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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켈산스를 시작하며..

함민주| 2021.06.11

지난 2년 가까이 진행한 S프로젝트가 끝났다. 클라이언트 작업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개인 작업 욕심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동안 시간이 생기면 개인 프로젝트를 하겠노라고 다져왔던 다짐을 실행할 시간이 마침내 생겼다. 나처럼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의 유일한 단점은 함께 의견을 나눌 (공식)동료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 프로젝트의 장점은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당연히 데드라인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이 자유가 주는 그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대신, 그 진행 과정을 이곳에 글로 담아 기록하고 싶다. 스스로를 위한 기록과 관리를 위함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는 참 간단한 질문에서 스케치 하기 시작하였다.




왜 한글 폰트의 가장 굵은 Black이나 Heavy는 그 이름처럼 두껍지 않을까?


그래픽 디자이너 또는 폰트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해보았을 생각이다. 라틴 폰트의 가장 두꺼운 굵기와 한글 폰트의 가장 두꺼운 굵기를 비교해보면 굵기 차이가 크다. 타입디자이너로서 외국의 포스터에 당당하게 제대로 굵은 제목용 서체로 활용된 라틴 폰트들을 보면 질투와 동경의 마음이 들었다. 한번 해볼까? 언젠가 개인프로젝트를 한다면 누구나 어디서 보았을 법한 흔한 타입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형태를 좀 더 실험적으로 접근해보고 싶었다.


보통 스케치를 오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프로젝트는 디지털화 하여 출력한 종이위에 좀 더 굵기를 더해보고, 넘치면 수정펜인 화이트로 다시 덜어내며, 공간을 반복 수정하면서 그 한계를 실험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찐득찐득, 손으로 작업한 스케치를 좋아한다.



스케치단계에서는 컨셉을 잡기위해 몇 단어를 선정하여 마음에 들때까지 그려본다. 그게 마음에 들면 몇글자 더 늘려보고 더 복잡한 형태의 글자도 그려본다. 단어의 선택이 스케치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단계가 사실 타입디자인에서 가장 재미있는 과정이다. 대학생때 타입디자이너가 되고자 생각했을때, 타입디자이너는 항상 이런일만 하는 줄 알았었다. 손에 검은 잉크가 묻고,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글자를 다듬고 있다보면 마치 내가 장인이 된 느낌이다. 마음에 드는 스케치가 나왔다면 폰트 프로그램에서 벡터(Vector)이미지로 옮겨야 한다. 디지털 이미지를 스케치와 가까운 느낌으로 그리는것이 목표이다. 디지털화된 이미지는 그 느낌이 디지털적이다. 손맛을 최대한 옮겨올수있도록 노력했다.



글립스 프로그램에서 벡터로 그린 글자


이 과정을 지나 글자를 파생하기 시작하면 인내의 게임이 시작된다. 비슷한 글자들끼리 그룹을 나누고 규칙을 만들며, 2,350자를 꼼꼼하게 한글자 한글자 주의해서 봐야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마감이 급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손목에 통증이 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한글의 모든 자소를 볼 수 있는 팬그램 문장.


얼마전 퓨쳐폰트(Future Font)라는 미국의 한 폰트 로스팅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이트에서 연락이 왔다. 누군가가 내 작업을 보고 추천을 했다고 한다. 이 사이트는 아직 미완성이면서, 현재 제작중인 폰트를 판매하는 곳이다. 일찍 구매한 사람은 저렴한 가격으로 폰트를 완성버전, 끝까지 업그레이드 받을 수 있고, 동시에 타입디자이너들은 글자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판매할 수 있다. 업데이트가 진행될 때마다 가격이 조금씩 올라간다. 무엇보다도 고객과 디자이너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고, 건의사항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므로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평소에 눈여겨 보았던 곳이라고 무척이나 영광스러웠다.



지금 스케치가 진행중인 둥켈 산스 프로젝트가 500여자가 완성되면 퓨쳐 폰트 사이트에 게시해 볼 생각이다.
제목용 글자 이므로 이미 구매한 사람이 제목 정도의 많지 않은 글자를 부탁하면 그 글자는 미리 다듬어서 보내주고, 피드백도 주고 받으면 좋을 것 같다. 퓨쳐폰트 측에서는 자유롭게 진행하기를 권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타입디자이너들이 텀블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폰트 시장이 크지 않고, 한국에서는 개인들이 폰트를 구매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필자와 같은 독립 타입디자이너 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대안 플랫폼 이라고 생각한다.




둥켈산스 이름의 의미는?

둥켈(dunkel)은 “어두운” 을 뜻하는 독일어 형용사이고, 산스는 부리가 “없다”는 뜻의 불어에서 온 용어로 라틴 문자에서 부리가 없는 고딕 폰트를 부르는 말이다.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고딕이라는 단어는 딱딱한 느낌이 강해서 산스를 사용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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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주

함민주는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독립타입디자이너이다. 서울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한국에서 타입디자이너로 약 6년간 근무한 후 라틴 타입디자인에 대해 더 배우고자 2015년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예술학교(KABK)에서 타입미디어(Type and Media)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그 후 독일 베를린에서 독립타입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해외 폰트 회사들과 다국어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하고 있다. 모노타입(Monotype)과 함께 아드리안 프루티거의 노이에 프루티거(Neue Frutiger)에 어울리는 한글 서체 설 산스(Seol Sans)를 제작하였고,영문 폰트 Teddy는 TDC Certificate of typographic Excellence를 수상하였다. 개인 프로젝트로 작업한 둥켈산스(Dunkel Sans)를 2018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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