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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언어 3강-1

윤여경|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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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림+글=기본층위 범주 기호들(de+sign) ; 말(문장) 구성 중심으로(S+V+O)


1) 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지금부터는 말=기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겉보기=기표와 속들이=기의의 관계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말은 경험에 기반합니다. 내가 주제로 정한 대상(곧이말=subjet)가 다른 대상(맞이말=object)와 어떤 관계(지님말=verb)를 함께 하는지를 살펴서 말을 만듭니다. 그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은 당연히 말도 공유합니다. 하지만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면 그 말도 공유될수도 없죠. 그렇기에 말을 만들때는 당연히 경험공유를 고려해야 합니다. 반드시 공통경험이 되는 요소를 찾아야죠. 개인적인 개별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말을 만들면 그 말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니까요.

예를 들어 우리집에는 만 4살이 된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놀이를 할때마다 매번 말을 만듭니다. 호랑이와 사자를 합친 '호랑사'도 있고, 방귀로 공격하는 '방곡기'도 있습니다. 모두 아이가 만들어낸 말입니다. 이렇게 맥락과 논리가 있는 말이 있는 반면 전혀 맥락없이 만들어지는 말도 있습니다. '백곡기'라는든 '꽥꽥이'라든지 그냥 기분대로 나오는 말입니다. 이 말들은 금방 망각되는지 아이는 종종 이렇게 물어봅니다. "아빠, 아까 내가 뭐라고 말했죠?" 이렇듯 맥락없이 만들어진 말을 휘발성이 높습니다. 금방 망각되죠. 본인이 만든 말도 기억을 못할 정도로요. 그래서 말을 만들때는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모두가 함께하는 보편적인 경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반드시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사람의 보편적인 경험은 앞서 언급했습니다. 위 아래, 앞뒤, 안과 밖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다른 여러 범주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적 범주는 말을 만들때 아주 유용합니다. 가령 '시간이 지나갔어'라고 말할때 '지난간다'는 마치 무언가가 옆으로 지나가는 공간적인 경험을 의미합니다. 이 공간적 경험이 시간적인 경험으로 여겨진 것이죠. 하지만 사람은 모두 앞뒤로 무언가가 지나가는 경험을 하기에 이런 표현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렇듯 말은 어떤 일을 통해 만들수도 있고, 형태나 꼴을 통해 만들수도 있습니다. 가령 코끼리는 겉보기를 갖고 만든 말입니다. 코끼리의 짜임뜻은 '코가 길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코끼리의 코는 겉으로 보기에도 특별합니다. 코끼리의 코는 여타 다른 동물들과 확연히 다르죠. 그래서 그 꼴을 보고 말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반면 '물'이나 '불'은 그 꼴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형태는 물론이고, 색이나 맛 등의 다른 감각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이미지가 상황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니 이 감각들로는 말을 만들수 없죠. 그래도 사람들은 아주 집요하고 현명합니다. 촉각적인 감촉에서 공통점을 찾았거든요. 사람이 물에 손을 담근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이빨로 손을 물면 위아래의 압력이 느껴지는데 물은 거의 같은 압력으로 손을 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것은 동일하게 느껴지죠. 한국사람은 이런 대상의 특징을 알고 물다와 바탕을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물'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물다'와 '물'은 바탕뜻을 함께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무게'와 '무겁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사람들은 물로 무게를 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물'과 '물다' 중 어떤 말이 먼저 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개념구조가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소리의 유사성도 느껴지죠. 이렇게 바탕뜻을 함께하는 언어들을 비트겐슈타인은 '가족유사성'이라고 말합니다. 신경언어학을 만든 레이코프와 존슨도 이를 이어 말은 어떤 경험과 소리의 원형에서 출발해 가족유사성을 형성해 왔다고 말합니다.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에도 원형이 먼저 소개되고 파생되는 말들이 나열되듯이요. 이 '가족유사성'을 한국말로 하면 '바땅뜻을 함께하는 말들'입니다.

한국말에는 다행이 바탕을 함께하는 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불'은 '불다'와 바탕뜻을 함께하고, '돌'은 '돌다'와 바탕뜻을 함께합니다. 돌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 '바위'는 '돌'과 다른 개념입니다. '바'는 한국말로 수평을 의미합니다. '바다'라고 할때 '바'는 수평을 의미하고 '다'는 끝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다'는 수평의 끝선입니다. '바위'는 땅의 수평인 '바'에서 '위'로 무언가가 올라온 상황을 반영한 말입니다. 그래서 '바위'입니다. 돌은 단단한 무언가가 돌고 있는 모습을 반영한 말이고요. 그래서 '돌'과 '바위'는 같은 성질과 재료를 갖고 있음에도 말이 다릅니다. 대상과 사람들의 경험관계가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사람의 말을 알면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대상을 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한국말을 알면 한국문화와 한국사람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겠죠. 그래서 근대에 이르러 영어와 독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언어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생겼죠. 우리는 지금 그 언어학을 기반으로 디자인의 본질적인 개념을 살피는 중입니다. 디자인(de+sign)은 언어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2) '기본층위 범주'란 무엇인가

A가 어떤 대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동물이네" 그럼 상대방은 그걸 어떻게 알아들을까요? 무언가 움직이는 동물이긴 한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어떤 동물인데?" 질문을 듣고 자세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뿔이 있고 귀가 크고 덩치에 비해 눈이 작고 코가 특이해"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어떤 동물을 연상할까요? 이 동물이 바로 코끼리라는 것을 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A가 처음에 '동물'이나 '자세한 설명'이 아니라 바로 "이것은 코끼리네"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바로 이미지를 연상했을 것입니다. 굳이 어떤 동물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고, 자세한 설명을 듣고 궁리할 필요도 없겠죠.
말에는 '코끼리'처럼 어떤 말을 들었을때 바로 이미지가 연상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겉보기와 속들이가 투명한 의미기호이기에 소통이 아주 수월합니다. 이를 언어학자 레이코프와 존슨은 '기본층위 범주(basic-level categories)'라고 말합니다. 기본층위범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레이코프와 존슨이 기술한 내용을 길게 인용해 보겠습니다.


[기본층위 범주 (<몸의철학> 레이코프와 존슨)]

왜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수세기에 걸쳐 그처럼 인기를 누렸는가? 왜 우리의 개념들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즉 우리 마음의 범주들이 이 세계의 범주들과 부합된다고 그처럼 흔하게 느끼는가?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진화해서 적어도 하나의 중요한 범주 부류인 이른바 '기본층위 범주(basic-level categories)'를 형성했기 때문인데, 이 범주 부류는 자연환경 속의 개체들과 어떤 매우 중요한 차이들에 대한 우리의 신체적 경험에 가장 적절하게 부합된다.

우리의 지각 체계는 소와 말, 염소와 고양이, 또는 코끼리와 기린으 구분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자연계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구분하는 범주들은 생물학적 속屬들의 통속적 버전인데, 이 속은 자신들 환경의 다른 특징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유의미하게 구별되는 형태로 진화해 왔다. 생물학적 위계에서 한 층위 내려가면 코끼리의 한 종과 다른 종을 구분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물리적 대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차와 배 또는 기차를 구분하기는 쉽지만, 한 종류의 차를 다른 종유릐 차와 구분하기는 한층 더 어렵다.

범주 위계, 가구-의자-안락의자와 탈것-자동차-스포츠카의 중간에 있는 범주 의자와 자동차를 생각해 보라. 1970년대 중반에 벌린과 로쉬, 머비스와 그들의 동료들은 그러한 중간층위 범주들이 인지적으로 '기본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즉 중간층의 범주들은 가구 및 탈것과 같은 '상위범주'와 안락의자와 스포츠카와 같은 '하위범주'와는 대조적으로 일종의 인지적 우월성을 갖는다.



기본층위 범주의 몸에 근거한 특성

기본층위 범주들은 심상, 게슈탈트 지각, 근육운동 프로그램, 지식 구조와 같은 우리의 몸, 두뇌, 그리고 마음의 양상들에 의해 상위범주들과 구분된다. 벌린과 로쉬가 발견한 기본층위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조건1 : 기본층위는 단일한 심상이 전체 범주를 표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층위이다. 예를 들면, 여러분은 의자의 심상을 가질 수 있다. 여러분은 탁자나 침대와 같은 기본층위에서 다른 범주들의 심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일반적인 가구 하나, 예컨대 의자, 탁자, 또는 침댁 아닌 더 일반적인 것에 대한 심상을 가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자동차에 대한 심상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여러분은 기차, 배, 또는 비행기와 같은 이 층위에 대립되는 범주들의 심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일반화된 탈것, 즉 자동차도 기차도 배도 비행기도 아닌, 일반적인 탈것의 심상을 가질 수는 없다. 기본층위는 우리가 전체 범주를 가리키는 심상을 갖는 가장 높은 층위이다.

조건2 : 기본층위는 범주 구성원들이 유사하게 지각되는 전체적 형태들을 갖는 가장 높은 층위이다. 여러분은 의자나 차를 그것의 전체적인 형태에 의해 인식할 수 있다. 여러분이 그 형태로부터 그 범주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반화된 가구나 탈것에 부여할 수 있는 전체적인 형태는 없다. 기본층위는 범주 구성원들이 게슈칼트 지각(전체적 형태의 지각)에 의해 인식되는 가장 높은 층위이다.

조건3 : 기본층위는 한 사람이 범주 구성원들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유사한 근융운동 행위를 사용하는 가장 높은 층위이다. 여러분은 기본층위에 있는 대상들, 즉 의지, 탁자, 또는 침대와 상호작용하기 위한 근육운동 프로그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일반화된 가구와 상호작용할 근육운동 프로그램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조건4 : 기본층위는 우리 지식의 대부분이 조직화되는 층위이다. 여러분은 기본층위에 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잠시 동안 여러분이 자동차에 관해 알고 있는 것과 탈것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을 견주어 생각해 보라. 여러분은 일반적인 탈것에 관해서는 약간 알고 있는 반면, 자동차에 관해서는 매우 많이 알고 있다. 여러분이 전문가가 아니라면, 더 낮은 층위 범주들에 간해서 훨씬 더 적게 알고 있다.

이런 특성들로 미루어 볼 때, 기본층위는 상위층위나 하위층위에 비해서 우월성을 갖는다. 즉 기본층위 범주들은 어린이들이 더 일찍 명명하고 이해하며, 어휘 목록에 더 일찍 들어오고, 가장 짧은 일차 어휘소를 가지며, 피실험자들에 의해 더 빨리 식별된다. 또한 기본층위는 중립적 문맥, 즉 어느 층위가 가장 적절한지에 관해 분명한 표시가 없는 문맥에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인간 마음에 관한 총체적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들이 개념들의 중요한 특성이며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기본층위 범주에 대한 설명은 인용문으로 된 것 같으니 이제 그림을 살펴보죠. 위 그림에는 식물과 나무와 나무사진이 있습니다. 이중 가운데 '나무'가 기본층위이고, '식물'이 상위층위, '나무사진'이 하위층위입니다. 우리가 '식물'이라고 말하면 딱히 떠오르는 명확한 이미지는 없습니다. 숲이 연상되고, 나무, 풀 등이 연상되면서 복잡한 이미지들이 엉킵니다. 어떤 사람은 숲을, 어떤 사람은 나무를, 어떤 사람은 풀을 떠올릴 수 있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소통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반면 '나무'라고 말하면 즉각적으로 어떤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연상된 이미지는 다른 사람들이 연상한 이미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자든 그림이든 소통이 어렵지 않죠. 마지막으로 '나무사진'은 무엇일까요? 나무라는 것은 알겠는데 특정 나무 모습이라 나무의 이름이 궁금해집니다. 나무 연구가라면 즉각적으로 나무이름을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나무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식물과 나무사진은 소통에 있어 걸림돌이 있습니다. 식물은 말은 있는데 시각적 이미지가 애매합니다. 나무사진은 분명한 시각적 이미지가 눈앞에 있는데, 나무이름을 정확히 몰라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나무'는 말과 이미지에 있어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특정 나무와의 특별한 경험도 필요없죠. 위 인용문에서 말한 탈것-자동차-자동차사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제가 예시로 들었던 동물-사람-사람사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간층위의 '자동차' '사람'이 다른 층위보다 훨씬 소통하기 좋습니다.

기본층위 범주는 소통가능성이 높은 말들입니다. 이 말들은 모두 겉보기 그림과 속들이 말의 연결이 매끄러운 상태입니다. 감각이미지와 생각이미지가 일치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소통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식물과 탈것, 동물 등 상위층위의 보편어들은 딱히 떠오르는 감각이미지가 없거나 사람들마다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아 소통이 어렵습니다. 감각이미지와 생각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진 혹은 개별적 경험과 마찬가지입니다. 각자가 가진 감각이미지에 대한 생각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벤츠 자동차 사진의 경우 어떤 사람은 그 자동차를 갖고 싶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 자동차를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일치하지 않아 소통의 가능성이 떨어지겠죠.

오랜만에 스콧 맥클라우드의 도식을 떠올려보죠. 지각삼각형 안의 그림삼각형과 문자삼각형이 있었습니다. 언어경로에서 왼쪽 꼭지점은 사진과 같은 사실적 그림이었습니다. 이는 하위층위와 같은 개별적인 경험입니다. 의미요소가 풍부해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영역이죠. 반대로 '동물'이나 '탈것'은 문자삼각형의 오른쪽 꼭지점에 해당됩니다. 의미 보편성이 높은 상위층위 단어죠. 단어의 의미가 많이지면서 그림영역과 멀어져 있습니다. 이제 짐작하시겠죠. 그림삼각형과 문자삼각형의 경계 근처에 있는 얼굴 아이콘과 '얼굴'이라는 단어가 인접한 지점이 바로 기본층위 범주입니다. 얼굴 아이콘의 의미 맥락과 '얼굴' 단어의 의미 맥락의 공통분모가 살아있는 영역이죠. 이렇게 그림과 단어가 서로 인접하여 공통분모가 형성된 말은 바로 경험적 신경패턴을 활성화시키기에 소통이 수월해집니다.




3) 기본층위 범주의 형성

좀더 자세하게 기본층위 범주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코끼리를 감각적으로 직접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독특한 코끼리의 모습이 머리 속에 새겨집니다. 대부분 그림에 나와 있는 단순한 아이콘 형태로 새겨질 것입니다. 최초로 코끼리를 본 사람은 이 동물의 이름을 몰라 "이것"이라고 말합니다. 한국말로 "이"는 눈앞의 실체를 의미하고, "것"은 순수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는 눈앞에 있는 존재적 실체를 가르키죠. 이때 "이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코끼리 아이콘이 새겨진 상황입니다.

코끼리를 인식한 사람은 코끼리의 다양한 특징들을 고려합니다. 덩치가 크고, 귀가 크고, 뿔이 있고, 코가 길고 등등 새로운 경험정보를 기존에 기억된 정보들과 섞어서 이 동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포착합니다. 가령 "코가 길다"는 정보를 선택했다고 하죠. 그러면 이 정보를 갖고 말을 만듭니다. "코+길이=코끼리"라는 말이 만들어지죠. 그러면 그 사람은 "이"에 상응하는 "이"를 붙혀 "이것은 코끼리이다"라고 말합니다. 한국말로 "다"는 "이것"과 "코끼리"의 대응관계를 말합니다. 영어로 하면 'is'에 해당되죠. 이렇게 만들어진 말이 이미지와 단어가 동시에 연상됩니다. 이 연상작용이 경험을 공유한 모두에게 인정되면 '코끼리'라는 말은 공공적인 소통기호가 됩니다.

위 그림은 기호가 형성되는 즉, de+sign되는 과정을 도식화시킨 그림입니다. 도식에는 겉보기=기표와 기호, 속들이=기의, 기호가 순환되고 있습니다. 겉보기의 경우 사람만이 아니라 신경계를 가진 동물과 곤충까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신경계를 가진 동물은 모두 겉보기로 밖에 있는 대상을 감각합니다. 사람의 경우 주로 대상을 인지하는 반면 개는 냄새로 대상을 인지합니다. 시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대상이 인지되면 감각과 기억이 종합되어 하나의 지각을 형성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신경들이 하나의 묶음 혹은 패턴으로 연결됩니다. 경험이 신경에 새겨진는 것이죠. 이 신경패턴은 하나의 지각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이때 형성된 지각 이미지는 인지하는 동물의 특징을 반영합니다. 후각이 발달된 개는 후각이미지를, 시각이 발달한 사람은 시각이미지가 형성되겠죠. 이 과정은 대부분 무의식중에 이루어집니다.

여기서부터 사람과 개가 나누어집니다. 개는 경험이 한번 신경패턴으로 형성되면 그 자체로 유지됩니다. 그 자체가 속들이=기의로 유지되죠. 하지만 사람은 무의식중에 연결된 신경패턴에 또 한번의 변화를 주게 됩니다.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묻따풀과 깨익배를 추구합니다. 즉 몸에 새겨진 신경패턴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죠. 이 생각의 과정은 분석과 분류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과학科學'입니다. 우리는 과학을 쓰임뜻으로 사용하기에 너무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의 짜음뜻을 살피면 한자어인 '과科'는 분류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분류하는 행위전체를 과학이라고 볼 수 있겠죠.

생각을 분류한다는 것은 말의 범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어떤 경험이 말소리로 정착되면 그 말은 일종의 원형입니다. 이 경험=소리의 원형이 비슷한 경험들과 연관되면서 새로운 말이 만들어집니다. 앞서 언급한 물과 물다, 무게, 무겁다에서 보았듯 '물'이라는 원형에서 유사한 소리를 가진 다양한 말이 만들어졌죠. 이를 레이코프와 존슨은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해 '가족유사성에 의한 말의 범주형성'이라고 말합니다. 한국말로 하면 "바탕을 함께 하며 분류된 말들"입니다.

'과학=분류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며 말을 만들거나 익히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경험들의 공통점을 범주로 구분해 어떤 대상을 무엇으로 여기는 행위를 합니다. 이때 '여기는'는 행위가 바로 생각행위입니다. 어떤 대상을 '무엇'으로 '여긴다'는 것은 그 둘의 공통 바탕을 찾아 말로 연결시킨다는 말입니다. 이때 나만의 개별 경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보편 경험이 고려되어야 하기에 보편적 상상력이 요구됩니다. 그렇게 형성된 말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되겠죠. 그렇게 여겨진 말은 공감각적 지각을 바탕으로 형성된 생각이미지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말소리 겉보기=기표'입니다.

이 말소리 겉보기는 청각이미지이기 때문에 시각이미지로 전환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문자가 있죠. 문자를 통해 말소리 겉보기를 시각적 겉보기로 전환가능합니다. 문자를 통해 시각화된 말소리는 보편성을 갖고 있기에 소통이 가능해지죠. 우리는 이를 문장 혹은 글이라고 말합니다. 글은 말소리 겉보기들을 시각화시켜 기록하고 소통하는 매체입니다. 이 글이 있기에 사람들은 더욱 풍성한 생각과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글을 통해 소통함으로서 집단지성이 형성되고 이 집단지성에 의해 기술과 문화, 문명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한가지 더 언급하면, 최봉영 선생님은 겉보기를 통해 신경다발이 형성된 것을 새김새라고 말합니다. 사람과 동물은 모두 이 새김새를 통해 새김뜻을 알게 되죠. 한국말로 감각자질에 의한 새김새를 '얼'이라고 말합니다. 이 '얼'이 바로 무의식중에 형성된 지각형식입니다. 이를 '얼'이 의식으로 떠오르면서 '뜻'이 됩니다. 즉 새김새가 새김뜻이 되는 것이죠.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새김뜻은 쓰임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새김뜻을 다시 분석, 분류, 해체해 짜임뜻을 살피게 됩니다. 이를 새로운 경험에 은유해 새로운 말을 만들죠. 최봉영 선생님은 이를 바탕뜻이라 말합니다. 새김과 경험의 바탕을 쳐서 바탕뜻을 만드는 것이죠. 이를 통해 사람은 새김새로 형성된 신경패턴에 바탕치로 형성된 신경패턴을 더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지각을 넘어 더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레이코프와 존슨은 이 바탕치기를 '은유(메타포)'라 말하고, 최봉영 선생님은 은유만이 아니라 직유, 환유, 제유 등을 포괄해 '여김'이라고 말합니다. 이 '여김'을 포괄적인 의미에서 은유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이 여김이 바로 사람의 '넋'을 만듭니다. 넋은 사람만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개도 넋이 있지만 인간처럼 고도로 복잡하지 않거든요. 사람의 넋은 복잡한 범주를 통해 다양한 연결이 가능합니다. 이 연결은 경험을 초월하는 새로운 신경패턴을 형성하죠. '생각'이 바로 이 연결의 세계입니다. 데카르트는 이 연결의 세계를 '존재'로 여긴 것이죠. 이 또한 사람이기에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김이 형성되는 과정을 예를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동굴에서 나온 신석기 사람들은 마치 천막같은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초원의 천막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 천막은 몇개의 막대기를 기울려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 집 모양이 사람들에게 '삼각형'이라는 추상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부터 데카르트와 스콧 맥클라우드에 이르기까지 삼각형을 많이 다루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지붕으로 돌아오면 이때 막대기와 막대기를 기댄 것을 한국사람들은 '서'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이 말은 살아있어 지붕을 맡댄 나무들을 '서까래'라고 말합니다. 이 '서'는 지붕을 서있게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지님말(verb) '서다'가 나왔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주로 바다가와 강변에 살았습니다. 바다엔 항상 서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섬'이죠. 앞서 말했듯 사람들은 지면위로 올라온 것을 '바위'라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다위로 올라온 것은 '바위'라 말하지 않고, '섬'이라 말합니다. 섬의 모습에서 지붕의 서가 서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죠. 우리는 이런 소리의 원형과 가족유사성을 통해 '서까래'와 '서다' '섬'이 경험적 인과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서다'와 '섬'라는 말은 '서'라는 경험과 원형적 소리를 기반으로 창발된 말인 셈이죠.
사실 발음소리는 비슷했지만 '서다'와 '섬' '서까래'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에 이제 우리는 '서다'와 '섬' 그리고 '서까래'를 개념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가 이 말들의 바탕뜻을 통해 이 말들이 상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럼 그 말이 더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왜냐면 '섬'이란 말소리를 시각적 이미지가 단순히 바다위의 섬들만이 아니라 '지붕=서'와 '서있는 모습'의 이미지까지 연상되니까요. '섬'이란 말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사실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앞서 '물'과 '물다', '불'과 '불다'에서 우리는 '물다'라고 말하며 '물'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물다'를 말하면 '물'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죠. 물과 물다의 상호성을 몰랐을 때 '물다'라는 말의 의미를 물어보면 상당히 애매합니다. 그냥 '무는 것이지'라는 동어반복적인 대답만을 하게 되죠. 그런데 '물다'가 '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물'을 이미지로 은유해 '물다'는 "물에 손을 담그는 것 같은 느낌이야"라고 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명석판명하게 상상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물다'라는 말의 의미와 소통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죠. 이렇듯 감각과 생각이 연결된 말의 범주가 레이코프와 존슨이 말하는 '기본층위범주'입니다.




4) 기본층위 범주의 사유과정

앞서 저는 영어의 문장은 크게 3개의 성분으로 구분되어 구성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국말로 주어로 잘못 번역되는 주제어 Subjcet는 곧이쪽마디말이고, 목적어로 잘못 번역되는 대상 Object는 맞이쪽마디말, Verb는 풀이것마디말입니다. 이 3개의 성분을 갖고 기본층위 범주가 어떻게 말로 구성되는지, 그 사유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림에서 검은색 점은 말하는 사람이 주제를 정하는 곧이말(Subjcet)이고, 흰점은 곧이말에 따라 나오는 맞이말(Object)입니다. 사람이 처음 코끼리를 만난다고 상상해보죠. 우리는 '코끼리'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처음 코끼리를 접하는 사람은 이름을 모릅니다. 그냥 크고 이상하게 생긴 동물을 경험한 것이죠.

두 사람이 함께 숲을 거닐다가 눈앞에 이상하게 생긴 동물이 걸어옵니다. "우와 저건 뭐지?" "처음 보는 동물인데, 이상하게 생겼다!"라며 두 사람은 놀라워할 것입니다. 둘은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만 각자가 주목하는 특징이 다릅니다. 한 사람은 이 동물의 귀, 다른 사람은 코를 주목합니다. 둘은 '이 동물'이라는 같은 곧이말을 갖고 있지만, "귀가 크다" "코가 길다"라고 각기 다른 맞이말을 떠올립니다. "이 동물"과 대응되는 맞이말이 '귀'와 '코'로 달라지니 Verb에 해당되는 풀이도 '크다'와 '길다'로 달라집니다. 물론 이 동물은 귀가 크고, 코도 길기 때문에 둘다 틀린 것은 없습니다. 다만 경험과 이에 상응하는 대상이 다소 다를 뿐이죠. (주석:최봉영 선생님은 "코가" "귀가"에서 "가"는 곧이말의 겿말(토시)에 해당되기에 "코가"는 맞이말이 아닌 곧이말이라고 말합니다. 한국말에서 곧이말은 5가지로 구분되는데, 으뜸곧이와 딸림곧이가 있습니다. 코끼리의 경우 "코끼리는 코가 길다"라고 말할때 "코끼리는"는 으뜸곧이이고 "코가"는 코끼리에 딸린 코를 지칭하기에 코끼리에 코가 딸려 있다는 의미에서 "딸림곧이"에 해당됩니다. 이 글에서는 내용의 흐름상 "코가"를 딸림곧이라 말하지 않고, "이 동물"에 대응되는 "맞이말"로 말합니다.)

두 사람은 같은 동물을 경험했지만 주목한 특징이 다릅니다. 그래도 서로를 존중하기에 합의를 보아 그림을 그립니다. 귀가 크고 코가 긴 단순한 그림을 그리죠. 이때 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코과 귀 이외의 다른 특징들은 무시됩니다. 덩치나 상아 같은 부분은 모두 생략되죠. 경험이 단순화 되어 다소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귀가 크고, 코도 길게 그려졌기에 중요한 특징들은 모두 살렸습니다. 즉 둘이 생각한 곧이말과 맞이말, 풀이것이 모두 만족되는 상황이죠. 그렇지만 둘은 이 동물의 '귀'와 '코'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상이 여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둘 모두 그림기호를 보고 자신이 경험한 동물을 떠올릴 수 있죠.

이를 연역적 사유라 말합니다. 연역적 사유란 어떤 선입견으로 그 대상을 판단하는 과정입니다. 가령 항상 남에게 양보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나는 이 친구가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양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나에게 호소합니다. 그러면 나는 "그 친구가 그럴리 없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듯 어떤 고정된 생각을 갖고 판단하는 것이 연역적 사유입니다. 연역적 사유는 주로 성서나 불경 같은 종요의 경전을 읽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경전이 틀리면 안되니까요. 연역적 사유가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수학'입니다. '+(더하기)' 기호는 일종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1+2는 3이죠. 4+5는 9입니다. 여기서 숫자는 바뀔 수 있지만 '+' 기호는 바뀔수도 없고 바뀌어서도 안됩니다. '+' 기호가 고정되어야 약속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듯 연역적 사유는 하나의 기호를 놓고 다양한 결과를 예측하는 사고과정이죠.

단순화된 그림이 그렇습니다. 단순화된 그림은 대상의 특징을 반영합니다. 단순화된 얼굴 아이콘은 특정 개인만이 모든 사람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콘을 보고 "얼굴이네"라고 생각하게 되죠.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모두의 얼굴이네"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동물의 그림을 그린 두 사람은 "내가 본 그 동물이네"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림을 놓고 둘은 연역적 사유를 한 것이죠.

둘은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친구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을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친구들은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물을 상상합니다. 친구들은 동물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온갖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15세기 독일의 화가 알베르히트 뒤러는 동방에서 이상한 동물이 발견되어 가져온다는 말을 듣고 그 동물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동물을 싣고 오던 배가 남파되어 결국 그 동물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뒤러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동물의 그림을 그립니다. 그 동물은 바로 코뿔소였습니다.




뒤러는 앞선 그려진 코끼리보다 훨씬 자세하게 동물을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사람들은 오랫동안 코뿔소가 이렇게 생겼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디테일한 면은 많이 다르지만 제법 비슷하게 그리긴 했습니다. 뒤러의 표현력과 상상력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이죠. 뒤러는 이 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 갖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를 '가설과 추론'이라고 말합니다. 동물을 보고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 몇장과 들을 이야기를 종합해 자신만의 가설을 세우고 다시 이를 추론해 그림으로 상세하게 표현했겠죠.
현대사회에서 가설과 추론은 과학자들의 사유법이라 불립니다. 과학자들은 어떤 자연 현상을 접하면 나름의 가설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하죠. 통제된 실험을 통해 현상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가설이 맞는지 틀린지 검증합니다. 가설이 검증되면 이를 정리해 논문을 발표합니다. 다른 과학자들은 이 논문에서 말하는 실험과 관찰을 재현해 그 가설을 재검증합니다. 재검증에 성공하면 가설은 사실이 됩니다.

가설과 추론에 의한 사유방법은 16세기 프란시스 베이컨이 처음 시도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과학은 이 과정을 통해 급격하게 발전해 왔습니다. 가설과 추론은 수천년동안 이어진 연역적 사유를 송두리채 바꾸어 버립니다. 요즘 사람들도 열심히 종교를 믿습니다. 하지만 내일 날씨가 궁금하면 경전을 펼치거나 점을 치지 않고 기상청 정보를 찾습니다. 중요한 정보는 종교보다 과학을 믿는 편이죠.
가설과 추론의 과정은 마치 추상화된 요소들을 갖고 여러가지 시도를 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곧이말과 맞이말, 둘 사이의 풀이관계를 자유롭다고 생각해 S+V+O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상상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어떤 결론은 내야죠.
다시 두 사람이 경험한 동물로 돌아오죠.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유롭게 가설을 세우고 열심히 추론해서 결론을 냅니다. 귀가 큰 동물은 여럿이 있는데, 코가 긴 동물은 정말 흔치 않으니까 이 동물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귀가 크가"가 아니라 "코가 길다"라고 생각합니다. 귀가 크다고 생각한 사람은 동의할 수 없더라도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이 동물의 이름은 코가 길다라는 말을 반영해 "코길이=코끼리"라고 지어집니다.

사람들은 '코끼리'라는 이름을 통해 그 동물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를 문장구성으로 표현하면 '곧이말+(풀이것=맞이말)'이 됩니다. "코가 길다"는 맞이말 풀이가 곧이말에 대응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제 '코끼리'라는 말을 배우는 사람은 이 동물을 처음 접할때 "코가 길다"라는 선입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하고 종합해 어떤 결론을 내는 사고법을 '귀납'이라고 말합니다. 귀납적 사유를 '어떻게'를 고미하는 과정입니다. 앞서 연역적 사유에서는 '+'가 주어져 있었죠. 그렇다면 최초의 누군가 이 '+'기호와 더하기 개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기호에 동의함으로서 '+'는 일종의 약속된 체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귀납은 바로 이 '+'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정리하면 귀납적 사유를 하려면 먼저 최초의 경험이 있어야만 합니다. 즉 곧이말이 있어야 하죠. 그 다음은 곧이말과 관계된 맞이말들이 필요합니다. 이 관계가 바로 연역된 그림이죠. 이 연역된 그림과 여러 가설을 토대로 다양한 추론이 일어납니다. 모든 의견을 검토하고 나서 결국 하나의 의견으로 종합하죠. 이렇듯 앞서 두 사람이 동물을 경험하고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서 그 동물의 이름을 지은 과정이 바로 '귀납'입니다.

말은 여러 사람의 귀납적 사유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말에는 집단지성이 함축되어 있죠. '코끼리'처럼 단순하게 꼴을 반영한 말도 그렇습니다. 이름에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이 동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코가 길다'라는 판단이 들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이름을 통해 코끼리의 특징을 바로 인식하게 됩니다. 일종의 선입견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만약 최초의 발견자들이 '코끼리'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면 이 지난한 과정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둘 모두 "저기봐 코끼리다"라고 말하고 지나갔겠죠. 집에 가서도 "나 숲에서 코끼리 봤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응 그랬구나"라는 정도로 대응할 것입니다. '코끼리'라는 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이미 단순화된 코끼리 그림이 있고, 코끼리라는 이름을 통해 이 동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코가 길다'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딱히 신기할 것도 없으니까요. 앞서 말한 기본층위 범주를 공유한 상황이죠.
기본층위 범주는 그림기호와 문자기호가 상호적으로 연결된 말입니다. 얼굴 아이콘과 '얼굴'은 서로 쉽게 매칭됩니다. 서로 매칭이 잘되는 이유는 우리가 얼굴을 그런식으로 경험하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기본층위 범주 형성이 꼭 아이콘과 같은 그림일 필요는 없죠. 코끼리를 경험한 사람은 '코끼리 사진'과 '코끼리' 이름의 연결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비록 사진이지만 코끼리를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 '코끼리'라는 이름이 공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코끼리 사진'에 '코뿔소'가 써있다면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경험상 전혀 매칭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코끼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그냥 그런가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겠죠. "이 동물 이름이 코뿔소인가?"하면서요.

이 사례에서 우리는 기본층위를 형성하는 이미지가 꼭 아이콘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보편적으로는 아이콘이 기본층위 형성에 유리합니다. 하지만 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사진과 추상적 심벌의 이미지도 기본층위 범주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그림기호와 문자기호가 일치된 문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표의문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왜 인류가 표의문자를 최초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자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보편적인 생각을 기록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표음문자 체계를 발명했습니다. 표음문자로 말소리를거의 정확히 기록함으로써 더 많은 생각을 기록하고 집단지성을 키워나갈 수 있었죠.

위 그림에는 검은색 점과 흰 점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래에 겉보기 옆에 있는 점은 검은 점과 흰 점이 1:1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겉보기 경험은 이런 것입니다. 앞서 경험적 이미지는 신호등 같은 시그널과 화살표 같은 인덱스와 유사한 상태라 말했습니다. 이처럼 최초의 경험되는 감각이미지는 경험하는 사람과 경험되는 대상의 1:1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말할때 곧이말=subject가 정해지면 따라오는 맞이말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지님말이 정해진 상황입니다. '곧이말(S)=지님말(V)=맞이말(O)'의 상황이랄까요.
감각이미지들이 신경패턴으로 연결되어 지각되면 그림기호와 같은 시각이미지가 형성됩니다. 이 그림기호는 1:다수(多)의 상황입니다. 그러면 곧이말과 맞이말, 지님말의 관계가 다소 자유로워집니다. 아이콘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얼굴 아이콘은 '윤여경' 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눈코입을 가진 모든 사람람을 포함합니다. 검은색 점이 얼굴 아이콘이고 여기에 연결된 흰 점들이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경험을 그림기호로 표현한 아이콘 혹은 표의문자가 되면 직접적인 경험에 비해 곧이말과 지님말, 맞이말의 흐름이 다소 유연해집니다. 곧이말은 고정된 상태에서 지님말과 맞이말을 다양하게 적용시킬 수 있죠. 그래서 그림에 '(곧이말=풀이것말)+맞이말'라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더 추상화되면 얼굴의 보편적 이미지가 사라지고 추상화된 심벌이 됩니다. 추상화된 심벌은 다수(多):다수(多)의 상황입니다. 곧이말과 맞이말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지님말의 관계가 완전히 자유로워진 상황이죠. 가령 추상화된 원은 얼굴이기도 하지만 얼굴이 아니기도 합니다. 동그란 것은 어떤 대상(맞이말)을 끌고와도 상관없죠. 이처럼 곧이말과 지님말, 맞이말이 서로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곧이말+풀이것말+맞이말'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표의문자적 아이콘에 머물지 않고 추상화된 요소에 소리를 부여해 표음문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추상화된 원은 '이응'과 같은 문자가 되었습니다. 이 문자들을 조합해 말소리 '얼굴'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문자들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합니다. 한글의 경우 점과 선, 면으로 만들어진 수십개의 요소를 조합해 수없이 많은 단어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된 '얼굴'은 여러 의미를 내포합니다. 단순히 사람의 얼굴만이 아니라 동물의 얼굴, 곤충의 얼굴 등 얼굴을 가진 모든 것의 얼굴을 의미하죠. 다양한 얼굴이 하나의 소리 "얼굴"에 대응된다는 점에서 다수(多):1와 같은 상황입니다. 이를 문장구성으로 말하면 곧이말과 지님말이 목적에 맞추어 편집된다는 점에서 '곧이말+(풀이것말=맞이말)'라 말할 수 있습니다. 청각이미지인 문자로 편집된 단어는 시각이미지인 아이콘에 비해 훨씬 보편적인 의미를 담고 있죠. 이 보편적 단어인 "얼굴"은 다시 겉보기=기표 경험의 기반이 됩니다.

정리하면 직접 경험으 '곧이말(S)=지님말(V)=맞이말(O)'이고 연역적 사유는 '(곧이말=풀이것말)+맞이말', 가설과 추론은 '곧이말+풀이것말+맞이말, 귀납적 사유는 '곧이말+(풀이것말=맞이말)'에 해당됩니다. 다소 어렵지만 제가 굳이 이 흐름을 구분하고 나열한 이유는 이 과정이 경험이 생각으로 연결되는 과정인 동시에 말 혹은 의미기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간다히 말해 '디자인(de+sign)' 이루어지는 흐름이자 맥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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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저술가, 이론가, 교육자다. 저서로는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지콜론북, 2014),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2017),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이숲, 2020)가 있으며 『디자인평론』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그린디자인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경향신문 정보 그래픽 디자이너,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한다. 2017년부터 디자인대안학교 디학(designerschool.net)을 운영하며, 한국말 공부 모임 ‘묻따풀 학당’에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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