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디자인 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

아욱| 2022.02.23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아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나요?


디자이너 / 예비 디자이너들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이런 질문이 한 달에 한번 꼴로 올라온다. 늦은 나이에 진로를 틀어 디자이너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이미 잘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디자인 세계에 입문하려 마음먹으면서 드는 불안함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대답은 'Yes'이다. 사실 나도 명확히 따지자면 만화와 순수예술을 전공했지만 현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특히 디자인이 다른 전공에 비해 비전공자의 진입장벽이 낮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서점에 가서 디자인 코너에 방문해보자, 그리고 아무 책이나 펼쳐 조금씩 읽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곧이어 나오는 삽화 이미지들은 매우 촌스러워 보인다. 이런 촌스러운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디자이너가 어떻게 이렇게 장황한 입문서를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책이 출간된 날짜를 확인해 본다. 불과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일화에서 중요한 사실은 저자의 디자인 감각적 무능력도 아니고, 그만큼 디자인 트렌드가 급속도로 변화한다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너무 당연하게 디자인을 판단하고, 낡은 디자인이다!라고 선언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모든 대중들은 어느 정도 디자인에 대한 감각과 예민함이 있다. 그리고 그 척도를 바탕으로 낡은 것과 세련된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이는 디자인 감각이라기 보단 소비자의 기호에 가깝다. 앞으로 글을 써가면서 아마도 언급될 것이지만 소비자의 기호라는 것은 디자인적 감각(이라고 불리는 애매모호한 환상)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모두가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소비자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소비자를 상대한다. 마케터와 경영자가 상품 안에 숨겨진 구조를 만들어 간다면 디자이너는 그 가장 겉의 외면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의 감각으로부터 무차별 적으로 노출되어있다.

이 때문에, 당신이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내고 싶다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브랜드와 상품들을 아카이빙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디자인 감각을 키워질 수 있다. 이게 끝이다! 디자인학교에서 숨겨진 디자인 작동원리를 배울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지만, 사실상 대학에서 디자인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어도 시각적인 원리에 대해서는 크게 배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말 간단하게 말해서 디자인의 절대적 진리란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나 디자인 서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색에 들어있는 상징과 감정 반응에 관한 도표이다.
아마 초등학교 미술시간부터 줄곧 보아왔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젊은 느낌을 강조하는 제품을 만들고 그제품에 들어갈 색상을 찾는다면 파란색을 선택하면 끝나는 것일까?


당신은 두 가지 색상을 구분할 수 있는가?


실무에서 색에 관한 문제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만약 제품의 색상이 파란색으로 컨펌 나고 그중 최종 안으로 위 두 가지 색상이 남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두 개 사이에 큰 차이가 없으니 아무거나 선택해도 상관없을까?

색상은 특히 기호에 민감하다. 눈은 익숙하지 않은 색상을 보는 데에 큰 거부감을 느끼고, 색상이 자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색의 선택은 절대 자의적이 어선 안된다. 수많은 레퍼런스를 찾아봐야 하고, 스포이드를 찍어서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떤 색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위 사진처럼 '빨간색의 정열, '활기찬 노랑'이 아니라, 채도와 명도의 미세한 지점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얼마나 조심스럽게 디자이너들이 색을 다루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색을 다룰 때 고려해야 하는 점들은 다양하다. (모바일, 인쇄 등 다양한 매체에서의 변화, 사과의 조화, 서체의 가독성) 이에 대해서는 따로 다뤄 보도록 하겠다

많이 돌아왔는데 결론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디자인에 절대적 원리란 존재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 분야보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디자인 감각'이라는 것 또한 믿지 않는다. 다만 디자인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요소들이 워낙 변칙적이고 다양하고 특수한 개별적 요소들로 구성되어있어서 그걸 한 두 가지의 원리로 정리하는 게 불가능하고 결국 개개인의 순발력과 문제 해결 능력에 의존시키게 되면서 나타나는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이론은 다시 쓰일 필요가 있고 그것은 시각과 심리 사이의 반응 관계에 대한 과학이론이 아니라 사회학과 기호학에 기초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디자인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

디자인 학교를 다닌다는 것의 장점은 많이 보고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디자인은 내가 무언가를 예쁘게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누군가의 마음에 들게 하며,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상대방은 완성된 디자인을 원할 것이며, 그렇기 위해선 디자이너는 완성된 디자이너여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디자인을 제공하고 대가로 돈을 받을 만큼 완성된 디자이너인지를 생각해보는 게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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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욱

프랑스 브장송 보자르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국내 e-커머스 스타트업에서 BX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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