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친환경', '자연친화적'이라는 표현을 많이 듣게 됩니다. 이따금씩 우리끼리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에도 '좀 더 친환경적인 느낌이 드는' 디자인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친환경적으로 느껴지는 디자인은 어떤 것일까요? 정말로 친환경을 실천하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이번에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콜롬비아의 디자이너 안드레아와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누었습니다. Andrea Posada Escobar는 UN 및 르완다, 말레이시아 등에서 도시 BI, 각종 포럼 VI의 그래픽 디자이너 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http://andreaposada.com/)
디자인의 목적이 사람의 삶을 더 편리하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라면 '만들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고를 수 없습니다. 안드레아 역시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디자인 작업을 착수할 때 인간이 보다 생태적으로 살 수 있는 디자인을 고려할 수는 있다고 합니다. 생산과 운송, 보관부터 폐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이 생태적으로 더욱 바람직하도록 설계하는 것입니다. 접착제를 쓰지 않아도 되는 패키지 도안, 잉크는 적게 쓰면서 가독성이 높은 서체 등을 디자인 과정에 반영하면 디자이너의 손을 떠난 아이디어도 친환경적 가치를 실현하게 됩니다.
물론 디자인 이후를 생각하려면 디자이너는 자신이 작업하는 과정이 생태의 어느 부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환경 문제가 턱밑까지 다다른 지금, 우리는 아마존 우림 보호단체 ACT의 이시도로 하스분과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위한 출발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River Flows in You,
아마존 보존 팀(Amazon Conservation Team, 이하 ACT)의 이시도로 하스분
ACT는 약 25년 전 환경보호운동가 두 사람이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환경운동을 하기 위해 세운 단체다. 당시에는 행동기준이 너무나도 엄격하고 까다로워 지역 단체조차도 토지를 이용할 수 없도록 보호지역을 규정하거나, 지역 단체가 보호지역을 관리하는 데에 참여할 수 없게 제한을 두었고, 자연스레 보호단체와 원주민 공동체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겼다.
한편 ACT는 열대우림을 보호하고 전통 문화 보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먼저 현지 원주민들 및 그밖의 지역사회단체들과 협력하기로 했다. ACT는 '생태문화적 보존 모델'에 따라 이들은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 거주권 및 관리권을 보호하는 한편, 원주민들이 지역 사회에 전통적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원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활동한다.
인간을 보호지역에서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거주권을 보호하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유는 꽤 단순하다. 아마존 내에는 약 400여 개의 토착 공동체가 있는데, 이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구역은 세력이 가장 큰 토착 공동체의 거취구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마존 우림 중 토착 공동체가 거주하는 보호구역은 법적으로 거취를 제한하는 보호구역보다 훨씬 높은 보존 수준을 보여준다. 이들은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토착민들의 지혜와 경험이 더 오래 지속되는 생태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석한다. 으레 생태파괴의 온상으로 취급되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인류학적 가치와 생태학적 가치를 나란히 연결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생태보전의 전제로 생각하는 것이다.
"좋은 숲은 좋은 공동체를 가지고, 좋은 공동체는 좋은 숲을 가지는 셈이에요. 두 가지는 강력한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한국이 생태와 공존하기 위한 디자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아야할까. 이시도로는 몇 가지 연상을 통해 탐색해보는 것을 제안했다. 그가 파악하는 한국은 친환경정책을 활발하게 펼치는 곳이기도 하고, 환경관련 기금의 큰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시도로는 UN 기후 변화 협약에 의해 세워진 '녹색기후기금'을 꼽았다.) 또 그와 동시에 지난 수십년 간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덕분에 소비성향이 대단히 강한 나라라는 이미지도 떠오른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소비하려는 욕구'와 '지속가능성과 생태적 측면을 고려한 정책'이라는 상반된 특성 사이 관계를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만약 한국의 '신 세대'와 '구 세대' 소비문화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나 한국처럼 성장속도가 비교를 불허할 만큼 빠른 곳이라면 신세대가 나고 자란 환경과 구세대가 나고 자란 환경이 완전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한국과 아마존 사이에 어떠한 연결점이 있을지 상상해보는 과정을 꼽았다. 가령 브라질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육류가 아마존 우림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고리가 남미의 울창한 숲과 동아시아 한 가정의 식탁을 잇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여정은 반대방향으로도 만들어진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브라질에서 소비될 때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영향을 받을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셈해보면 된다.
이런 식으로 질문을 반복하다보면 결국 우리가 구입하고, 소비하는 것들의 원료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며, 어떻게 생산되고, 지구에 무슨 영향을 주는지를 꾸준히 상상하며 살아야한다는 결론을 찾게 된다. 한국에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지구 어디에 사는 누구라도 마찬가지이다.
이시도로는 '날아다니는 강(Flying River)' 이야기를 덧붙인다. 날아다니는 강은 아마존 우림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길고 커다란 기류인데, 습기를 아주 많이 머금고 있다. 이 강이 '날아서' 가는 목적지는 상파울루와 보고타처럼 아마존에서 꽤 멀리 떨어진 도시들이고, 우거진 수림과 그리 연관이 없어 보이는 머나먼 도시 사람들은 기실 아마존에서 먹고 마실 물을 받아 살고 있다.
결국 우리는 숲과 우리는 같이 살아야 한다. 사람과 자연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듯이 사람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더 같이 잘 살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태문화적' 공존방식의 골자이다.
생태적 디자인이란 인간과 자연을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게 주는 나쁜 영향을 최소화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자인이다. 사람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이고, 이 테두리를 벗어나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태 디자인이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다름아닌 건축인데, 생태건축을 위해서는 건물과 시설이 주변 생물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사람이 편의를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픽 디자인도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접착제를 최소화한 포장지, 종이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금속잉크 사용 절감 등은 그래픽 디자인 부문에서 고려할 수 있는 생태적 선택지이다. 네이버가 만든 무료서체 나눔글꼴중 '나눔글꼴에코'는 출력 시 잉크가 번지면 빈 곳이 자연스레 메워질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오리온이 제품 포장 디자인에서 색상을 과감하게 줄인 것도 나눔글꼴에코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태에 접근하려는 시도이며, 음료수 페트병 뚜껑이 짧고 가벼워진 것 역시 친환경적 디자인의 일환이다.
요즈음 영리한 소비자들은 제품 정보는 생산자만큼 잘 알게 되었다. 이제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는 제품의 기계적인 정보 대신 생산자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제품을 만들었는지 검토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정보를 빠르게 손에 넣을수록 윤리적 검토가 중요해지는 만큼 얼마나 '윤리적으로' 디자인하는가도 간과할 수 없다. 앞으로도 기업은 소비자가 요구하는 공공의 가치를 위해 사회적 가치를 더욱 깊이 고려해야할 것이고, 디자인은 그 가치를 실현할 도구가 될 것이다.
From Andrea.
콜롬비아 사람인 내게 아마존은 그냥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크고 신비로운 정원 같은 거야.
등만 돌리면 볼 수 있지만 내가 사는 현실이랑은 아주 동떨어진 곳이었지. 아마존에 가보자는 얘길 하는 사람은 없었어. 아무튼 아마존은 아주 멀고, 가기 힘든 곳인 데니까. 아마존은 여러 가지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상상도 못했던 생명체들과 광대한 자연을 품은 별세계이거든.
사실 오늘 얘기한 주제는 아주 단편적인 거야. 우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문제의 관계자이고, 무관심과 무분별의 대가로 일어난 생태파괴의 당사자거든.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생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너무나도 무관심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를 보고 있어.
'고작 이런 걸 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거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직장에서부터, 뭘 디자인하고 만들 때부터, 컴퓨터를 키는 순간부터 환경에 피해를 덜 주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돼. 물론 그러려면 자연이 어떻게 순환하고 있는지, 우리가 순환과정 중에서 어디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겠지.
아, 그리고 꽤 충격적인 자료를 찾았어. 예전에 네가 ‘한국이 최근 쓰레기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고 했던 걸 아직 기억하고 있거든.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한국에 살 때 평소보다 더 많이 소비했고, 쓰레기통에는 항상 박스와 포장지가 가득 차 있었어. 그런 생활습관에 빠지는 건 정말 쉬웠고 나도 크게 경각심을 가지지 않았어. 일단 너무나도 편했거든!
하지만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봐. 이런 식의 소비유형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많이 관찰되긴 하지만 한국은 또 다른 문제가 있잖아. 국토 자체가 너무나도 작기 때문에 생태용량이 근본적으로 무척 부족하단 말이지.
보다시피 한국의 국토가 감당할 수 있는 생태용량은 인당 0.6 정도인데, 한국인은 평균 6.1의 생태용량을 사용해.
미국은 괜찮은 비교 사례가 될 수 있을 거야. 미국은 굉장히 큰 국토를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생태용량을 국토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실제로 미국도 생태용량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지!
만일 전세계인들이 이런 소비 방식에 맞춰지게 된다면 앞으로 지구 몇 개 정도는 여분을 준비해두는 게 좋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