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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사회적 디자인?

반딧| 2021.07.15

석사 3학기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리서치를 위해 우간다에 다녀왔다. 의료 관련 프로젝트로 기업, 엔지오, 지역 전문가 인터뷰를 하고 콘셉트를 테스트하는 일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점을 느꼈다.

그때부터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 한 가지.
과연 다들 어떤 생각을 하며 사회적 디자인을 하고 있는가?

우리 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우간다 커뮤니티 단위의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콘셉트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외부에서 소개를 할 때면 늘 여기에 '사회적', 'Social' 디자인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따라 붙곤 했다. 보통 말하는 이런 류의 프로젝트들은 비용, 시간, 재능 등의 자원을 사회에 기부하고 봉사하는 성격이라고 생각되곤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런 프로젝트들이 사회적 디자인이라고 말하기도 참 조심스럽다.

일전에 사회적 디자인을 외치는 디자이너는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디자인은 항상 사회적인 요소를 품고 있으며 사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이라는 말을 새삼스럽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학교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디자이너들은 우리 삶과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하고 있다. 범위야 다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키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한다.

그 대상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고 범위가 한정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대 대학생, 30대 직장인, 남자, 여자, 노인, 아기... 그 대상은 참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 중 사회적 디자인의 경우에는 그 대상을 소외 계층이나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라고 정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을 한다며 특별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같은 프로세스를 거친다. 콘텍스트를 이해하고 문제를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등등. 결국은 같은 맥락의 디자인이라고 본다.

사회적 디자인, 소셜 디자인이라고 하면, 물론 추구하는 바가 다르긴 하지만 그렇게 동떨어진 디자인이 아닌데. 그래서인지 더 우리 삶과 거리감이 생겨 먼 딴세상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 다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런 사회적 디자인에 몸담고 있을까?

이번 프로젝트만 해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다. 지역 NGO, 사업 참여자들, 회사, 회사 직원들,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우리 팀원과 같은 학생들. 아마도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일테다.
하지만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고차원적인 이유에서만일까?

물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디자이너로서의 사회적인 소명감도 그 동기의 큰 부분이겠지만, 나로서는 각각의 프로젝트를 통해 나 스스로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왜냐하면 내 자아와 전문성을 찾는 것도 내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디자인 리서치에 참여하는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많이 배우고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 내다보면 또 내 커리어에 도움도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팀원 중 한 명은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에 호기심을 느껴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기회가 있으니 참여한 것이지 그렇게 심각한 고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해외 리서치도 다녀왔으며 국제적인 환경에서 작업을 해보는 경험을 해보아 만족스러워한다.

물론,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일이라면 이렇게 내 개인적인 바람들을 앞세운다는 게 이기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굴 돕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자신이 기여한 부분이 실제 세상에 나와 사람들의 삶에서 잘 쓰인다면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건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퍼주는 관계가 아니라 공생 관계 같은 것 아닐까 싶다.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사회적 기업은 네덜란드에 기반을 두고 실제 사업은 우간다, 케냐, 르완다 등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네덜란드 팀은 열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현지인이다.

네덜란드에서 만난 회사 사람은 처음 만난 자리부터 확실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 사업을 통해 헬스케어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그리고 함께 일하며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 비전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었다. 돈이나 명성과 같은 성공이 아닌 사회 약자를 돕겠다는 남다른 목표를 지향하고 있어 사업 또한 열정적으로 이끌고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간다에서 만난 매니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에게 이 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아마 살면서 주어진 가장 큰 기회였을 것이다. 그에게는 이 사무실에 앉아 지금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 그의 자부심이었다. 지역 내에서도 그의 성공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보내오고 있었다. 물론 그 역시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역에서 드물게 성공한 배운 사람이었고 그에 따른 책임감을 느끼는 위치에 있었다.

회사 소속으로 각 마을 단위로 소규모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사업은 다른 의미였다. 이 사업은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내 가족과 이웃들을 위하는 마음 위에는 당장 먹고살 집 마련과 내 아이의 학비를 대주어야 하는 현실적인 욕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고민은 점점 깊어져갔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막상 그 디자인을 사용하고 실행할 사람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을 수도 있다.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이미 좋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는 부족했다. 당장 눈앞의 생계를 책임져줄 그 무언가를 두고 나부터도 좀더 치열해져야 했다.

우리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우리 팀원들과 한 프로젝트가 우리의 의도대로 잘 된다면, 회사 소속 자영업자들은 좀더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수익으로 그들의 가족들은 조금 더 배부르게 먹고 조금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의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나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무엇하나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다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여기에 모여 앉아 우리 참 소셜한 디자인이라며 우리 참 좋은 일하고 있다며 자부하고 있었다.

글쎄다. 사실 학생으로서 우리에게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보면 큰 기회다. 우리 프로젝트가 끝나면 당장 6개월 후에 개발을 마치고 실제 현장에 적용한다니 말이다. 그러니 더더욱 학생이라서, 아마추어라서 부족할 수 있다는 변명을 해서도 안된다.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참 많이 배웠다. 그리고 잘 끝나서 다행이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내 마음 한구석은 늘 불편했던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쓴다.
외부 발표를 할 때면 특히 우리 팀원들은 이런 표현을 자주 쓰곤 했다.
우리는 우간다의 사람들을 도와주려 한다고, 이런 이런 디자인으로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면 칭찬 받기도 참 쉽다.
나는 칭찬받을 만한 일인지 아닌지 아직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 혼자만 진지한가 싶어 미처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돕는다"는 게 아니야. 너희도 나름의 이유로 많이 얻어가지 않았니? 어쩌면 우리가 우간다에서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하지만 사회적 디자인이고 돕는다는 말이고 간에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나도 더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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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인과 리서치를 하고 있는 반딧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인터랙션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치고 3년차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으로 어떤 이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대 출신 디자이너로써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해외 생활을 하며 느낀 점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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