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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행복을 마주하기

노트폴리오 매거진| 2021.08.24

무더운 여름이 지속되면서 바다가 절실해졌다. 강한 햇빛만 내리쬐는 게 아니라 습도가 높은 한국의 여름은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온도보다 더 높은 불쾌지수를 선사하곤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인 서울에서 살고 있음에도 내리쬐는 햇빛과 다습한 기후에 순간 이곳이 대도시인지, 한여름 바닷가인지 분별이 안 될 때가 있다. 이런 날에는 열심히 일을 하는 대신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거나 물놀이를 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하지만 쉬이 시도할 수 없는 이유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퍼지고 있어서다. 그나마 대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집구석에서 하계 올림픽을 시청하는 일이었다.

올림픽 최초 서핑 종목 금메달리스트 '이탈로 페레이라'. 그는 가난한 가정 환경에서 아이스 박스 뚜껑으로 서핑을 연습했다, 출처: @ISAsurfing


이번에 새롭게 하계 올림픽에 추가된 스포츠 종목에는 ‘서핑’이 있었다. 역사적인 경기가 개최되는 날, 하필 파도의 흐름이 좋지 않아 각국의 선수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자는 서핑의 매력을 설파하면서 ‘파도는 매일매일 변하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고, 선수들은 매일 변하는 파도를 즐겨야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이던 선수들은 각각 어릴 적 아이스박스 뚜껑으로 서핑을 연습했거나, 이와 정반대로 서핑선수 출신인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각기 다른 배경으로 바다를 누비고 있었다.

올림픽 서핑 메달 수여식, 출처: International Surfing Association


그런데 바다를 누비는 선수들의 모습이 마치 ‘서핑’ 같아서, 그들이 타고 있는 파도가 마치 우리네 인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 그래서 인생은 마냥 좋은 일만 계속 되지도, 나쁜 일만 지속되지도 않는다.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며 직접 경험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마치 파도 같은 인생을 그나마 잘 버틸 수 있게 하는 건, 그저 세찬 파도가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힘찬 파도를 즐기는 것이다.

Window Opening on Nice, 라울 뒤피, 1928, 출처: Google Arts & Culture
Boats at Martigues, 라울 뒤피, 1908, 출처: WikiArt.org
Chateau and Horses, 라울 뒤피, 1930, 출처: WikiArt.org


이러한 맥락에서 라울 뒤피의 작업이 떠올랐다. 강렬한 색상과 쾌활한 분위기가 샘솟는 그의 작업은 말 그대로 에너지틱하다. 무더 여름날 내리쬐는 햇빛과 강렬한 인상을 화폭에 담은 그의 작품은 면밀하게 살펴보면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다. 그는 연회장과 바닷가, 뱃놀이, 서커스, 산책길, 해변 등, 그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하루를 소재로 삼았다. 다만 신비로운 지점은 그의 손을 거친 일상의 소재들이 아주 특별한 날의 기억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는 밝은 색채와 리드미컬한 선의 사용으로 연출되는 그만의 특유한 분위기다. 때문에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다가와 설렘을 준다. 마치 지친 하루에 힘을 북돋는 노래처럼 말이다.

Regatta at Cowes, 라울 뒤피, 1934, 출처: WikiArt.org
Fête Nautique (The Regatta), 라울 뒤피, 1922, 출처:Google Arts & Culture
Homage to Claude Debussy, 라울 뒤피, 1952, 출처: WikiArt.org


항간에 예민함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체력을 기르는 일이라고 한다. 피곤함이 지속되면 쉽게 무기력해지고, 일상의 작은 부분도 짜증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민함이 부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문제는 자신이 가진 예민함을 발전적인 요소로 사용할지, 말지의 여부다. 전자는 자신이 가진 예민함을 토대로 발전해 갈 것이고, 후자는 예민함 그 자체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물론 인지적인 측면에서 왜곡된 사고를 수정하는 방법도 있지만, 행동학적인 방법인 운동을 통해 일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 건강한 정신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만든다.

Interior with Indian Woman, 라울뒤피, 1930, 출처:WikiArt.org
Casino of Nice, 라울 뒤피, 출처: https://www.wikiart.org


이러한 맥락에서 파도를 타는 서핑 선수와 라울 뒤피의 작업은 공통점을 지닌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정석대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있는 그 자체로 즐기는 것, 나아가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특별함을 부여하는 태도가 말이다. 어쩌면 이들은 스포츠라는 행동학적인 방법과 자신도 모르게 행하는 인지적 왜곡(The mental filtering)을 그림을 통해 해소하는 자기 치유의 방식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The Duke of Reichstadt, 라울 뒤피, 출처: WikiArt.org


팬데믹으로 지쳐가는 요즘,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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