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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파는 척하는 스타벅스

박승원| 2022.06.03

스타벅스가 음료 가격을 인상했다. 스타벅스는 망해버릴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커피 값이 오른 것이 원두 값 때문인지, 인건비 때문인지, 사실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원두값이 얼마고, 최저시급이 얼마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도 스타벅스의 가격 인상이 부당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상품으로써의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스타벅스 창가 자리는 신의 가호가 함께하는 날에만 앉을 수 있다. | 사진: 헤럴드 경제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은 카페가 ‘초단기 공간 임대업‘이라고 했다. 최소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몇 분에서 몇 시간 단위로 사용하기 위해 카페에 간다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해석이다. 혹자는 스타벅스는 브랜드를 판매한다고 했다.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판매하면서 식음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수긍할 수 있는 해석이다. 결국, 스타벅스는 총체적인 경험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은 눈만 돌리면 카페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 수많은 카페 중 스타벅스를 선택하는 이유는 가장 ‘무난‘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어느 지점을 가도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커피맛을 보장한다. 콘센트를 찾아 헤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화장실은 대체로 깨끗하고 온수가 잘 나온다. 커피가 맛없어서, 화장실이 더러워서, 콘센트가 없어서 겪게 될 불편한 경험을 겪을 위험으로부터 가장 안전하다.

그뿐인가? 스타벅스에 가면 내가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나를 불러준다. 다소 불편하긴 해도,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줄 종이 빨대도 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를 수 있는 바나나도 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편하게 원하는 만큼 누리다가 나올 수 있다. 이것이 스타벅스가 판매하는 경험이다.

세미나실이나 스터디룸 같은 공간을 빌리는 것 역시 유사한 경험을 판매한다. 일정 금액을 내면 정해진 시간 동안 공간을 빌릴 수 있고, 음료와 와이파이, 깨끗한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제공된다. 심지어 음료를 두 잔 이상 제공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명백히 ‘공간 값‘, 내지는 ‘경험 값‘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스타벅스와 구조가 동일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판매하는 척하기 때문이다.

시간 단위로 공간을 빌리면 계속해서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을 채우지 않게 되면 괜히 손해를 보는 기분이다. 오히려 무료로 제공받은 음료는 전혀 아깝지 않다. 동시에, 전혀 먹음직스럽지 않다. ‘공간‘에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서 바닥에 빨대가 떨어져 있어도 개의치 않지만, 내가 빌린 스터디룸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불쾌한 느낌이 든다. 돈을 지불한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음료에 돈을 지불한 스타벅스의 공간은 모두 무료로 느껴진다. 음료 한 잔만 사면 이 모든 공간을 누릴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사용하는 공간은 불과 몇 개의 좌석이고, 실제로 내가 사용하는 시간은 30분에 불과해도 상관이 없어진다. 내가 지불한 음료값만큼 음료를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경험의 관심사가 달라진다. 똑같은 금액의 물건을 구매하더라도 온갖 할인쿠폰을 적용해서 만들어진 10만 원과, 정가 10만 원을 지불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심리상담의 상담자 윤리에는 무료상담을 진행하는 것 역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상담료를 지불하는 것 자체가 내담자에게 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벅스가 아닌 다른 카페도 음료 값을 받고 공간을 내어준다. 그러나 우리는 스타벅스만은 결코 이용 시간제한을 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음료를 주문하지 않아도 공간 이용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스타벅스가 커피를 파는 척하는 것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타벅스의 경험 디자인을 단순히 ‘친절한 서비스 제공’으로 해석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취향의 개인화(세분화)와 서비스의 총체화가 눈에 띈다. 그림 그리기라는 하나의 취미는 이제 수십 가지의 취미를 담은 카테고리의 이름이 되었고, 기존의 메신저 서비스는 어느새 쇼핑, 콘텐츠, 미디어까지 서비스 영역이 확장되었다. 엇비슷한 메뉴를 팔던 카페들은 자신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필수로 하는 시대가 되었고, 동시에 식음료 이외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공간 사용, 식음료 섭취라는 경험을 판매하던 카페는 이제 미술작품의 접점이 되기도, 굿즈의 판매점이 되기도 한다. 변화한 시대, 변화된 비즈니스에 맞춰 다양한 환경에서의 인간 경험(HX) 역시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총체적인 관점에서의 경험 디자인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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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원

HX(Human eXperience)의 관점으로 세상을 읽습니다. 사람과 경험에 대해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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