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그림비 작가
크리에이터스 데스크의 세 번째 주인공은 '그림비' 작가님입니다. 연애&결혼 생활의 사랑스러운 순간과 고양이 세 마리의 일상을 담은 작가님의 작품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죠. 그래서 많은 분들께서 작품을 보며 사랑을 하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합니다.
작가님께서는 현재 인스타그램 @grim_b 에서 그림 연재와 동시에 출판, 굿즈, 광고 일러스트 등의 작업까지 다양한 창작 활동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그려내는 그림비 작가님의 작업실을 스터닝센터가 방문했답니다. 20-30대의 젊은 남녀가 북적이는 연남동에 위치한 그림비 작가님의 작업실이자 스토어인 '스튜디오 그림비'에서 진행된 인터뷰, 함께 보시죠!
*목차
1. 작가님 소개 & 창작의 시작
2. 작업 이야기
3. 아내분과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
4. 도구와 작업실 이야기
5. 후배 창작자들을 위한 이야기
A.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그림을 연재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고요. 사랑하는 아내,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A.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노트에 낙서처럼 친구들이랑 선생님을 재미있게 그렸어요. 그러고 나서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처럼 보여줬는데 제 그림을 보고 웃으면서 칭찬해 주니까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계속 그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만화를 전공했는데 이쪽으로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저하고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보다 제가 상상해서 이야기 만드는 게 어렵다고 느껴졌거든요. 결국엔 포기했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렀고 결혼 후에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인스타그램에 저희 부부의 일상을 담은 그림들을 올렸어요. 아내와 고양이 세 마리가 있으니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거든요. 근데 예상치 못하게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제가 올린 그림을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꾸준히 작업해서 올리게 되었고 점점 많은 분들께 제 작품이 조명 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일로서 창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A. 한 1-2년 동안 꾸준하게 지금과는 다른 스타일로 많은 노력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노력했던 스타일은 별로 반응이 없고 그냥 재미로 그렸던 그림이, 러프하게 그린 그림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었나 봐요.
혹시 벨기에 만화 '틴틴의 모험'이라고 아시나요? 그 만화의 주인공 캐릭터를 보면 눈이 점처럼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거든요. 저는 눈을 그릴 때 그렇게 표현해본 적이 없는데 제가 그려왔던 스타일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해서 시도해봤어요. 그렇게 저만의 그림체가 완성되었죠.
A. 예전에는 컬러마다 의미가 있었어요. 그림에 담긴 상황별 등장인물들의 기분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컬러를 활용했었죠. 하지만 요즘에는 작품마다 전체적인 구성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컬러를 입히는 편입니다. 이전 작품들부터 찬찬히 비교해보면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덧붙여서 말하자면 사실 작품의 컬러도 중요하지만 점점 아내, 고양이와의 일상을 담백하게 담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컬러보다 말풍선에 들어가는 대사에 공을 들이고 있답니다. 그 상황을 잘 함축해서 표현해 줄 수 있는 짤막한 문장을 만드는 것에 더 많은 시간 투자를 하고 있어요.
A. 제가 그린 일상은 한 장으로 표현이 되니까 상황이 많이 압축되어 있을 때가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우리 부부 일상의 좋은 모습만 보는 거죠. 자신의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작품 댓글에 그림처럼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달아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다 비슷하게 살 것 같은데 왜 이런 말씀을 하시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림을 완성한 후에 빈칸을 두고 사람들이 대사를 채워 넣으면 그들의 일상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고 느끼지 않을까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랬더니 작품을 함께 완성해가는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고, 재밌는 댓글들도 많이 달아주셔서 지금도 계속해서 인스타그램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A. 예전에는 떠오를 때마다 기록을 했어요. 만약에 아내랑 대화를 하다가 '어? 이거 그려야겠다' 생각이 들면 바로바로 기록을 했죠. 근데 그렇게 하다 보니 대화가 갑자기 멈춰지게 되는 거예요. 아내랑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건데 뭔가 '그리려고 행복해 보이는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대화하면서 적기보다는 나중에 다른 일을 하다가 문득 생각날 때 기록하는 편이에요.
A. '아내는 특이한 사람이다.' 제가 너무 가깝고 친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보지 못한 성격이나 요소들이 많이 보이거든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결혼한 지금도 앞서 말했던 특이함 때문에 재밌어서 말하다가 웃을 때가 많아요.
A. 고양이는 세 마리고 이름은 망고, 젤리, 밥풀이에요. 망고는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였는데 다른 분이 돌봐주시다가 받아오게 됐고요. 젤리는 군부대에서 데려온 고양이에요. 부대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예상치 못하게 새끼를 많이 낳아서 키워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제가 보내줄 수 있으면 보내달라 해서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됐죠. 그때 미처 분양이 안된 고양이가 하나 있었는데 간간이 사진을 공유 받으면서 안부를 확인하고 있답니다. 마지막 밥풀이는 아내와 산책하다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뒤따라와서 저희가 밥도 주고 했는데 계속 따라오는 거예요. 도로를 넘어서까지 따라오려고 해서 동물 병원에 데려갔죠. 근데 너무 사람이랑 친한 게 이상하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알고 보니 사람한테 관리를 받은 고양이어서 한 달 동안 전단지 붙여가면서 주인을 찾았었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그냥 저희가 계속 키우게 되었습니다.
A. 강연이나 인터뷰 같은 자리에 가면 진짜 작품만큼 행복하시냐는 질문을 꼭 받아요. 행복한데 그렇다고 항상 달달하진 않다고 말씀드리거든요. 매일 같이 있다 보면 기분이 좋을 때도 많지만 안 좋을 때도 있어요. 물론 안 좋을 때 모습을 그릴 수도 있지만 저는 기분 좋았던 순간들을 그리는 게 더 좋기 때문에 대부분 달달한 작품이 많은데요. 그래서 그렇게 궁금해하시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A. 저는 다른 데는 지저분해도 상관없는데 작업환경은 깔끔해야 돼요. 그래서 책상에 물건이 별로 없어요. 집도 그렇고 작업실도 그렇고 모니터, 태블릿 주변에는 그림 그리는 거 하나 정도밖에 없어요. 그래야 집중이 잘 되거든요.
A. 2019년 12월 쯤에 오픈했는데 그게 딱 코로나 처음 터졌을 때였거든요. 그때 걱정도 우려도 많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 당시 작업실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에요. 제 그림을 가장 좋아해 주실 수 있는 분들이 주변에 있었으면 했어요. 너무 어린 친구들보다는 20대 중후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 어딜까 해서 주변에 카페가 많은 연남동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나 재밌는 점이, 여기서 작업을 하고 있다 보면 눈을 닫아놓고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거든요. 처음에는 너무 선명하게 들려서 신경이 쓰였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재밌어요. 제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디선가 봤다고 하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안 들리는 줄 알고 엄청 솔직하게 말씀하시거든요. 진짜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작업실에 있는 게 즐겁고 좋아요.
A. (평소에는) 포토샵이랑 태블릿을 이용하는데 그거 말고 라미(LAMY)라는 만년필 브랜드에서 나오는 펜이 있어요. 그 펜을 유용하게 제가 잘 썼거든요. 펜 쓰다 보면 다 못 쓰고 버려버리잖아요, 잃어버리거나. 그런데 그 펜은 두께도 있고 용량도 크고 볼펜 똥 같은 것도 하나도 안 나와서 제일 유용하게 잘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A. 작은 작품들을 많이 해서 큰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하고 있어요. 특히 그라피티를 해보고 싶은데요. 유화나 붓으로 작업하는 것도 좋지만 그라피티는 큰 벽을 빠르게 그릴 수 있으니까 한번 배워보고 싶더라고요. 다른 이유로는 제가 성미가 급해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라피티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던 계기가 올해 1월에 무신사 테라스에서 진행했던 'CFC HALF TIME' 전시였어요. CFC(Creators Football Club)라고 저를 포함한 35명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운영하는 축구팀이 있는데 각자 재능을 살려서 전시회를 열었거든요. 그때 솔드아웃 패킹 박스들을 활용한 '그라피티 월' 작품이 있었는데 사이즈가 크고 컬러가 선명하다 보니까 정말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도 나중에 저런 작업을 꼭 해보고 싶다' 생각이 들었죠.
A. 물론이죠. 계속해서 작업을 하다 보면 한 번씩 그리기 싫을 때가 있어요. 그게 아내와 좀 다퉜을 때인데요. 저는 너무 좋은 순간만 그리고 싶은데 다퉜을 때 그런 순간을 그리면 거짓말하는 것 같고 그리기가 꺼려지더라고요. 그래서 가끔씩 펜에 손이 안 가는데 이걸 극복하려고 어떤 행동을 한다기보다는 상황을 두고 기다리는 편이에요. 어차피 매일 같이 있다 보니 금방 예전처럼 감정이 돌아오거든요. 그러니까 그림이 잘 안 올라온다 싶을 때에는 '다퉜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최근에 제가 그림을 안 올렸는데 다툰 건 아니라고 미리 말해드려요. 혹시나 오해하실까봐(웃음)
A. 저도 제 그림을 찾으려고 1년 동안 꾸준하게 여러가지 그림들을 왔다갔다 했는데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체와 분위기로 그려도 보고 아주 사소한 부분들을 바꿔보면서 연습을 했었어요. 물론 이런 노력도 다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한테 가장 편한 그림 스타일로 꾸준히 작업하고 디벨롭 해나가는게 길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앞서 그림체에 관한 이야기를 드렸지만 사실 제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아주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였습니다. 잘 그리려고 하는 노력도 좋지만 어떤 것을 담을지 고민하는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의 그릇을 준비하고 채워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그림이라는 것이 완성될 거라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학교, 카페 등 작업환경에 제한이 있어 많은 후배 창작자분들께서 힘드실 것 같은데요. 조금만 더 참으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테니 그때까지만 마음 다잡으시고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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