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걸그룹 EXID를 떠올리게 하는 차트 역주행이 또 일어났다. 그간 대중에게 인식될 만한 히트곡 없이 데뷔 5년차를 맞이한 ‘브레이브 걸스’의 이야기다.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해당 걸그룹의 한 멤버는 ‘아이돌 생활을 정리하고 취업 자리를 알아봐야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대중들의 반응은 뜨겁기만 하다. 학교 폭력으로 시끄러운 연예계에서 이들의 역주행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신선하다. ‘인생은 한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시점이다.
며칠 간 각종 SNS에서 이들의 신나는 노래와 고생 서사로 난리였다. 역주행의 서막은 브레이브 걸스가 각종 위문 공연에서 <롤린>을 즐기며 노래하고, 이들과 함께 무대를 진심으로 즐기는 군인들의 떼창이 알려지면서 부터다. 영상에 달리는 재미있는 댓글도 흥미롭지만, 좋은 노래도, 이를 뒷받침 하는 이들의 실력 역시 역주행의 큰 기반이 됐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무대와 노래를 즐기는 이들의 얼굴에서 사람들은 많은 감동을 느꼈다.
좋은 노래와 멋진 외모, 실력도 실력이지만, 대중들이 이토록 이들의 등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꾸준함’에 있을 것이다. 아이돌 그룹이라 하기엔 이미 막내의 나이가 31살인 이들은 나와 같은 세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흔히 가능성이 없는 일에 주변으로 부터 쉽게 ‘포기’를 강요당하며 스스로 다그치곤 한다. 특히나 유독 어린 집단으로 구성된, 더군다나 각종 경쟁이 난무하는 연예계에서 ‘반응 없는 5년’을 버틴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문득 화가 ‘앙리 루소’가 생각났다. 일명 ‘아마추어 화가’, ‘일요 화가’로 불렸던 루소는 평범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원시적인 그림이라며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고, 미술계에서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자신을 사실주의 화가라 칭했지만, 이러한 평가는 그저 놀림 거리가 될 뿐이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인위적인지 않은 것을 사랑했던 앙리 루소는 자연의 풍경을 그렸다. 평일에는 평범한 공무원으로, 일요일에는 아마추어 화가로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작업했다. 화가가 직업이 아닌 그에게 오롯이 작업에 열중할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 하루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쩐지 지금의 평범한 직장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그는 자연을 사랑했지만, 한 번도 프랑스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각종 식물원과 동물원, 그리고 자연을 그린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독창적이며 이국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당대 미술계에 주를 이루던 화풍과 변별되는 행동이었기에, 더욱 냉정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정식적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었다. 이러한 배경은 더욱 그를 화가로서 존중받지 못하게 했는데, 평생 ‘두아니에’(=세관원)라고 놀림을 당하게 만들었다. 남들과 다른 분야 출신이라는 점이 일종의 꼬리표가 된 셈이다. 하지만 앙리 루소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장면은 어디선가 많이 본 광경이다. 고급 교육과정을 밟지 않은, 타 분야에서 새로운 분야에 뛰어든 사람들은 약 1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와 같은 시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895년까지, 그는 10년 동안 꾸준히 앵데팡당전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의 작품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미술계 동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앙리 루소는 40살이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작업실을 마련해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그에게 사람들의 시선은 그의 의지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1910년, 루소는 동료 미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꿈>을 전시회에 선보인다. 그리고 그제서야 대중은 그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같은 해에 생을 마감했고, 그나마 고흐와 달리 살아 생전 성공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앙리 루소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후세대에 찬사받으며 2005년과 2006년에는 유럽 각국에서 개인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수많은 편견과 날카로운 편견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열정이 비로소 후세대에 인정 받은 것이다.
‘브레이브 걸스’와 ‘앙리 루소’는 시대와 성별 , 문화를 초월하지만 시사하는 메시지는 같다. 특히 이들의 역주행이 더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건, 어쩌면 희망이 없는 우리 세대에 ‘버티면 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라는 메시지를 건네서일 지도 모른다. 또한, 언제 스쳐 지나갈지 모르는 ‘기회’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 ‘포기하지 않는 힘’도 중요하다. 만약 이들이 계속해서 스스로 갈무리하지 않았다면, 흘러가는 기회 역시 제것으로 만들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예술과 문화는 인간에게 희망을 준다. 그리고 작은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앞으로 꾸준히 해보는 건 어떨까. 인생은 가변적이고, 그러한 변화는 스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