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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데 병원에 갈 수 없다면

반딧| 2021.08.20

 몸이 아플 때 우리는 병원에 간다.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는다. 만약 증상이 심각하다면 상위 의료기관으로 의뢰하는 소견서를 받는다. 시간차가 있을 순 있지만 큰 장벽 없이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고 입원해 치료를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은 뛰어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우리나라의 방역 체계가 큰 관심을 받았지만, 평상시의 의료 접근성과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만 해도 의사를 만나기 비교적 어렵다. 특히 잔병치레에 의사를 만나기 참 힘들다. 의사를 만나려 예약하고 며칠 대기하다 보면, 이미 병이 다 나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체계는 잘 갖추어져 있기에 내가 심각한 병을 앓게 되어도 치료를 받을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런 체계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개발도상국이라고 해서 시스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을 단위의 보건소부터 고등 병원까지 의료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다. 시스템을 이루는 요소들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시스템 전체가 삐그덕거릴 수밖에 없는데, 개발도상국에서는 어긋난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결국 몸이 아픈 보통 사람들이 그 여파를 온몸으로 떠안는다.

 우간다에서도 그렇다. 수도 캄팔라와 같은 도시를 제외한 곳에서 의사를 만나는 것은 일단 물리적인 거리가 장벽이 된다. 특히 마을 단위의 커뮤니티에서 의료기관을 방문하려면 반나절, 하루 넘게 이동해야 한다. 아픈 몸으로 비포장 도로를 달려 이동하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인데, 교통수단도 제한적이다. 보통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데 그러면 교통비가 든다. 다른 지역까지 다녀오려면 왕복 교통비에 좀 더 얹어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마저 없으면 걸어가야 한다. 교통비에서 끝나면 좋을 텐데 하루하루의 노동으로 먹고사는 이들에게 이렇게 하루 일을 못한다면 설상가상이다. 어쩌면 함께 동행할 보호자의 기회비용도 포함될 수 있으니 가족의 생계에 큰 위협이다. 이러니 일찌감치 병원에 가길 포기하게 된다. 가서 검사를 받게 되거나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면 더 많은 돈이 들까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꼭 가야 하는 사람들은 큰 부담을 안고 가게 된다.


아플때 병원 대신 방문하는 드러그 스토어


 이런 의미에서 우간다에서 1차 의료기관은 기관이 아니다. 마을 단위의 사람들, 바로 지역보건의료인력 (Community Health Worker)이다. 이들은 의사, 간호사처럼 전문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나 정부 훈련을 통해 기초적인 지식을 배운다. 마을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상담을 해주고, 마을 사람들에게 보건위생, 성교육을 하기도 한다. 배앓이나 기침 같은 흔한 증상은 직접 응급약을 일러주거기도 하고 심각한 환자가 있으면 보건소에 연락해 해결할 방법을 찾기도 한다. 지역보건인력은 원칙적으로 자원봉사다. 생업과 더불어 하려면 그 자체로 고된 일이지만, 명예로운 일로 여겨진다. 마을 사람들이 똑똑하고 믿음직스러운, 그리고 소통을 잘하는 사람을 직접 뽑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가 평생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이기에 아픈 사람들에게 최선의 방향으로 도와주려 한다. 그리고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 접근하니 이들이 하는 조언도 더욱 설득력 있다. 물론 이들은 의사가 아니기에 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없다. 하지만 가까운 의료 기관의 부재를 조금이나마 메꾸며 마을 사람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


우간다 지역보건의료인력 (Community Health Workers)


 2017년 우간다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이런 맥락에서 시작했다. 내가 함께 일한 회사 'Healthy Entrepreneurs (건강한 사업가)'는 사회적 기업으로 네덜란드 위트흐레트 (Utrecht)에 본사가 있으며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Healthy Entrepreneurs'는 지역보건의료인력의 기존 시스템 위에서 이들에게 교육과 사업의 기회를 준다. 현장에서 도움이 될만한 지식, 경험을 전수하고 상담을 통해 돈을 벌어 지역보건 업무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본사에서 제공하는 응급의약품, 생리대나 기저귀, 칫솔과 같은 위생용품들을 함께 판매하고. 아직 이런 제품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보건 교육도 함께 하여 의식 수준을 높인다. 이런 의미에서 'Healthy Entrepreneurs'는 효과적으로 시골 벽촌의 사람들에게까지 그 손길을 뻗쳐 건강 증진을 할 수 있었다.


'Healthy Entrepreneur'에 소속된 지역보건의료인들의 활동 (출처: 회사 홈페이지)


그리고 나를 비롯해 네 명의 디자이너가 모여 이 회사와 협업하여 새로운 서비스를 디자인했다. 지역보건의료인들의 '1차 상담'을 질적으로 향상하는 서비스 및 애플리케이션 개발이었다.


상담 서비스는 태블릿 기반 애플리케이션에 체온계, 말라리아 진단 키트를 포함한다. 그리고 추가적인 훈련과 데이터 관리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여 효과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가장 주력했던 것은 바로 '열 = 말라리아'라는 잘못된 통념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말라리아가 감기만큼 흔한 나라기에 어쩔 수 없는 편견이었다. 발열감, 근육통, 두통 등 두드러지는 증상들이 나타나면 말라리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이 나고 몸살기가 있으면 바로 약국이나 잡화상에 가 말라리아 약을 산다. 말라리아약은 처방전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말라리아에게만큼은 예외다. 말라리아 약을 복용해보고도 낫지 않으면 항생제를 구해 먹는다. 약을 먹어보며 시행착오를 통해 내 병을 진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부로 약을 복용하게 되면 내성이 생겨 실제 그 병에 걸렸을 때 약의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 약이 수급되지 않을 수 있어 그 위험이 크다.


말라리아 진단을 받으려면 2차 의료기관으로 가야하며, 진단 기구나 인력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지역보건인료인들은 상담을 통해 증상으로 다른 질병인 경우를 가려내고 있다. 최대한 이런 오남용을 줄여보려고 하지만, 이들도 검사를 해보지 않은 이상, 대체 무슨 병인지 시원하게 말해줄 수 없다. 참을성 없는 사람들은 상담 결과 다른 병이라는 말을 들어도 결국 약을 구해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1차 상담에서 보건의료인들이 더 신뢰감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그리고 말라리아 케이스를 증상으로 한번 걸러낼 수 있다면 사람들의 혼란을 막고 약물 오남용을 줄일 수 있다.

 서비스 디자인을 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를 시도했다. 하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담 방식에 새로운 디자인이 잘 융합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실제 사용자들이 디자인 과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페르소나와 환자 경험 맵

현재 일하는 방식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 지역보건의료인들을 10명 남짓 인터뷰했다. 또, 업무를 할 때 동행해 환자들과 어떻게 접촉하고 대화하는지를 Journey map (경험 맵)으로 나타냈다.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환자와 지역보건의료인의 페르소나 그리고 경험 맵을 완성 했다.


지역보건의료인을 따라 커뮤니티 방문
페르소나와 사용자 경험 맵


커뮤니티에서 코-디자인 워크숍

지역보건의료인들은 디자인 프로세스에 익숙하지 않고, 추상적인 얘기만으로는 디자인을 하기에 어렵기에 바로 코-디자인을 시작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우리가 인터뷰하고 관찰한 내용을 최대한 반영하여 팀 내에서 우선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기존의 경험 맵과 의료기관에서 널리 쓰이는 상담 구조에 따라 서비스의 기본 틀을 잡았고 구체적인 디자인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파워포인트로 아주 기본적인 인터페이스의 프로토타입을 미리 만들었다. 그리고 지역보건의료인들에게 이 프로토타입을 활용하며 환자들을 대하듯 상담해보도록 했고, 어떤 점이 유용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구체적인 피드백을 유도했다. 단순한 피드백으로 글씨 크기가 너무 작아 나이가 많은 보건의료인들에게는 읽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또, 상담을 할 때 도움말은 좋지만 실제 마을 사람들에게 쓰는 단어로 바꾸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함께 모여 앉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결과물로 디자인의 초안을 완성했다.


코-디자인 워크숍


 이렇게 해서 훌륭한 서비스를 개발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 Healthy Entrepreneurs'가 현재 일하는 지역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에 입력해 증상 기반의 결과를 제안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사정이 좋지 않으니 애플리케이션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기도 어렵다. 아직 더 발전 가능성이 많은 부분이니 기대해본다.


각각의 커뮤니티에서 이동하기 어렵기에 물류창고에서 한 달에 한번 출장을 나가 약품, 생리용품 등을 공급해준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각국의 보건의료체계의 장단점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아프리카는 말라리아를 포함한 각종 질병의 존재에 그나마 익숙하다. 시골 오지에 사는 사람들의 의료접근성을 개선하려면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 넘어야 할 장벽도 많고, 자본의 힘도 필요하지만 그 해결을 위한 노력에 디자인이 유용하다는 사실이 안심이 된다. 그리고 나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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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인과 리서치를 하고 있는 반딧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인터랙션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치고 3년차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으로 어떤 이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대 출신 디자이너로써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해외 생활을 하며 느낀 점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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