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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3D 프린트 탐방기

반딧| 2021.08.02

내가 학부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3디 프린터가 널리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일이 학년 때에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위해 폼을 깎고 진공성형을 하고 사포질을 하고, 색칠하며 밤을 새웠던 날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다 학과에 공용으로 프린터가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모델링 수업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캐드로 3디 파일을 만드는 것에는 익숙했다. 하지만 학교 프린터 몇 개로는 학생들 전부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부족했다. 내 졸업 작품의 내부 파트는 외부 업체를 통해 3디 프린트로 뽑았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메이커 무브먼트부터 시작해 디자이너,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3디 프린팅에 익숙해졌다. 피겨 등을 만드는 D.I.Y 취미 활동에도 흔히 쓰이고, 요즘엔 가구와 집까지 프린트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나이로비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그동안 우리 프로젝트에서도 3디 프린터가 큰 몫을 했다. 아프리카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디자인을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 중의 하나가 가격이 얼마 인지와 제품 생산을 어떻게 할 건지다. 그에 대한 아주 단순 명료한 답이다. 3디 프린터로 현지에서 바로 생산하고 공급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프린터를 가지고 가서 현지에서 제품을 만든다.

특히 헬스케어에서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재난 등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고립된 지역에 필요한 의료 기기나 소모품 등을 프린트한다면 시간과 유통 과정의 제약 없이 필요한 곳에서 만들고 사용할 수 있다. 또 수리가 필요한 의료기기가 있을 때, 필요한 부품을 프린트한다면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수리에 드는 시간,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또 맞춤형의 인공 팔다리 등의 의료기기 제작 또한 가능케 해,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 사는 환자들에게는 정말 혁신일 수 있다. 이런 배경으로 케냐에서 3디 프린트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했다. 우리 연구 팀에서도 아직 진행 중에 있어 결론을 내리기엔 섣부르다. 하지만 수술 기기와 진단 기기 개발을 위해 현지 탐방에 나섰다. 여러 한계점도 보았고 가능성들도 보았다. 몇 가지 경험들을 적어본다.


나이로비 메이커 스페이스


케냐의 메이커 스페이스는 나이로비 대학교에서 출발하여 자체적으로 운영 중에 있다. 주로 나이로비 대학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가지고 와 작업을 하기도 하고, 주변 기업이나 비영리단체와 산학협력도 활발하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한 재료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등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커톤을 정기적으로 진행해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 지원한다.


나이로비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제작 중인 오픈 소스 현미경

미국, 캐나다 등에서 기증받은 의료기기. 제품이 오래되어 부품을 구할 수 없거나 전압이 맞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 연구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현지 의공학 학생들과 함께 의료기기에서 교체해야 하는 부품을 모델링 해 프린트했다.


그리고 현지 병원도 세 군데 방문을 하여 수요를 파악했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 기증받은 의료기기들이 창고에 쌓여있었다. 전압 변환이 가능한 제품들은 의공학 엔지니어들이 작업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제품이 이미 오래되어 수리 보증 기간이 지나 수리할 수 있는 부품 조차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혹은, 부품이 있어도 부품을 이 곳으로 보내기까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연구 팀에서 파생되어 나온 키 젠지라는 스타트업은 현지에서 의료기기 부품 제작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현지 의공학 학생들이 의료기기에서 교체가 필요한 제품을 직접 모델링 해 프린트했다. 물론 재질 특성상 내구성이 강하지는 않지만, 효과적인 설루션이 되고 있다.

의료 기기를 위한 3디 프린트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케냐의 전기 인프라와 수요에 맞춘 3디 프린터를 개발한다거나 복잡한 수술을 앞두고 환자의 장기를 3디 모델로 제작하는 스타트업 등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내게 나이로비는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국제기구나 비영리 단체 등의 아프리카 지역 본부가 위치하고 있어 케냐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수도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그에 더불어 케냐를 발전시키겠다는 꿈과 희망에 넘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 내게는 도시 전체가 꿈틀 거리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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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인과 리서치를 하고 있는 반딧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인터랙션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치고 3년차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으로 어떤 이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대 출신 디자이너로써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해외 생활을 하며 느낀 점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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