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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지금 이 순간을 살라!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전시]

김혜정| 2022.07.05

처음 유에민쥔의 작품을 본 나는 생각했다. 중국의 현실을 풍자한 그림인가 보구나. 내가 본 작품은 유에민쥔의 대표작 ‘처형’이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고야 1808년 5월 3일’을 패러디한 그림이다. 고야의 작품은 공포와 두려움이 생생하게 표현된 양민 학살의 모습인 반면, 유에민쥔이 표현한 ‘처형’의 현장에는 실없이 웃고 있는 군중이 있다. 총 겨누는 시늉을 하는 집행자와 그 앞에서 두 눈을 질끈 감고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있는 사람들. 벌거벗고 있는 사람들과 대비되는 원색으로 표현되어 정치적 의미를 가진 장소를 은유하는 배경은 작품이 말하는 바를 짐작게 한다.

사실 나처럼 중국의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표현된 작품과 작가 이름을 본다면 이 정도는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전시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서 관람 전 유에민쥔에 대해 알아보았다.



유에민쥔은 1962년 중국 헤이룽장성 다칭시에서 태어나 사범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교사로 일하던 중 일어난 천안문 사태에 혐오를 느끼고는 1990년부터 베이징에서 화가로 등단해 현재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으로 대변되는 차이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며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강렬한 작품을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한 1979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로 서양의 추상 미술이 확산됐다. 이를 신사조 미술 운동 혹은 85신조 미술이라고도 부른다. 85신조 미술은 시간이 흐르며 ‘지역’과 ‘주제’로 파가 나뉘게 된다. 동북 지역에서 이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들과 서남 지역을 중심으로 인간 본성을 탐구한 작가들로 나눌 수 있는 두 사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변모한다. 89년 천안문 사태가 바로 그 계기이다.

변모한 그 모습 중 전자를 ‘정치적 팝’, 후자를 ‘냉소적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유에민쥔은 대표적인 냉소적 사실주의자이다. 1990년대 시장경제 도입으로 급변한 사회 내에서 냉소적 사실주의자들은 ‘개인’의 존재 방식에 주목한다. 또한 그들은 더 이상 작품으로 사회와 문화를 구제하는 새로운 가치체계 구축에 관심이 없으며, 자아 구제의 방식으로 ‘조롱’을 즐겼다.

유에민쥔 작품의 대비적인 색채 표현과 기괴한 구도, 반복되는 과장된 웃는 얼굴은 냉소적 사실주의 기법을 사용한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Memory 2, Oil on Canvas 140x108cm 2000 ⓒYue Minjun 2020.jpg
Memory 2
Oil on Canvas 140x108cm 2000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작가가 어린 시절 보낸 명절의 기억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웃는 얼굴에 머리 상단부분이 잘려있고 빨간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이다. 머리가 잘린 웃는 모습은 정신없이 성장하는 시대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무 생강 없이 행복해하는 현시대의 우리 모습을, 하늘로 날아가는 빨간 풍선은 시대적 상황은 별개로 이상과 꿈을 꾸던 어린 시절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다.


__EXPRESSION__ in Eyes, Oil on Canvas 240x200cm 2013 ⓒYue Minjun 2020.jpg
__EXPRESSION__ in Eyes
Oil on Canvas 240x200cm 2013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유엔민쥔의 작품 중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는 인물이다. 호탕하게 웃고 있는 입과는 반대로 그의 눈빛 속에는 죽음의 해골이 있다. 맑은 하늘과 터질듯이 붉은 얼굴, 크게 벌어진 밝은 웃음과 해골의 대조는 인간의 삶에 항상 존재하는 삶과 죽음, 희와 비의 양면성을 상징하는듯 하다.

The Blue Ocean, Oil on Canvas 250x200cm ⓒYue Minjun 2020.jpg
The Blue Ocean
Oil on Canvas 250x200cm 2018
ⓒYue Minjun 2020
사진제공 :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사무국


피카소와 레닌, 만화 주인공인 도라에몽과 무장한 경찰 시위대, 그리고 활짝 웃고 있는 유에민쥔. 다른 이념과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바닷물 속에 뒤엉킨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내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유에민쥔


나는 휴대폰 메모장 어플에 이런저런 생각을 쓰며 전시를 관람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다시 본 메모장에는 이런 문장들이 남아있었다.

해탈한 것 같다.
초연한 모습.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미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대.


사실 나는 작품 전반으로 유에민쥔이 체념하고, 해탈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바보인 척해서 죽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역사 속 인물도 여럿 떠올랐다.

그는 죽음을 직시하고 능동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기껏해야 자신의 마음가짐 정도 다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의 고백처럼 노장이나 화엄 사상에 기대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사회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그것이 유일한 자아 구제 방법으로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유에민쥔이 이번 전시 타이틀로 하고 싶어 했던 ‘일소개춘 一笑皆春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나 “만약 내 그림 속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면 그건 감상자가 행복하기 때문 아닐까?”라는 그의 말은 내가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느꼈던 ‘해탈’의 메시지를 더욱더 강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사실 웃는 행위는 큰 에너지를 요구로 하는 일이다.

웃다
1. 기쁘거나 만족스럽거나 우스울 때 얼굴을 활짝 펴거나 소리를 내다.
2. 얼굴에 환한 표정을 짓거나 소리를 내어 어떤 종류의 웃음을 나타내다.


‘웃다’를 국어사전에 검색했을 때 나오는 풀이다. 유에민쥔의 상황에서 첫 번째 의미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의미를 살펴보자. 사람들이 환하다고 통상 인식하는 표정을 짓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얼굴의 근육을 움직여 중력의 반대로 올려야 한다. 또한 소리를 내어 웃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빈정거리는 의미의 ‘칫’을 제외하고는 모두 짧든, 길든 숨을 한번 들이쉰다. 그리고 웃음소리를 내기 위해 일정 시간 동안 복부에 힘을 준다. 어떤 방식이든 몹시 수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 초연해진 작가는 더 큰 숲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세계와 나로 도치하여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 같은 존재가 된다. 세상 속의 모든 ‘나’는 삶과 죽음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웃다’를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나오는 세 번째 풀이가 있다. ‘같잖게 여기어 경멸하다.’ 나는 웃음이든 경멸이든 감상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감상을 하기 위해선 대상이 필요하다. 유에민쥔에게 대상은 ‘시대’이다. 경멸스럽든 기쁘든 대상과 접촉한다. 유에민쥔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등지지 않고 계속 지켜보고 있다.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짙은 웃음과 함께.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Yue Minjun A-Maze-Ing Laughter of Our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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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작은 단위로 사람들의 소통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꾸준한 기록의 역사와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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