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하루는 뿌듯 했는가"
8시간을 컴퓨터와 함께 보낸 후 퇴근 즈음에 내가 8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살펴 봤다. 내 8시간과 맞바꾼 몇 개의 스크린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걸 하는데 8시간이나 걸렸어야 했나 싶었다. 물론 가끔은 버튼 하나의 위치를 결정하는데 3시간이 넘는 난상토론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오래 걸렸어야만 했는지, 8시간이라는 시간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 고민이 들었다.
“나는 내 시간의 80%를 생각 하는데, 20%를 생각한것을 구현하는데 사용한다.
- 아인슈타인"
8시간, 몇개의 스크린. 스크린 양만을 따져보면 사실 8시간은 과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 쪼끄만 하나의 스크린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2-3시간이나 걸리냐며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직접 도형을 그리고 선을 따고 색을 입히는데 만드는데 든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수 있지만, 스크린을 만들기 위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테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스크린을 만드는 것 이라기 보다는 분절되어 있는 경험들에 선을 연결하며, 그 경험들을 최적화 시키기 위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 하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고, 비록 결과물이 시간 투자 대비 그렇게 많이 뽑혀져 나오지 않았다고 한들, 그 시간들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았을테다.
그래도, 그 느낌은 여전했다. 8시간에 걸친, 내 긴 생각들이 반영된 스크린들. 그리고 그 몇 개 되지 않는 스크린이 내 8시간보다 더 값어치 있다는 느낌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뽑아낸 스크린의 양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스크린들에 담겨져 있는 내 생각들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예전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을때 벤(가명)이라는 모두에게 인정 받고, 디자인도 잘 하고, 일도 잘 하는 동료가 있었다. 벤이 디자인 리뷰를 할때 쯤이면 윗 사람들이 말을 한다. “이 디자인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라고 말이 끝나는 순간 벤은 “아, 그 생각 해 봤어요” 라고 말 하면서 다른 스크린을 펼쳤다. 그리고 다른 리더가 “저런 생각은 어떤거 같애?” 라고 말이 끝나는 순간 “아, 그 생각도 해 봤죠” 라고 말하며 다른 스크린을 펼쳤다. 이미 본인이 보여주고 있는 디자인이, 자기가 제일 괜찮다고 생각하는 디자인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히 마련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의 수를 다 시도해 봤으니, 벤의 디자인은 대부분의 크리틱에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감이 오는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양이 많아야 한다는것. 그리고 내 디자인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내 생각을 명확히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 두가지 주제에 대해서 나는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혼자서 하는 디자인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하면 내 디자인에 담겨진 생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혹시나 한번 디자인을 하고서는 대단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하는가? 좋은 디자인은 수 많은 피드백이 있어야 하고, 수 많은 리비전이 있어야 한다. (가끔은 그 리비전이 끝나지 않아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좋은 퀄리티를 가진 디자인은 수많은 양적인 시도 이후에 나오는 부산물이다. 좋은 디자인이 바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 한다면, 그만큼 허황된 생각은 없다. 그만 생각하고 디자인이나 더 했으면 한다. 일단은 양으로 승부 해야 한다.
그런데, 그냥 만들어 내는 양만 많아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수 많은 반복되는 스크린들 앞에서 아무런 발전이 없다고 느껴지면 어떡할 것인가? 언제인가 열심히 보다는 잘 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이 유행인적이 있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열심히만 하고 잘하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나, 잘 하는 사람중에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못봤다. 그건, 자기 크리틱의 여부에 달려 있다.
디자인을 하면서 생각 하면서 많은 양을 쏟아내다 보면 디자인을 잘 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양만 쏟아내다 보면 그 자리에 머무르는 디자이너가 될 것이다. 자기 반성 없이 발전이 있을것이라 생각 하는가? 자신을 객관화 시키고서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메타 인지를 높여야 한다.
디자인을 하고서는 한번 바라보라. 본인의 디자인이 얼마나 형편 없는지. 혹은 본인의 디자인이 얼마나 정의한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해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서는 하나의 시도가 끝날때마다 뭔가 배워야 한다. 배우고 다음 시도에서는 그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만 쏟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발전 없이 제자리 걸음만 하는 본인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 세번째 항목이 없으면 끊임 없이 자기 크리틱을 해도 제자리 걸음일 수도 있다. 기준 자체가 저 아래에 있는데, 나오는 결과물이야 그 기준에 의거해서 나오지 않겠는가. 본인의 내공을 키워야 하고, 어떤 디자인을 봤을때 좋은 디자인인지 나쁜 디자인인지 구별할 수 있는 본인의 감각 혹은 내공이 있어야 한다.
사실 이 디자인적인 감각 혹은 눈을 키우는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시간과 내공이 필요하다. 좋은 디자인인지, 나쁜 디자인인지는 일상 생활에서 인위적으로 디자인을 크리틱 하려는 감각 혹은 습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나쁜 디자인을 봤을때 뭔가 참지 못하는 습성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크리틱은 본인의 디자인적 감각이 필요하다. 이 디자인적 감각은 비쥬얼적인 부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성에 있어서도 정적인 스크린을 마음속에서 연결하고, 플로우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플로우가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에 대해서 본인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사용하는 휴대폰 앱을 꺼내들고, 직업병 처럼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러는 반복적 학습 후에 디자인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길 것이다.
지속적인 학습은 비단 디자인적 감각을 키우는데만 그치지 않는다. 툴을 공부하고, 코딩을 공부하며, 모션 그래픽을 공부할 수도 있겠다. 이런 감각, 툴, 다른 범주의 디자인 영역의 시도들은 당장 업무에서 빛을 발하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나, 맥락에 맞게 보이지 않던 실력이 나오게 되는 순간 엄청난 빛을 발휘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제까지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래의 말이다.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 - 박근혜 2015년 청와대 국무 회의 중"
좀 웃기기도 하는데, 가끔은 저런 말로 디자인을 설명하는 디자이너도 있다. 설명을 듣긴 들었는데 뭔지 도통 이해가 안가는 디자인 의사 결정 과정 같은거다. 그래서 나는 왜 박근혜가 저런 말을 할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지적해 보려 한다. 나는 박근혜가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런 말을 했다고 생각 한다. 뒤에서 실세가 따로 조정하고 있었는데 자기의 의견 혹은 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리가 없었을 테다.
우리의 디자인 의사 결정 과정도 이와 같은 비선 실세는 있다. 뒤에서 사장님이 바꾸라 해서 바꿨을 수도 있고, 그냥 내 매니져가 그렇게 바꾸라 해서 바꿨을 수도 있다. 여기서 사장님이나 매니져의 입김때문에 디자인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에 문제를 두는건 아니다. 이런 일을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건 그 사장님이나 매니져의 의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라는데로 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물어 봐야 한다. 사장님은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그리고 그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한 무조건적인 복종은 디자인 리뷰를 할때 박근혜처럼 디자인을 설명하는 본인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은 ‘좀 더 본인의 디자인에 대해 정직해지기’ 가 되겠다. 디자인을 보고 왜 이런 디자인이 나오게 되었는지 생각의 구조를 잘 연결할 수 있어야 하고, 생각의 흐름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의 디자인에 좀 더 정직해질 수 있고, 그 정직은 디자인에 담긴 생각을 더 깊게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디자인은 생각의 흐름이고, 생각의 발전이다. 다만 생각의 흐름들이 스크린과 픽셀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예전의 전통적인 Communication design에서는 ‘미’가 강조되어 있었던 반면 지금의 디자인은 ‘생각’이 강조 되어 있다. 이 디자인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들을 더 편하게 할 것인가. 이 디자인을 통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해 줄 것인가.
그래서 디자인을 다른사람에게 공유를 할때 한번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 쓴다고 생각해 보라. 처음 이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 부터 발전 단계 하나 하나 풀어나가면서 이야기를 구성해 보는 것이다. 도입, 전개, 절정, 결말의 단계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어떤 문제에서 시작해서(도입), 그 문제를 디자인으로 풀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전개), 선택한 하나의 디자인(절정), 그리고 다음 단계 혹은 테스팅 플랜(결말) 처럼 하나의 이야기, 즉 생각의 흐름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좀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
내 생각은 이렇다.
디자인을 잘 하기 위해서는,
아니,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활동을 통해 뽑아내는 절대적 양이 많아야 하고,
한정된 시간 이내에 많은 양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양만 많음의 패러다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 크리틱을 항상 염두해 두고 디자인을 해야 한다.
간단하게 분류하자면, 세상엔 세가지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레시피들을 발명해 내는 요리 연구가, 직접 레스토랑 혹은 집에서 요리를 하는 요리사, 그리고 그 요리사가 한 요리를 감정하는 미식가. 그리고 내 생각에는 디자이너는 100% 요리사의 범주에 속해져 있다. 직접 그리고 만드는 사람들이지, 글만 쓰거나, 남의 디자인을 크리틱하는 일만 해서는 디자이너라고 인정하기 힘들다. 그런데, 레시피만 들고서는 본인이 요리를 하고 있다고 착각 하는 디자이너도 생각보다 꽤나 많다. 직접 하는 것과 하는법을 아는 것은 그냥 아예 다른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그냥 해야 한다. 하고 깨지고, 부서지고, 성취하고, 인정받고, 쓴맛, 단맛을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한 두번 잘 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게 아니다. 지속적으로 잘 해야 하고, 매번 매일 매 시간 힘을 주고 온몸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속성 있게, 어느정도의 낄끼빠빠를 넘나들며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 때 까지 노력해야 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나를 보며 ‘디자인을 잘 하길래 이런 글을 쓰겠지’ 라는 착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이 글들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기록하고 좀 더 다듬어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 일 뿐,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그렇게 이미 잘 하고 있다면 내가 굳이 글로 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이건 나에 대한 다짐이고, 헤이해졌을때마다 되돌아보기 위한 장치이다. 그런 과정들에서 나의 생각 거리들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