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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사라질 수 있을까?

박승원| 2022.07.04

벌써 몇 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한 테크 회사에서 펭귄이 길 안내를 해주는 AR 서비스를 발표했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디지털 맵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라지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을 본 기억이 있다. 지도가 없어도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지도는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꿈이라도 꾼 것인지, 지금은 아무리 찾아도 펭귄이 길 안내를 하는 서비스는 보이지 않는다. 구글로 기억하는데, 구글에서는 길 안내를 돕는 것은 여우였다. 아래 사진은 2018년의 기사에서 발췌한 것으로, 지도를 보고도 길을 찾기 어려워하는 보행자들을 위한 네비게이션에 AR을 도입한 것이다. 이미 4년 전에 완성된 기술임에도 상용화되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펭귄이 더 귀여웠던 것 같은데... | 사진: 아주경제


경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귀여운 캐릭터가 길잡이가 되어주는 네비게이션은 일반적인 네비게이션보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500m 직진 후 좌회전‘이라는 지시문과 지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화면 속)거리에 나타난 눈앞의 캐릭터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쉽고 즐겁기까지 하다. 심지어 이와 같은 서비스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용이하다. 근처 상점의 쿠폰 등을 마치 게임의 보상과 같은 요소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간과된 사실이 있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지도로 길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의 지도, 네이게이션보다 쉽고 재미있는 서비스이지만, 비교 대상이 잘못 선택되었다. AR 길안내의 경쟁상대는 기존의 네비게이션이 아니라 ‘지도가 어려운 사람들의 평소 길 찾기 수단‘이다. 그것은 친구가 적어준 맞춤형 안내문(지하철 역 나와서 편의점 끼고 오른쪽)일 수도, 길가에 붙은 이정표 거나 친절해 보이는 동네 주민의 안내일 수도 있다. 아마도 동물친구가 그것을 대체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너구리가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쿠폰과 보상도 보인다. | 사진: InnoTechMedia 유튜브 채널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은 지도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사실 명백히 말하자면,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은 네비게이션의 역할이다. 지도 서비스와 네비게이션 서비스는 유사하지만 뚜렷이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지금의 지도 서비스들은 모두 근처의 주요 건물, 식당, 지하철역을 표시해준다. 또한 즐겨찾기 기능을 제공하고, 방문이 가능한 장소인 경우 다른 사용자들의 평점과 리뷰를 볼 수 있다. 지도 없이 길을 찾을 수 있게 되더라도 지도 서비스 자체가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R 동물친구들의 길안내는 아직 상용화되지 못했지만, ‘지도의 최종 형태는 사라지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배울 점이 있어 보인다. 경험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기 때문이다. 지도의 본질적인 역할이 길 찾기에만 치중되어있었다면, 훌륭한 네비게이션을 통해 지도가 사라지는 것을 지향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가 다른 역할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AR 길안내는 일종의 길안내 최적화로 전락해버렸다. 서비스의 최적화와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

호텔 체크인을 가장 빠르고 편하게 하기 위해 무인으로 운영하는 것은 좋은 최적화가 될 수 있다. 현대인은 대부분 큐알코드를 사용할 줄 알고, 불필요한 대화를 원치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인 체크인이라는 경험은 체크인의 본질적인 목적 중 하나인 환영받는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다. 호텔 프런트 역시 어떤 요소를 제공할 것인지의 목적에 따라 다른 경험이 디자인되어야 한다.

단순히 더 편하게, 더 빠르게 만드는 최적화만을 목표로 하다 보면 제공하는 경험의 본질과 멀어질 수 있다. 더 빠르고 편한 서비스를 제공할수록 고객과의 접점은 짧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접점이 짧아지는 것은 경험 시간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본인이 제공하는 것이 신속한 서비스인지, 기억에 남는 경험인지에 따라 집중해야 하는 영역이 다른 것이다.

제공하고자 하는 경험의 성격에 따라 최적화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참여자에게 진정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 원한다면, 참여자의 경험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 편에서 최적의 청소 경험을 위해 청소기의 선을 없애고 무게를 가볍게 하는 동안, 로봇청소기라는 제3의 대안은 청소 경험 자체를 소멸시켰다. 직접 청소를 할 필요가 없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사용자의 청소 경험은 최적화를 넘어 한 단계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식기세척기는 그 어떤 좋은 수세미와 세제보다 나은 설거지 경험을 제공했다. 설거지라는 경험 자체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줄이 꼬이지 않는 이어폰의 혁신은 줄이 사라진 이어폰이 등장하면서 끝나버렸다. 안드로이드는 높은 커스터마이징 자유도를 선사했지만, iOS는 커스터마이징을 할 필요 없도록 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최적화를 선택했다. 분명, 최고의 경험을 따라가다 보면 사라지는 것을 지향해야 하는 서비스나 상품들이 존재한다.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의 지향점을 논하는 포럼에서, 한 교육재단의 국장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시의 견해를 회고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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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루어진 논의의 초점은 모두 ‘어떻게 더 좋은 멘토링을,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먼 미래를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훌륭한 멘토가 되어주는 것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결국 청소년들의 성장을 위한 것이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성공적인 멘토링이 이루어지려면, 그들이 멘토 없이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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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HX(Human eXperience)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습니다. 사람과 경험에 대해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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