읽히기 때문에 그 역할이 굉장히 크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연한 파스텔톤 (이를테면 연보라색)을 쓰거나 RGB 컬러를 쓰거나 둘 중 하나로 작업을 하는데, 이런 색상들은 보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파스텔톤은 너무 흐리멍덩해 보여서 강한 인상을 주질 못한다. 반대로 강렬함을 주고자 하는 학생들은 RGB를 선택하는데, 사실 강렬하다기보다는 색 선택에 있어서 성의 없어 보인다.(CMYK도 마찬가지이다.)

색상은 유행을 타기도 하고 주관적인 부분, 문화적인 차이도 있어서 사실 뭐가 정답이라 말하기가 힘들지만 또 반드시 쓰지 말아야 하는 색, 어떻게든 쓰면 좋은 색이라는 것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https://www.myfonts.com/bestsellers/

여기는 색상 사이트는 아니다. 영문 유료 서체를 판매하는 사이트인데 각 서체 회사에서 만들어놓은 미리 보기 템플릿 디자인과 색 선택이 정말 기가 막힌다. 그래서 내가 색 조합으로 고민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하는 곳이다. 특히나 학생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색상과 글자의 조합을 못해서 조화가 어그러지는 것인데, 이 사이트에서 스크롤을 내려보면서 유난히 눈에 띄는 템플릿을 찾고 서체와 배경 컬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무엇을 배경으로 쓰고 포인트를 주었는지를 분석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레이아웃 참고할 때도 좋다.)



3. 미니멀한 디자인은 피하라

물론 미니멀한 디자인이 경향이고 멋있다. 미스 반 데 로에도 'Less is more'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심플한 디자인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사회 초년생의 포트폴리오에서 적절치 않다는 의미다. 위에서 R, G, B 컬러를 언급했던 것처럼 로고나, 패턴을 재작 할 때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기하학적 형태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도 마찬가지로 디자인에 많이 고민 안 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사실 뭐에 고민해야 되는지 갈피를 못 잡아서 그랬을 것이다.) 면접관은 디자인의 심미성도 보지만 얼마만큼 손이 갔는지도 보게 된다. 그렇다고 복잡한 장식을 넣어서 현란하게 포트폴리오를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심플하고 한눈에 확 들어와도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업들이 있다.


출처 : 일상의 실천 홈페이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에서 제작한 남서울 미술관 전시 '모던 로즈'를 위한 포스터이다. 단색이기도 하고 포스터가 전체적으로 '모던 로즈'라는 큰 글자 요소로 이루어져서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디테일에는 '장인정신'이 돋보인다. 전체적인 짜임새를 유지하는 한에서 디테일에 '내가 힘을 주었다.'를 어필하는 것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데, 왜냐면 의외로 그만큼 힘을 준다는 느낌을 주는 포트폴리오가 별로 없다. '무엇을 더 할 것인가?' 보다 '지금 있는 것(단순한 아이디어)을 어떻게 보강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업이 나오는 것 같다. 사람 눈은 생각보다 섬세해서 빠르게 훑어봐도 이러한 디테일들은 모두 캐치된다.



4. 기업은 나의 취향에 관심이 없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BTS를 좋아하는지, 영화를 좋아하는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개인 취향을 너무 드러내는 포트폴리오 작업은 나이브해 보일 수 있다.어느 정도 면접관을 설득시킬 수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개인작업을 제작하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개인적인 기호보다는 소비자 지향적 관점에서 리서치를 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내가 도넛을 좋아해서 도넛 가게 브랜딩을 컨셈으로 개인작업을 진행할 때, 나는 토끼를 좋아해서 토끼 도넛 캐릭터를 만든다!라고 이야기를 푸는 게 좋을까? 아니면, 도넛이 연상시키는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변의 낡은 간판과 서체, 크림색 페인트 등으로 아이덴티티를 구성하고, 관련 요소 (레트로 카, 미국 카툰 벅스 버니류의 캐릭터)로 푸는 게 나을까? 물론 개인 재량이겠지만 브랜딩을 풀어나가기엔 후자가 훨씬 수월할 테고 설득력 갖추기도 쉬우며 면접관의 질문에도 조금 더 편안한 대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5. 하나의 못난 작업이 나머지 모든 잘난 작업을 망친다.

그렇다 마치 썩은 과일과 같이 하나의디자인은 다른 디자인에 영향을 준다. 미완성된 작업이나 오래전에 만들어서 퀄리티가 심히 떨어지는 작업은 과감하게 빼는 게 좋다! 차라리 하루 동안 밤새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게 더 속 편할 수도 있다. 디자인에서는 다다익선이 통하지 않더라. 많은 정보를 넣고 싶겠지만 면접관이 포트폴리오를 훑어보는 시간은 똑같고, 그만큼 중요한 요소가 덜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다.



8. 재료 선택에 생각보다 많은 공을 들여라,

재료란 앞서 말한 색상을 포함해 서체와 사진을 말한다. 특히 사진은 정말 중요하다. 왜 수많은 광고들이 사진 한 장 위에 작은 문구로만 되어있을까? 그만큼 사진이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데 목업 샘플링 말고 실제 사진을 배치하는 것도 (잘 찍는다면) 좋은 방법이긴 한데 돈이 많이 들 것이다... 29cm나 블랭크, 발뮤다 등 사진 잘 찍고 배치 잘하는 브랜드들이 많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9. 이렇게 보면 예쁘지 않나? 싶은 작업은 못난 작업에 자기 합리화하는 것이니
빨리 포기하고 다시 하길.

이것은 좀 중요한 거 같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내 작업 보면 정말 못나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와 같은 객관적인 눈을 내 작업에 항상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써야겠다.

뭐 여기까지인 것 같다. 아마 좀 더 경력 있는 디자이너라면 더 쓸모 있는 말들을 해줬을 텐데...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나는 아직 배우는 단계의 디자이너라서 나 자신에 확신이 선 말들이 아니다. 디자인에 대해서 바뀌어가는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기록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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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욱

프랑스 브장송 보자르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국내 e-커머스 스타트업에서 BX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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