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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한계 짓지 않기, 로즈 와일리 Rose Wylie

노트폴리오 매거진| 2022.01.25

올초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전하다. 여전하다고 하기에는 이전보다 확산세가 심상찮다. 벌써 이렇게 한해가 흘렀다. 그래서일까.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엔 잠들기 전 ‘인생의 궤도’를 그려본다. 자유분방한 동시에 보수적인, 그런 모순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훌쩍 먹은 나이를 곱씹으며 ‘지금까지 모아 둔 돈은 얼마더라’, ‘앞으로 뭘 해야 자산을 늘릴 수 있지’ 같은 경제적인 고민과 더불어 건강에 대한 걱정, 부모님의 노후를 생각한다. 하고 싶은 공부가 또 생겼는데 그 기간과 비용을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고, 이미 20대 중반에 변곡점을 그렸으니 굳이 ‘또 그래야 할까 싶기도 하다.

Rose Wylie, 출처: www.theguardian.com

생각의 고리를 끊게 된 것은 ‘한국 사람들은 너무 나이에 집착한다’는 명제를 접하고부터다. 생각해보니 25살 즈음에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지, 20대 후반에는 자산을 불려야지, 30대 초반에는 연애와 결혼을 하고, 30대 중반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지 등의 사회적 규칙에 매몰되어 있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그러한 삶을 살기를 거부하면서도, 일련의 수학 공식처럼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미 그 공식에서 많이 벗어난 삶을 사는 내가 ‘스스로의 몫을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곱씹어 보곤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이’라는 숫자에 따라, ‘돈’이라는 경제적 이유에 따라 스스로의 한계를 짓고 이전보다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가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Echoes of Basquiat … Pink Skater (Will I Win, Will I Win), 2015 by Rose Wylie
Fling it on … Queen with Pansies (Dots), 모든 이미지 출처:www.theguardian.com

그런 맥락에서 한 작가의 작품은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언뜻 보기에 다소 천진난만한 선을 갖고 있는 그림은 ‘때 묻지 않은 아이가 그린 그림은 아닐까’하는 첫인상을 줬다. 어떤 그림에 등장하는 인체는 눈에 띄게 그 비율이 맞지 않다. 그러나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야말로 이상하지 않은 게 이상한 그림이다. 되레 선들은 삐뚤어져 있어서 자연스러운 인상을 주고, 작가 특유의 ‘느낌’을 자아내는 장치로 작동하기도 한다. 거친 선만큼이나 밝은 컬러로 연출된 색감은 어쩐지 긍정의 에너지와 활기를 전해준다. 말 그대로 작품 하나 하나가 유쾌하다는 이야기다.

Ray’s Yellow Plane (Film Notes), 2013 by Rose Wylie 출처: www.theguardian.com
Rose Wylie Lolita and Selffie, from AR Summer 2018 Review, 출처: ArtReview

이 인상 깊은 그림의 히스토리를 추적해보니 작가의 이력 역시 흥미롭다. 기성의 작가와는 다른, 특이한 연혁을 가진 그림의 주인은 ‘로즈 와일리(Rosw Wylie)’. 그녀는 캔버스에 그려낸 순수함이 본인의 나이에서 비롯하지도(=어리지 않다는 이야기다), 예술가로서의 정석적인 루트에서도 비롯하지 않았다. 그녀는 1934년생으로 올해 나이 86세의, 뒤늦게 미술계의 슈퍼스타가 된 할머니다. 로즈 와일리는 일찍 결혼을 해 자녀를 두고 화가인 남편의 뒤에서 가정주부로서 평범히 살아왔다. 하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미디어 속 주제들을 피사체로 삼아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7년 경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Lolita's House, 출처: New News
NK (Syracuse Line-Up) (2014), Rose Wylie, 출처: Apollo
Snowwhite (3) with Duster (2018), Rose Wylie, 출처: Apollo
Inglourious Basterds (Film Notes) (2010), Rose Wylie, 출처: Apollo

이러한 인기는 전해지고 전해져 한국에서도 로즈 와일리의 그림을 실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약 3개월간 전시를 개최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력을 앞에 두고 생각해보니 나 역시 지금은 무엇을 시작해도 몇 번의 슈퍼스타가 될 수 있을 나이다. 사람은 어쩌면 스스로 한계짓기 때문에 현재에 계속 매몰되는 것은 아닐까.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지속될 것 같다가도 일순간 주목받는 작가로 탈바꿈하는 게 ‘인생’이라니, 어쩌면 인생은 그래서 재미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전시기간 2020년 12월 4일 – 2021년 3월 28일
운영시간 AM 10:00 - PM 7:00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15,000원/성인, 13,000원/청소년, 11,000원/유아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 1전시실, 제 2전시실
문의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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