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일러스트 작가의 저작권 vs 돈

신디강 Cindy Kang| 2022.12.12

왜 작가들은 늘 내 가치를 후려치기 당하는 일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을까. 돈이든 내 권리든 빼앗겨야만 다른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시장 구조가 있다니. 정당하게 맞바꾸는 구조가 아니라 원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빼앗겨야만, 눈 딱 감아야만, 지금 잠시 희생해야만 이루어지는 일이 있는 게 당연한 시장이라니.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로 억울한 일들 있겠지만 작가의 작품은 작가 자신과 같은 것이니 불리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나 자신을 잃는 기분, 내 새끼를 잃는 기분에 속이 터져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올해 6월과 7월은 폭풍우 속 같았다. 바쁜 스케줄도 그렇지만 여러 깨달음이 머릿속에서 꽝꽝 번개를 쳐대니 평온하던 내 일상도 폭풍처럼 느껴졌다.

일러스트 작가의 저작권, 양도, 라이센싱, 출판 등 시장 구조를 소름 돋아가며 이해해버린 이상,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직 알아야 하는 건 평생토록 수만 가지겠지만 베이스로 알아야 하는 걸 제대로 파악하고 나니 내 과거의 실수가 보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보이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피가 식고...




그림 작가들을 서포트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그들에게 값을 지불하는 일이다. 페어에 참여한 작가들의 굿즈를 사고, 온라인샵에서 프린트를 사고... 칭찬과 응원도 큰 에너지가 되어 다음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만, 재료비를 살 수 없거나 집이나 작업실의 렌트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동기와 열정이 충분하더라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Work-for-hire라는 한국에선 저작권 양도 계약이라는 계약서가 있다. 원래 지불해야 하는 금액보다 80-100% 이상의 비용으로 작가의 저작권을 사는 계약서다. Ownership 이 바뀌는 계약이기 때문에 직접 작업한 작가는 더 이상 그 그림의 소유권이 없다. 그래도 어쨌거나 그 뜻은 돈을 더 많이 받는다는 거잖아요? - 여기서부터가 진짜 문제다.

Work-for-hire 저작권 양도 계약서는 무조건적으로 나뿐 거라며 절대 절대 하지 말라고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데, 돈이 필요하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옵션이기 때문이다. 작가도 직업이니 수입이 중요한 건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엔 서쪽으로 해가 진다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이야기다. 누군가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뜯어말릴 권리는 누구도 없기에 '무조건 안됨'이라고 할 수 없다. 저작권 양도 계약서를 내밀며 보통 가격의 80-100% 이상 주지 않는 (경제적으로) 힘에 부치거나 악덕인 회사들도 많이 있다. 낮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 금액이 필요하다면 저작권 양도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다. 돈 문제 이외에도 커리어를 시작하거나 이어나가야 하고, 영향력 있는 클라이언트와 일하고 싶고, 이 프로젝트를 너무너무 하고 싶어서 등 선택의 이유는 많다.

싫어도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양도를 선택한 작가를 이해하지만 문제는 이 선택이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일러스트 세상은 ‘경쟁 상대 누구누구 망했으면 좋겠어!’하는 개인의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마인드로는 유지될 수 없다. 외부의 누군가 우리를 넘어뜨리고 찢어 놓으려도 우리끼리 꽉꽉 잘 뭉쳐서 권리를 지키자고 소리 지르고 있어도 모자라다. 몇몇 사람들이 현실적, 경제적 상황으로 저작권 양도 계약을 하면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하는 사람들은 '저작권 양도 계약' 자체에 익숙해지게 된다. 그게 또 반복되면서 시장에서, 특히 우리를 고용하는 클라이언트들 사이에서 이런 식의 저작권 양도 계약은 더욱 당연해지는 거다. 심플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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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양도하는 게 그렇게 나쁜 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저작권은 문학, 예술, 학술에 속하는 창작물에 대하여 저작자나 그 권리 승계인이 행사하는 배타적, 독점적 권리를 뜻한다. 요즘 우린 많은 곳에서 '가치'와 '돈'을 비교한다. 모든 것의 가성비를 따지고, 시간 대비 효율을 가격으로 따지고, 심지어 만나는 사람에 따라 얼마 지불한 식사 비용을 아까워하거나 잘 대접했다는 생각을 한다.

창작물은 매겨지는 값 이상의 가치가 있다. 창작물은 작가가 들이는 재료값, 시간 같은 노동의 값이 다가 아니라, 그에 더해지는 가치가 있다. 짧은 예를 들어 보자면 이렇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돌고래 이야기에 대한 책에 들어가는 그림들을 그렸다. 저작권을 1000원에 양도했다. 더 이상 돌고래는 일러스트 작가의 돌고래가 아니다, 출판사의 것이다. 내가 어딘가 전시를 하고 싶거나 책자를 만들어서 판매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왜냐면 내 돌고래가 아니니까. 인터넷 어딘가에 홍보차 내 작품을 포트폴리오에 올리고 싶다면 출판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내가 그렸지만 말이다. 왜냐면 내 돌고래가 아니니까.

출판사의 돌고래 책이 대박이 났다. 출판사는 돌고래 책을 해외판으로 만들어 여러 나라에 번역해 수출한다. 내가 받은 1000원의 몇 배인지 가늠도 안 되는 돈을 번다. 나는 1000원에 돌고래를 그려서 준 것뿐인데. 출판사는 돌고래 캐릭터로 책가방을 만들어 초등학생 사이에 대박을 터뜨린다. 돌고래 캐릭터를 영상화해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특별전시를 연다. 판화, 엽서, 스티커, 우산, 거울, 볼펜, 부채 등 돌고래 굿즈를 만들어 판매한다. 돌고래의 원작자 일러스트 작가에게 돌아오는 것은 0원. 더 이상 그림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모든 건 내가 저작권만 있으면 해 볼 수 있는 내 작품의 상업화 계획이다. 물론 머리 터질 만큼 장황한 사업 계획이지 않나 싶다. 머리를 싸매고 밤낮을 설쳐가며 실행해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신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건 내 몸이 힘들 것이냐, 몸 편한 대신 권리를 양도하고 억울해진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냐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가늠해서 결정하느냐- 물론 골치 아픈 문제다. 그런데 주식, 코인을 하며 시장을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스킬을 그렇게도 갈고닦으면서, 왜 작품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예상하는 일은 등한시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작가인 우리는 혹시나 나중에게라도 우리에게 유리해질 수 있는 걸 선택해야 할까, 속상해질 수 있는 상황을 선택해야 할까?

같은 돌고래 책을 예로 들어보겠다. 출판사와 돌고래 책 저작권을 유지하는 계약을 하게 되면 판매 부수 당 몇 퍼센트의 돈을 받을 수 있는 로열티 계약을 하게 된다. 출판사가 작거나 신인 작가의 책을 출판하는 경우, 출판사는 책의 마케팅이 덜 효과적일 상황을 생각한다. 다시 말해 책이 잘 될 것이라는 개런티가 없는 경우다. 일러스트 작가가 받을 로열티를 모아 모아 1000원을 만들기가 어려울 때 (700원이라 하자.) 1000원을 줄 테니 저작권 양도를 하자고 제안이 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700원을 벌게 되더라도 저작권을 유지하는 게 나을까, 1000원을 받고 저작권 양도를 하는 게 좋을까?

어차피 나중에 벌어질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 가격이 적어 후회하더라도 혹시나 나중에라도 유리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할까, 혹시나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지금 당장 유리한 선택을 해야 할까? 뭐가 더 나에게 중요할까? 돈? 권리? 내 권리를 맞바꾸는 게 정말 맞는 걸까?


한없이 길어질 것 같으니 오늘의 깨달음으로 짧게 끝내자면, 나는 충분히 했다. 그리고 충분히 마음 아파봤으니 그만하고 싶다. 만약 권리와 맞바꾼 금액이 크다면 한숨 푹푹 쉬고 나서 그저 넘길 수 있더라도 더 큰 문제는 금액조차 충분하지 않았을 때. 내 노동, 열정 그리고 희망과 맞바꾼 적은 금액. 심지어 후에 구멍 난 곳을 메꿀 기회조차 없다는 그 느낌은 참 숨이 막힌다.

권리가 없어지면 책임감도 적어진다. 내 작업을 돌보는 책임감. 더 잘되길 바라는 책임감. 사기가 떨어진다. 열의가 없어진다. 작업에 마음이 가지 않게 되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인데 말이다.

권리는 책임감, 온 힘과 정성, 노력, 열정, 애정, 시간, 나 자신, 작가의 모든 것임을 배웠다. 나에게 저작권은 700원, 1000원으로 팔지 말지 결정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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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강 Cindy Kang

뉴욕에서 그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신디강입니다. 방황하던 미대생부터 프로페셔널까지, 일러스트레이터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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