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오징어 게임을 섬에서 진행해야 했던 이유

박승원| 2022.04.19

– 오징어 게임에 오신 참가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진행자 네모 요원은 오징어 게임의 플레이어들을 참가자라고 불렀다. 이전 글에서, 경험 디자인은 고객을 참여자로 맞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정재 님을 포함한 플레이어들은 오징어 게임의 고객이라고 볼 수 없다. 그들은 비용을 내고 해당 서비스를 제공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이 상품으로 전시된 것에 가깝다. 오징어 게임의 고객들은 화면 너머로 게임의 중계를 지켜보던 수많은 익명의 부자들이다. 그러나 경험 디자인의 관점에서 오징어 게임의 진정한 참여자는 따로 있다. 바로, 직접 현장에 와서 게임을 관람한 VIP들(동물친구들)이다.


어흥


게임은 왜 섬에서 진행되어야 했을까? 사법체계의 철퇴를 피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도록 섬을 매입해버리기 위해? 참가자들의 도망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이번 글에서는 경험의 관점에서 한 번 고민해보고자 한다.

먼저 게임 참가자들(플레이어)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오징어 게임의 로케이션이 섬인 것은 사실 참가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첫 번째로, 그들은 게임이 진행되는 장소가 섬인 것을 알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육지에서 차를 탔고, 수면가스에 취한 채 섬으로 운반되었다. 스타렉스에 올라 잠이 든 참가자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미지의 공간에 도착해있었다. 그곳은 실내였고, 먼 곳이 보이는 전망 좋은 창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첫 번째 게임은 야외에서 진행되었으나, 그곳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참가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이유였다면, 굳이 섬일 필요가 없다. 작중에는 게임에 몰래 잠입한 형사(위하준 님)는 섬을 나가기 위해 꽤나 고생해야 했던 장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참가자 역시 섬을 나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생길 수는 있으나, 참가자들은 이미 철저한 통제 하에 관리되고 있었다. 심지어 관리자들은 모두 즉결처분이 가능한 살상 무기를 들고 있었기에, 단순히 참가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면 전기가 흐르는 장벽으로도 충분했을 터다.(위하준 님은 진행요원으로 잠입했기에 탈출이 가능했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진정한 대상 참여자는 VIP들이다.


다시 VIP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돈을 내고 중계권을 샀을 뿐만 아니라, 기꺼이 몸을 움직여 현장에서 게임을 직관하고자 했다. 그들이 다른 중계권 고객과 다른 점은, 기꺼이 추가금을 내고 게임을 직관하는 ‘경험‘을 구매했다는 것이다. 게임의 주최 측, 즉 경험 제공자들은 이들을 위해 최상의 경험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었다. VIP들이 오징어 게임에서 얻어갈 경험은 무엇이 있을까? 가구화 된 인체, 익명을 보호하기 위한 호화로운 가면, 준비된 음식과 술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섬을 도착한 후의 이야기다. VIP들이 구매한 오징어 게임의 경험은, 섬에 들어가기 위해 헬기를 타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참가자들과 달리 게임이 섬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섬에 진입하기 위해 통통배를 타고 뱃멀미를 참아가며 섬에 들어왔을 리는 없다. 작중의 회차에서는 VIP들이 헬기로 섬에 도착했으나, 그들은 크루즈를 타든, 경비행기를 타든, 얼마든지 편하고 호화로운 방법으로 섬에 도착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섬에 들어오는 것부터 휴가의 시작인 것이다.

물론, 그들은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는 휴가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섬이라는 공간의 속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섬은 격리되어있다. 사방이 바다를 두르고 있으며, 선택받은 자만이 왕래할 수 있다. 섬에 입장하는 경험 자체가 ‘나는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경험을 누리고 있다‘는 인식을 주기 충분하며, ‘휴양지에 놀러 왔다‘는 기분을 줄 수 있는 것이다.

- 섬에는 값비싼 이동수단을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하다.
-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일반 고객과 차별화한다.
- 격리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휴양지라는 인식을 준다.

개최지를 섬으로 함으로써 HX, 경험 디자인의 관점에서는 벌써 세 가지 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언급하고 싶은 마지막 이점이 남아있다.

- 일상에서의 완전한 격리로, 비윤리적 행위의 가책을 최소화한다.


VIP들에게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정서적인 괴로움을 느끼는 범위는 이미 한참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이 게임이 사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비윤리 행위에 대한 정서적 불편감과 별개로, 그들은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드러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VIP들은 이것이 ‘일탈‘임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탈 행위가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섬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불편감을 최소화해준다.

이것은 여행지에서 남녀 간의 스캔들이 발생하기 쉬워지는 것,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도 클럽이나 축제 현장에서는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뛰어노는 것, 수련회 캠프파이어 시간에 갑자기 효심과 함께 눈물이 차오르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일상적인 공간과의 격리는 심리적인 장벽을 허무는 효과가 있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깐부 할아버지의 게임 참여 역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만약을 대비한 스포 방지.. 설마 아직도 안 본 사람이..?)

경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게임의 로케이션이 섬인 이유는 오직 VIP들을 위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참가자들이야 어디로든 운반할 수 있었고, 법망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지하든 산 속이든 공간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임이 섬에서 진행됨에 따라 주최 측은 물자 이송 비용이 추가될 것이지만, 그 비용 이상의 가치를 VIP에게 줄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극의 장치 하나하나 허투루 쓰이거나 배치된 것이 없다고 느꼈다. 게임의 장소가 섬이었던 것 역시 단순히 비주얼만을 위한 의도는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이 남긴 여러 질문 중 하나에 나름의 답안을 작성해보았다. 여기까지 읽어준 분이 계시다면, 저마다 ‘나의 섬’은 어디였는지 떠올려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디.. 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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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HX(Human eXperience)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습니다. 사람과 경험에 대해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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