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프로덕트가 전부다.
2020년부터 프로덕트에 진심인 스타트업의 대표와 팀원들을 만나오고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그들도, 내가 5년 전에 했던 고민들을 안고 있더라. 나는 멘토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프로덕트가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들에게 목이 쉬도록 알려준 말들은 또 비슷한 고민을 다른 누군가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에 대한 고민은 결국 다 비슷비슷하니까.
그렇게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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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두 번째,
스타트업의 유일한 기획자이자 PM의 고객조사
멘티: 우리 고객이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고객 인터뷰을 하고 싶은데 어떤 고객을 어디에서 만나나?
지수: 신사업 기획 단계에선 업계 얼리어답터를 만나보아야 한다. 얼리어답터는 아이폰을 구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매장 앞에서 텐트 치고 있는 이들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모든 업계에는 얼리어답터가 있다.
예를 들어 대출 시장에도 얼리어답터가 있는데, 각자의 이유로 대출을 자주 받는 이들로, 신용점수 관리에 노하우가 빠삭하다. 얼리어답터들은 노하우가 있다. 우리는 그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노하우가 없으면 얼리어답터라기보다 메이저리티라고 봐야 한다. (종종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어떤 기업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상황인 경우가 드물게 있다. 이는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니 모 아니면 도) 직접 만나보면 얼리어답터와 메이저리티의 인터뷰 내용이 얼마나 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나와 팀원의 지인 중 적합한 인물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러나 ‘진짜’ 얼리어답터를 찾을 가능성은 낮다.
숨어있는 얼리어답터를 발굴하자. 그들이 활동하는 장소에 찾아가면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다. 뽐뿌, 클리앙, 네이버나 다음 카페 등 국내의 대표 커뮤니티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관련 게시판을 찾아가면 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닉네임이 번쩍번쩍거린다던지, 운영진이 쓴 것이 아닌 게시글이 공지사항으로 등록되어 있다던가, 댓글로 열심히 훈수를 두고 있는 사람, 또는 누가 봐도 커뮤니티 내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다. 쪽지, 방명록, 댓글, 이메일 등 연락할 수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경험상 20명 중 2명은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난 인터뷰이는 당신이 얼리어답터를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쑥쓰럽게 인사를 나누고 사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단답형으로 일관하는 이들은, 본인의 관심사에 대해서는 아웃사이더 랩으로 지식 뽐내기를 시전한다.
멘티: 인터뷰에서 무엇을 묻고, 어떻게 진행하나?
지수: 신사업 고객 인터뷰는 세 가지를 도출하기 위해서 진행한다. 1) 고객의 Pain Point, 2) 고객의 Know-how, 3) 관련해서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이나 행동.
다짜고짜 "아무개님의 Pain Point가 무엇이죠?"라고 물어보면 아무런 대답도 못 얻는다. 인터뷰이가 경험에 기반해서 대답할 수 있도록 물어보자. 예를 들어 "가계부 매일 써야 하는 데 힘들지 않나,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최근 대출받았을 때 어려웠던 점 없나? 대출을 받지 못할 뻔한 적은 없나?" 등으로 풀어서, 다양한 질문으로 물어보자.
고객 인터뷰는 격식 있는 자리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 데면데면한 친구와의 티타임이라고 생각하자. 일방적인 질문만이 쏟아진다면 부담스럽다. 적당히 내 경험과 생각도 이야기하면서 솔직하게 다가가자. '너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뒤가 다른 말을 한다던가, 비논리적인 말을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평가는 하지 않는다. 무엇이 솔직한 답변인가는 인터뷰이의 생각 자체가 아니라 인터뷰이가 직접 경험해보았는 가다. 여러 질문을 통해 경험을 들어보자.
멘티: 고객들의 생각이 다 다르면? 인터뷰 결과는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지수: 음... 일단 '고객 인터뷰' 라는 방법론을 의심하지 말고 얼른 고객을 만나보자.
나는 팔자인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동안 항상 신사업을 진행해야 했다. 각 분기별로 추진한 프로젝트는 모두 달랐고 당연히 만난 고객군도 항상 달랐다. 지난 분기는 가계부, 이번 분기는 대출, 그다음 분기는 보험 같은 식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 업계에 대해서 만큼은 공통된 니즈가 있다는 것이다. 우린 그걸 발굴해야 한다. 서로 일면식도 없고 성별 나이 직업도 모두 다른데, 우리가 진출하려는 업계에 대해서는 똑같은 불만 또는 니즈를 가지고 있는 거다. 그 불만과 니즈를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들여다보면 결국 같은걸 원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그걸 찾아내는 사람이다. 표면적인 고객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흔들릴 것이 아니라 관통하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생각해보라. 같이 일하는 팀원 두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기도 쉽지 않고, 세 사람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며, 생활양식이 다른 열댓 명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과 느낌, 경험을 하고 있다? 이는 ‘우리 시장에 있는 고객의 생각’으로 봐도 좋다. 이게 퍼소나다.
퍼소나라는 단어에 매몰되면, 그저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우리 제품을 씀직한 가상인물을 만들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퍼소나는 가상인물이 아니다. 직접 시장의 고객을 만나 연구하고 그들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고객은 가짜다. 진짜 고객을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