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에게는 스티브 워즈니악, 고흐의 최고 경쟁자이기도 했지만 그의 천재성을 불러일으킨 고갱, 그리고 '19세기 미술 공예 운동(Art and Craft movement)'의 주역인 '윌리엄 모리스'에게는 그의 사상과 철학을 동의해주고 지지해 준 '에드워드 번 존스'가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본래 성직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1834년 영국에서 사업가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그곳에서 화가인 '애드워드 번 존스'를 만났다. 이후 둘은 노동의 가치를 찬양하는 '존 러스킨'의 예술론에 영향을 받아 함께 사상을 공유하고 뜻을 같이하며 단짝 친구가 되었다.
모리스는 어느 날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미래를 바꿀만한 여행을 가게 된다.
그는 프랑스 북부 지방에 있는 중세 고딕 양식의 교회를 방문했는데, 이곳에서 '라파엘 전파'인 '단테이 가브리엘 로세티'의 작품을 보고 그의 작품에 푹 빠지게 되었다. 모리스는 그길로 성직자의 꿈을 접고 예술가와 건축가로서 살아가고자 결심하게 된다.
*라파엘 전파 : 라파엘 이전의 화풍으로 돌아가고자 결성된 그룹으로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 문학, 예술 등에서 영감을 받아 활동한 그룹 (출처 wikipedia)
이후 그는 당시 산업화로 인해 대량 생산되어 판매되는 가구와 값싼 건축자재들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며 성실하게 작업하는 수공예 생산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장했다. 윌리엄 모리스의 주도 아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뜻에 함께 동참하여 퍼지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미술 공예 운동(Art and Craft movement)'이다.
모리스 상회 (Morris & Company)
특히 윌리엄 모리스는 친한 동료들과 함께 '모리스 상회'를 열어 그의 뜻에 맞는 벽지와 가구 등을 제작하기 시작했다.산업화로 인해 흐려진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 등은 좋은 출발점이었지만 비싼가격으로 인해 모리스 상회 제품은 상위층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제품이 되었고 결국 시대에 뒤쳐진 발상이라는 평가로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시작했던 미술 공예 운동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르누보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결과가 어떻든 성직자의 길을 가려던 그가 19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뜻을 공감해주고 지지해준 에드워드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윌리엄 모리스와 친구들 이야기는 어느 날 함께 사업을 시작하게 된 친구가 마치 우리의 이야기 같다며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대학시절 친구는 툭하면 먼 훗날 꼭 ‘뉴욕 맨해튼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멋진 모습으로 작업하자고 했다. ‘뉴욕 맨해튼 스타벅스’로 장소를 콕 집어 이야기한 것은 대학생이었을 당시 가장 성공한 디자이너가 일하는 곳이 뉴욕 맨해튼이라 생각했고 디자인을 공부했다면 뽀대(?) 나는 장소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졸업한 학교는 2008년 재학 중일 때만 하더라도 근처에 그럴듯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도 없었을뿐더러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을 때면 공부하던 건물에서 30분을 걸어 나가야 했다. 그래서 항상 맛있는 커피와 멋진 공간은 우리의 동경 대상이었으며 우울하고 추웠던 대학시절에 맨해튼이라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는 햇살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꿈을 꼭 실현하기 위해 먼 훗날 뉴욕 맨해튼에서 함께 일 할 구성원들을 찾아다니며N.M.S.C(Newyork Manhattan Starbucks Clup)를 결성했다. (물론 클럽의 구성원은 세명뿐이었으며 이 장대한 꿈은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현실과 이상의 격차가 너무 컸는지 대다수의 친구들이 비웃었지만 당시 N.M.S.C를 모집하러 다녔던 친구(현재 비유니크 대표이사)의 제안을 유일하게 지지해주었던 사람은 나와 몇몇의 동기들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의 어처구니없는 장난 같은 제안에도 그 뜻을 공감해주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자신의 뜻에 힘을 실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씩씩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모리스와 친구들 이야기에서 나는 배웠다. 모리스 아저씨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었던 그의 단짝 에드워드와 친구들. 그리고 친구의 꿈에 유일하게 관심을 가져주었던 나와 몇몇의 대학 동기들은 공통점이 많았다
.
서로의 의견에 공감해주고 지지해주었다는 것.
이 마음은 각자의 인생에 그리고 나의 가슴속 한편에 나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대학시절 농담으로 시작했던 뉴욕 맨해튼 스타벅스 클럽은 5년 후 결국 다시 뭉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N.M.S.C가 아닌 우리만의 고유 상호를 지었다.
위대한 사람들에겐 위대한 친구들이 있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