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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디자인하기?

아욱| 2022.04.07

디자이너 생존기 6

"ㅇㅇ씨! 여기 색 더 진하게 하고 거기 글자 더 키워줘, 그리고 사진도 좀 더 잘 보이는 걸로!"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업무 중에 이와 같은 상사의 목소리를 자주 들었을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지시사항들이 디자인을 더 못나 보이게 만든 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이쁜' 디자인을 뽑아내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다른 한편 기획자의 요구사항을 반영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면서 디자이너는 지독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각종 요구사항을 반영한 최종 디자인이 나왔을 때 기획자의 반응은? 냉담하다.. "너무 안 이쁜데요?" 아니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라는 생각뿐이다. 당연히 그 기획대로 하면 이쁜 디자인이 나올 수 없는데 마법을 부리라는 건지... 스타트업에 유일한 디자이너이자 신입이었던 내가 입사 초기 겪었던 가장 힘든 경험은 이처럼 기획자가 빡빡하다 싶을 정도로 많고 구체적인 사항들을 요구하면서 결과물이 보기 좋기를 바랄 때였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마음속으로 동의할 수 없는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포토샵 기계'가 되어가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대체 이런 난관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기획자의 지시를 모두 따르면서 좋은 디자인까지 만들어 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못한다면 나는 정말 감각 없는 디자이너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기획자와 원만한 소통을 유지하면서 최적의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한 시도의 과정과 결과 이후에 느꼈던 점을 공유하면서 기획자(마케터)와 디자이너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1. 기획자는 자신이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지 잘 알고 있지 못한다.

디자이너는 기획안을 듣고 대강 어느 이미지로 구현해 낼 수 있을 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낼 수 있지만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정보가 전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도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와 소통하고 업무를 부탁하는 도중에도 정확히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는지 견지하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당연한 게 본인이 못하는 걸 대신해주기 위해 디자이너가 있는 것이고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화나 회의 중에 서로가 제시하는 레퍼런스를 확인하고 레퍼런스의 의도와 특징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가 그리는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 것이 효율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구축해가기에 용이하다.


2. 시키는 대로 하지 말아라.

1번에서 말한 것처럼 마케터는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기획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콘텐츠는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회의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디자이너가 그것을 시각화 해내가는 과정에서 유동적인 상태로 변화한다. 기획자가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두고 그것을 가시화하는 올바른 길이 있다고 가정하는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 디자이너는 한편으로는 마케터의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덧 붙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의견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선을 긋거나,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이 더 좋은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 좋다. 사실 기획자와 동등한 티키타카를 하기 위해선 디자이너로서 내공을 쌓는 것도 중요하긴 해서 신입으로선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지점이긴 하다.


3.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 없는 디자인을 하지 말아라.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특히 기획자의 요구사항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결과물을 뽑아내지 못할 거라는 확신 속에서 작업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어디 두고 봐라'라는 심정으로 작업을 하게 되고 맘에 안 드는 이미지만 붙들고 있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물이 나올 리가 없다. 기획자의 의도를 디자인에 녹여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심미적 요소를 포기하면서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이것을 이쁜 결과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이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물론 굉장히 어렵지만 잘 해결하면 복잡한 수학공식을 하나 푼 것 같은 쾌감은 있다. 이쁜 디자인으로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작업 의욕을 이끌어 낼 수 있고 또 기획자를 설득시킬 수도 있다. 기획자가 말로서 디자이너에게 요구한다면 디자이너는 시각적인 결과물로서 다시 기획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대화하는 것과 같이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한 편으로는 더 좋은 방향성이 있다는 대안을 (이미지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4.비디자이너의 눈을 무시하지 말 것

디자인을 처음 시작할 때 자주 하는 착각 중 하나는, 비디자이너들이 디자인에 개입할 때 '왜 디자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말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인데, 생각보다 일반인들도 디자인 보는 눈이 굉장히 높다. 특히 마케터 같은 경우는 수많은 레퍼런스와 사례를 수집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보다도 더 예리한 안목을 지닐 수 있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에서 하는 기획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은 예쁜 디자인이 어딜 가든 널려있기 때문에 더더욱 일반인들의 안목을 높아지고 있다. 오히려 기술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디자이너의 눈이 일반인들보다 뒤처질 때도 있다. 따라서 나의 디자인을 가볍게 보는 사람도, 오히려 가볍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5. 정말 의견이 대립된다면 기획자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좋다.

사실 회사 입장에서는 상품을 많이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지 좋은 디자인 매체를 활성화하자는 공익적인 목표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획자와 타협할 수 없는 충돌지점이 있다면, 기획자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디자인은 주관적인 부분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한 명이 주도권을 갖고 가는 게 오히려 깔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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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욱

프랑스 브장송 보자르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국내 e-커머스 스타트업에서 BX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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