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체리장, 한국을 읽다

노트폴리오 매거진| 2021.11.08

어떤 미친 인간의 동영상인가 싶어 무심코 시청을 하다가 홀린 듯이 검색창을 켰다. 유투브에 게재된 콘텐츠는 얼마 되지 않는데, 하나하나 시청하다보니 어쩐지 중독되는 느낌이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은 미디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흔한 사이비 교주의 모습이다. 머리에는 다이너마이트에 달릴법한 초시계를 장착하고 있고, 일본의 게이샤를 연상케 하는 흰색 얼굴의 분장과 그와는 대조적인 장식들이 눈에 띈다. 형광 핑크에 노란색 자막, 정신없이 시시각각 변하는 사운드와 텍스트에 정신이 혼미하다. 게다가 “북한 핵폭발”, “일등 시민권”이라는 하이톤의 근본 없는 단어의 강조와 반복은 보는 사람의 혼을 쏙 빼 놓는다.

BJ 체리 장 2018.04


그녀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녀는 세상의 많은 이치를 깨달은 신(神)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그래서 체리장은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며 묘하게 자신의 의견을 종용한다. 그녀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포인트를 관찰할 수 있는데, 다분히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는 모순적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이비 교주만 흉내 낸다고 보기에는 ‘체리장’이라는 캐릭터에 투영된 한국사회의 시류가 너무나도 흥미롭다. 묘하게 촌스럽지만 촌스럽지 않은(되레 트렌디하다) ‘뭐 저딴 인간이 있나’ 싶지만 살면서 한번쯤 겪어본 인생의 또라이를 자연스레 회상하게 만들어서다.



사이비 간접체험 하기

출처: Sungsil Ryu


90년대 말, 일부 사람들은 2000년이 되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 믿었다. 각종 음모론과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했을 이 소문에 나 또한 “각 국가마다 12시가 되는 타이밍이 다른데, 그럼 언제 지구가 폭발하지?”라는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그 후로 20년은 훨씬 지난 지금, 성인이 되어 멀쩡히 지구에 발붙여 살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전해듣곤 한다. 그건 진짜로 종말론을 믿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거주지를 찾겠다며 자신의 전재산을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어줄 리더에게 기부했다거나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썰이다.


BJ 체리 장 2019.8


그리고 2020년 초반, 한국에 코로나가 확산된 원인이 신천지로 향하면서 ‘일상에 스며든 사이비’를 체감할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각 사이비별 특징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저런데 속아?’ 싶었던 의구심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는 반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들 역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업(?)이기에 시류를 좇지 않으면 세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만큼 그들의 접근방식은 일상적이고 특별할 게 없었다. 포인트는 이들이 사람의 불안을 자극해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하도록 만든다는 점이고, 그러한 맥락에서 ‘그럴듯한 직함’과 단정적이다 못해 확고한 지도자의 언행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자’가 기꺼이 불안한 영혼을 돌봐준다는 감동의 서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 어리석은 너희를 위해 기꺼이 진리를 알려주겠다’면서 체리장처럼 공개된 장소에 자신의 계좌번호를 공개한다는 점이지만.

출처: Sungsil Ryu


마치 자극적인 인스턴트의 단짠단짠 같은 조합은 정신을 쏙 빼놓으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홀린다. 체리장의 콘텐츠는 이처럼 사람들이 사이비에 ‘홀리는 이유’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


불안과 욕망을 자극하는 1인 미디어

그러나 사이비에 속는 사람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도들의 기저에는 불안과 외로움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제는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면서 전례 없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전에 대중들을 호도하던 매스미디어는 어쩐지 그 전보다 효과가 조금 덜 한 것 같다. 사람들의 취향과 욕망이 보다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1인 미디어가 더 각광받기 시작해서다.

[M/V] 대왕트래블(Big King Travel)


이렇듯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고, 물리적으로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1인 미디어에 몰두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자본주의 논리대로 그간 누구나 즐길 수 있던 야외활동은 더 이상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활동이 되었다. 되레 안전이 보장된 장소에서 안전이 보장된 사람들과의 ‘프라이빗한 액티비티’가 주가 된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불안에 노출된 사람들이 각자의 심리적 결핍을 해소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미디어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에서는 그게 가장 싸게 먹히는 방법이다. 혼자 있어야 하지만 혼자 있기 싫은 마음. 그런데 그 마음에 오롯이 공감하며 희망찬 미래로 이끌어줄 능력자가 있다면?

출처: Sungsil Ryu


체리장은 이렇듯 범람하는 1인 미디어 세계에서 불안에 가득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체리장 선생님은 노예 천사들을 부리며 인생 2막을 누리고 계십니다 그녀가 떠난 이유는 한국이 힘들어서도 있지만 부자가 되는 법칙 2번인 '돕고 살자'를 실천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먼저 가셔서 길을 잘 닦아두시고 계실겁니다 그래도 아기천사들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니 그리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새참으로 천만원어치 진수성찬도 잡수시고 계실 겁니다.
출처: [M/V] 대왕트래블 (Big King Travel) - 대왕트래블 로고송 (Big King Travel logo song)에 달린 댓글 중 하나


재미있는 점은 구독자로 등장하는 관람객 역시 이 쇼에 구성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캐’가 인기를 끌 듯 체리장 역시 여러 개의 캐릭터로 분열하여 그 서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바로는 BJ 체리장은 일등석을 얻어 극락의 세계로 갔고, 그녀와 닮은 ‘나타샤’가 한국의 중년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류성실 개인전 _ 대왕트래블 칭쳰 투어, 출처: 탈영역 우체국


물론 댓글에는 체리장이 환생했다는 썰도 있고, 실은 죽지 않았다는 썰도 있다. 더 재미있는 건, 영상에 쓰였던 계좌번호가 실제 작가의 계좌라서 이곳으로 돈을 보내면 본캐인 조성실 작가에게로 입금된다는 점이다. 이렇듯 가상현실이 실재로 이어지는 경험 역시 체리장만이 주는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공식석상 죽음을 맞이한 체리장이 2022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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