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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루브르 박물관 안에 작은 점 하나

김나훔| 2022.09.13

저녁에 다시 L누나를 만나 루브르 박물관에 방문했다. 전부터 그 명성을 떠올리며 대충 머릿속에 박물관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방문했을 때의 규모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한참을 걸어야 비로소 박물관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기원전 4000년부터 19세기까지의 인류 역사를 아우르는 38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3만 5천 점을 전시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다. 바짝 세 시간을 뛰어다니듯 구경해도 겨우 겉핥기 정도밖에 하지 못한 기분에 무력감까지 느꼈던 이 공간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높디높은 천장, 셀 수 없이 많은 형형색색의 작품들... 그리고 그림 앞에서 토론을 하는 사람들과 각자 조각상 하나씩을 붙잡고 진지하게 드로잉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로선 어린 시절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예술의 유산을 이 사람들은 공기처럼 마시면서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실제로 25세 이하의 미성년자, 학생에게는 무료로 박물관을 개방한다고 하니 어린 시절부터 이런 공간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다 보면 예술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보며 스케치를 하는 학생들


여러 작품들이 좋았지만 특히 조각작품이 멋졌다. 평소 작품감상을 평면회화 위주로 즐겼고 입체작품은 그다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루브르박물관의 풍채를 뽐내는 조각상들은 무척 근사하게 느껴졌다. 내가 과거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필히 이런 작품들을 보며 신화속 인물이나 종교적 인물에 대한 무궁한 환상과 긍지 같은 것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후에 방문했던 노트르담 성당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과거의 건축 양식과 미술 작품의 정신은 종교적 혹은 신화적 측면이 강하여 현대에 와서도 그 성스러운 공간과 작품들이 실로 고양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


박물관의 거대한 규모나 여러 작품들이 내 혼을 쏙 빼놓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식으론 제대로 된 그림 감상을 할 수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의 다양한 명작들을 보고 또 사진으로 기록했는데 정작 머릿속에 남는 작품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스스로도 놀랐다. 나는 내 마음을 이끄는 하나의 작품에 오래 머물고 또 그 작가의 의도나 생애를 곱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게 온 벽면이 그림으로 도배되어있고 사람들로 가득 찬 이 박물관은 조금 버겁게 느껴졌고, 심한 말로 도떼기시장 같다는 인상까지 받았다. 한국 전시관이라던지 인도 전시관에 들어갔을 때는 '왜 이 작품들을 여기서 봐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작품의 가치를 알고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결국 인간의 탐욕이 아닌가- 싶어 지는 것이다. 예술작품들은 철가루이고 이 박물관은 그것을 있는 힘껏 빨아들이는 거대한 자석처럼 느껴졌다.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그 당시의 내 심경 탓도 있겠지... 언젠가 좀 더 심적, 시간적 여유를 갖고 공부를 한 뒤에 방문하면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하나 더 내게 짙게 각인된 것은 창작행위에 대한 인류의 강한 열망이다. 길고 긴 역사, 수많은 민족, 문화, 종교 갈등 안에서도 인간은 결국 자기 나름의 창작활동을 해내고야 말았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처음 압도적인 작품들 앞에서 느껴지는 경외감, 허무함은 이내 '우린 모두 역사 속 미미한 점일 뿐'이라는 알 수 없는 안락함으로 바뀌었다. 자신만의 예술적 재미를 좇는 사람은 모두 우주의 별과 같은 존재이며 나는 내 식대로 나만의 빛으로 우주 속에서 반짝이면 그만이라는 편안한 감정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이렇게 게을리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온갖 안전보호장치와 사람들로 둘러싸인 모나리자도 멀리서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들고 그 작품을 촬영하고 있었다. 셀카를 찍거나 영상통화를 하는 사람도 보였다. 가히 신격화된 그 작은 작품 앞에서 인간이 예술에 부여하는 가치, 환상, 사치... 등 여러 속성들을 동시에 떠올렸다.

미술에 무지한 탓도 있을 것이고 시간에 쫓긴 탓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나라는 인간이 원시적으로 느낀 루브르 박물관의 첫인상은 위와 같은 생각들로 깊게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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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훔

[뭐]저자
사진과 글, 그림을 그리는 김나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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