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붕어빵을 떠올려보자. 붕어빵 중의 붕어빵. 겉은 노릇노릇 바삭하고, 속의 팥은 꼬리까지 꽉 차있는 그런 붕어빵.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놓았다면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이번에는 가장 맛있었던 붕어빵을 떠올려보자.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붕어빵의 기억은 어디쯤에 있을까. 기억을 찾았다면, 좀 전에 떠올렸던 붕어빵과 비교해보라. 완벽히 일치하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어쩌면 조금 눅눅했을 수도, 새카맣게 탄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가장 맛있었던 붕어빵은, 가장 맛있는 붕어빵이 가질 수 없는 결정적인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다. 당시의 경험, 다른 말로는 맥락이다.
정갈하게 식탁 위에 차려진 붕어빵은 어쩐지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붕어빵은 자고로 목장갑을 낀 어르신이 투박하게 구워, 바스락거리는 흰 종이봉투에 툭툭 던져 넣어주어야 맛이다. 뜨거울 줄 알면서도 한 입 베어 물고 입안을 식히느라 붕어를 닮은 못생긴 표정을 해야 비로소 붕어빵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오바했지만, 붕어빵에 대한 지식과 붕어빵에 대한 추억은 다른 기억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처음 떠올렸던 가장 완벽한 붕어빵은 일종의 지식,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이라고 할 수 있다. 붕어빵에 대한 개념적인 기억이고, 전형적인 붕어빵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나 가장 맛있었던 붕어빵에 대한 기억은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경험에 대한 기억이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일화 기억은 맥락 정보를 가진다.
경험에 대한 기억은 당시의 맥락을 포함하고 있다. 맥락은 사건의 앞뒤 정황뿐만 아니라, 붕어빵의 냄새(후각), 붕어빵 트럭을 만났을 당시의 감정, 붕어빵의 온도, 습도(조명..) 등 감각정보가 포함된 종합적인 기억의 집합체이다.
재미있는 점은 가장 맛있는 붕어빵에 대한 기준과, 나에게 가장 맛있었던 붕어빵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맛있었던 붕어빵에 대한 기억은 사실 붕어빵의 맛과는 관련이 약하다. 가장 맛있었던 붕어빵을 떠올릴 때 붕어빵의 굽기, 온도, 팥의 당도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요한 점은 음식으로써의 붕어빵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붕어빵을 먹었던 기억에 대해 가지는 정서‘이다.
음식으로써 가장 완벽했던 붕어빵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붕어빵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 중심의 경험 디자인, HX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의 생활, 우리의 소비는 의미 기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을 소비하고, 경험을 기억한다. 경험은 맥락과 정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맥락과 정서를 동반하는 기억은 그렇지 않은 기억보다 뇌리에 깊게 박히고, 더 쉽게 떠오른다.
브랜드가 소비자의 경험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브랜드에 대한 기억을 의미 기억이 아닌 일화 기억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브랜드 인지도가 된다. 어떤 브랜드를 떠올릴 때 ‘노릇노릇 바삭바삭한 것‘이 아닌,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정서)‘을 떠올리게 한다면, 이보다 완벽한 브랜딩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인간 경험에 대한 관점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애플 워치의 이번 시리즈 광고는 제품의 이미지가 단 한순간도 등장하지 않는다. 애플의 광고는 언제나 사용자가 애플과 함께 했을 때 가능해지는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심지어 제품이 등장하지 않는 광고 영상으로도 강력한 브랜딩을 가능케한다.
대기업의 붕어빵 과자는 아무리 부드럽고 촉촉해도, 아무리 포장이 깔끔하고 예뻐도 ‘가장 맛있었던 붕어빵’이 될 수는 없다. HX의 관점에서, 붕어빵 트럭의 붕어빵은 이 얼마나 강력한 브랜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