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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언어 1강

윤여경| 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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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쥬얼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시각언어입니다. 시각적인 이미지를 수단으로 소통하는 언어죠. 그래서 시각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각적 이미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언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하겠죠.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 이미지가 어떻게 구성되고, 다시 그것이 어떤 과정에 의해 언어가 되는 지 살펴보려 합니다.




1)강의를 시작하며

사람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언어는 말입니다. 말을 분석해 이론화 시킨 것이 문법입니다. 이것은 일본말입니다. 서양에서는 grammer, 중국에서는 어법이라고 말합니다. 한국말로는 말을 차린다는 의미에서 말차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문장을 주어, 목적어, 동사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시절 한국사람들은 이 번역어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이 말들은 영어 Subject, Object, Verb의 번역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연구하시는 최봉영 선생님은 본래 서양말의 의미를 보면 이 번역이 상당히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일단 Subject는 서브와 젝트의 합성어입니다. 서브는 아래를 의미하고 젝트는 쏜다입니다. 아래로 쏘다, 즉 서브젝트는 말하는 사람이 아래로 뭔가를 지시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주어라고 말하는 것이 본래 의미는 '신하'였습니다. 처음 번역한 일본사람들은 문장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Subject를 주어라고 번역했을지 모르겠지만 이후 사람들은 주어가 마치 주인=주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해를 낳다는 점에서 뭔가 크게 잘못 번역된 것이죠.
Subject는 주제라는 의미입니다. 정확히 말해 말하는 사람이 정한 주제입니다. "그가 밥을 먹는다" "책이 책상위에 놓여있다"라고 말할때 말하는 사람은 "그"나 "책상"이라는 주제는 주관적으로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제가 한번 정해지면 자유롭지 않습니다. 자신이 정한 주제가 처해있는 객관적인 맥락=논리를 의식해야 하거든요. 가령 '그'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책이 밥을 먹는다"라는 말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시인이라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겠지만 일상의 언어에서는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죠. 이 논리를 서양말로 '로고스logos'라 말합니다.
Subject는 주로 Object와 함께 합니다. Object는 일본과 한국문법에서 목적어라고 번역하는데 이 또한 적합하지 않은 번역입니다. "그"가 Subject라면 "밥"은 Object입니다. "책"이 Subject면 "책상"은 Object입니다. 이렇듯 Object는 Subject가 함께하는 대상입니다. 사건이나 물건이 오브젝트에 해당되죠. Subject와 Object는 함께 Verb라는 일을 공유합니다. "먹는다" "있다"처럼요. Verb 역시 동사라고 번역하는데 "있다"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번역이 잘못된 것이죠.

이렇듯 현재 일본과 한국의 문법 번역은 크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사람들은 스스로 문법을 디자인하지 않고 서양의 문법에 의해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문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디자인하지 못하고 일본문법에 의해 디자인되었죠. 물론 서양문법이 먼저 만들어졌기에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와 한국말이 전혀 다른 체계로 이루어져 있기에 영어의 문법을 한국말의 문법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저 참고정도면 충분하죠.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죠. 앞서 언급했듯 최봉영 선생님은 영국말차림과 일본말차림을 비교하면서 subject와 verb, object를 하나하나씩 묻고 따지며 이를 통해 주어, 동사, 목적어라는 번역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지적하며 본래 뜻에 적합하게 한국말로 번역했습니다. subject는 '곧이말', object는 '맞이말', verb는 '지님말'입니다. subject는 말하는 사람이 의도한 말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곧이말의 '곧'은 우리가 흔히 "이것은 곧 무엇이다"이라 말할때 쓰는 '곧'을 말합니다. 즉 말하는 사람이 의도하는 주제를 한국사람들은 '곧'이라 말하기에 subject눈 곧이말이라 불러야 마땅하죠.
object는 subject가 대상으로 삼거나 함께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object는 subject를 마주한다는 의미에서 '맞이말'로 번역합니다. 마지막으로 verb는 subject의 행동이나 상태를 의미하기에 동사처럼 행위만을 지칭하는 용어보다 일이나 꼴, 것(이)를 지닌다는 의미에서 '지님말'이 더 적합합니다. 앞으로 저는 subject는 '곧이말', object는 '맞이말', verb는 '지님말'로 사용하겠습니다.

한국말 말차림(문법)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형식과 내용, 이를 지칭하는 용어까지 완전히 새롭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려면 한국사람이 오랜시간 말해온 말의 구성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 구성은 일종의 문법, 어법으로 한국말로는 말을 차린다는 의미에서 '말차림'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지금 잘못된 말차림을 바로잡아야 하는 상황이죠. 최봉영 선생님은 오랜시간 한국말 말차림(문법)을 만들고 계십니다. 거의 완성 직전이죠. 이렇듯 한국말도 디자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말에 대해선 이 정도로 하고 한국말에 대해선 앞으로 종종 언급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곧이말, 맞이말, 지님말입니다. 꼭 기억해 두세요!

디자인은 '계획'입니다. 계획이란 주제를 정하는 것이죠.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운다는 말이고, 무슨 말을 할지 주제를 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일종의 주제입니다. 앞서 말했듯 주제는 자유롭게 정할 수 있지만, 그 다음의 논리는 마음대로 안됩니다. 주변의 맥락을 고려해서 논리적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디자인이든 계획이든 말이든 논리적으로 구성되어야 소통이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논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법칙을 이해할 필요가 있죠. 그 법칙을 알기 위해 우리는 먼저 데카르트를 만나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디자인 하는 사람

데카르트는 17세기 초에 살았던 철학자입니다. 철학에서는 이 사람을 근대사상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그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주 유명한 말이죠. 그럼 우리는 왜 데카르트가 이런 말을 했는지 맥락을 살펴야 합니다.

데카르트가 살았던 시절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살았습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검증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학문적 권위를 가진 신학자들은 그를 고발했습니다. 신학자들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주장하고 있었거든요. 재판이 열리고 갈릴레이는 결국 굴복합니다. 재판이 끝나고나서 교회는 그를 못믿었는지 갈릴레오를 가택 연금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아주 유명했습니다. 갈릴레이는 아주 존경받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거든요. 많은 지식인이 분노합니다.
데카르트도 그랬습니다. 게다가 그는 당시 아주 잔혹했던 종교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종교전쟁은 개신교와 카톨릭이 권력과 재산을 놓고 벌인 전쟁입니다. 고전과 신학을 열심히 공부했던 데카르트는 이 전쟁을 경험하고 자신이 배웠던 것들을 더 이상 믿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갈릴레오 재판과 전쟁은 데카르트의 생각을 바꿨습니다. 저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구나..."

데카르트는 의심을 통해 디자인되는 사람에서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그 동안 그의 생각 주제는 신이나 고전 등 전통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이 주제들은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습니다. 이제 그의 생각 주제는 자유를 갖게 됩니다. 정신이 해방된 것이죠. 하지만 새로운 주제를 정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그는 그 방법과 과정을 책으로 기술합니다. 그것이 데카르트 옆에 있는 책 <방법서설>과 <성찰>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문구는 <방법서설>에 있습니다.
<방법서설>이 방법에 대한 전체적인 서론이라면 <성찰>은 생각하는 방법을 소개한 책입니다. 그가 말하는 방법은 분해와 조립입니다. 어떤 사물(사건과 물건)을 대상(주제)로 정하면 그것들을 낱낱히 분해합니다. 사물의 쓰임을 알기 위해서는 그 짜임새를 알아야 하는것이죠. 가령 라디오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알려면 라디오의 부품들을 모두 분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조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해한 부품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면 라디오의 원리를 아는 것입니다. 즉 데카르트가 원리를 파악하는 방법은 분해와 재조립입니다.
그렇다면 분해하고 조립하는 사람이 중요해집니다. 어떤 대상을 주제로 정하고 분해-조립을 조작하는 사람이 바로 주체입니다. 이를 '조작적 주체'라고 말합니다. 이 조작적 주체가 바로 '디자인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디자인 되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디자인 하는 능동적인 사람입니다. 쉽게 말해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근대인입니다.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죠. 그래서 제가 쓴 책의 제목이 <역사는 디자인된다>입니다. 역사는 신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디자인된다는 말로 인간이 신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역사를 디자인한다는 의미입니다.





3) 대사-감각-지각-생각

사람은 뇌=신경이 있기에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세개의 신경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화론에 의하면 태초에 원핵생물이 있었습니다. 원핵생물은 입력과 출력이라는 단순한 원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먹고 싸는 행위죠. 이 원핵생물이 진핵생물이 되고 다세포생물이 됩니다. 6억년전즈음 다세포생물에 신경이 형성됩니다. 생물은 먹고 싸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먼저 생긴 신경계가 장신경계입니다.

장신경계는 몸 내부 맥락을 살핍니다. 몸 외부 맥락은 다른 신경계가 살핍니다. 바로 말초신경계입니다. 눈귀코입손 등 감각작용이 말초신경계가 외부를 살피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시각을 '본다'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로는 'see'에 해당되겠죠. 하지만 한국말 '본다'는 단순히 시각감각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에 쓰입니다. "맛본다" "들어본다" "만져본다" 심지어 "생각해 본다" "따져 본다" 등등 감각을 넘어서까지 사용하죠. 이 겉보기가 통틀어 말초신경계가 외부를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장신경계와 말초신경계는 각각 따로 작동됩니다. 이 신경계의 판단이 척수로 모여 중추신경계에 전달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뇌이죠. 중추신경에서는 종합적인 판단을 합니다. 장신경계의 대사과정과 말초신경계의 감각과정이 중추신경계에 모여 즉각적인 '지각'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때 기존에 경험되어 기억된 정보들도 크게 작용합니다. 기억은 아주 중요한 정보입니다. 감각이 10%라면 기억은 90%까지 작동하기도 하니까요.

지각이 즉각적 판단이라면 생각은 숙고하는 판단입니다. 즉각적 지각으로 정보가 이해되지 않으면 생각단계로 넘어갑니다. 우리가 의식하는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이죠. 사실 생각은 신경계 전체에서 2%정도입니다. 나머지 98%는 대사-감각-지각에 의해 이루어지죠. 데카르트는 의식(생각)이 인간존재라고 했고, 우리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사실 의식적 생각은 우리 존재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것이죠. 물론 이 작은 부분이 존재를 상당히 다르게 만들지만요.

대사 과정은 자율신경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고장나지 않는 이상 전혀 의식하지 않죠. 그나마 우리가 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감각과 지각입니다. 그리고 이 감각과 지각 그리고 생각이 시각언어에 있어 아주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매체는 문자입니다. 문자언어는 시간적 맥락으로 소통되고 이해되는 매체입니다. 음악처럼요. 반면 이미지는 공간적 맥락으로 소통되고 이해되는 매체입니다. 시간적 맥락은 의식을 작동시킵니다. 그래서 문자와 음악매체는 생각을 자극하죠. 반면 공간적 맥락은 무의식적입니다. 즉각적으로 느낌이 오죠. 즉 이미지 매체는 지각을 자극합니다.

이를 미술(회화)의 역사에 적용해 보죠. 여러분이 보았던 옛날 그림을 서양미술사에서는 고전미술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엄격히 말해 고전미술은 그리스-로마-르네상스 양식이지만 여기서는 19세기 이전 미술을 모두 고전미술이라고 생각해보죠. 이 고전미술은 주로 감각을 모방한 것입니다. 중세미술이나 이집트미술은 엄격한 형식을 고수하는데요. 장인들은 선생님과 선배들의 양식을 그대로 모방했습니다. 그리스와 르네상스 미술을 자신이 본 대상, 모델이나 물건을 모방합니다. 중세 장인이든 르네상스 미술가든 최대한 그대로 혹은 사실적으로 모방해야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세기 사진이 발명됩니다. 초상화 등 사실적 모방으로 먹고살던 미술사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사진기술보다 미술가들의 솜씨가 훨씬 뛰어났지만 결국 아무리 대단한 미술가도 대상을 그대로 모방하는 사진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란 것을 짐작했죠. 지금처럼 누구나 손에 사진기(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에서 초상화를 그릴 일은 별로 많지 않겠죠. 그래서 미술가들도 생존전략을 바꿔야 했습니다.

미술의 흐름은 아카데미 전문가들이 아닌 비전문가들에 의해 시작됩니다. 다시 인상파라고 비아냥을 받았던 화가들이 양식의 변화를 시작했죠. 초기 인상파들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표현이 각기 달랐습니다. 과거 고전미술처럼 객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주관적으로 대상을 그대로 그렸죠. 모네의 그림은 그렇습니다. 후배 미술가들은 모네의 주관적 모방에서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후기 인상파로 오면서 고갱과 고흐, 세잔 같은 사람들은 훨씬 더 자유롭게 주관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고흐는 감각대상을 모방하기 보다는 즉각적으로 떠오른 자신의 주관적 영감어 더 의지합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단순히 시각적인 느낌만이 아닐 청각과 촉각적인 느낌 나아가 어떤 향수까지 느껴집니다. 고전미술보다 훨씬 공감각적인 느낌이죠. 이는 고흐는 자신의 시각적 감각을 모방한 것이 아닌 모든 감각과 기억이 작동된 지각적 느낌을 재현했기 때문입니다. 고갱도 비슷합니다. 고갱은 아예 주제를 인간의 원시적 본능을 다룹니다. 고흐와 고갱 덕분에 형식과 내용면에서 미술은 기존의 고전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갑니다. 본래 고전미술은 소묘에 의한 객관적 형태를 토대로 그려졌다면 고흐와 고갱은 치밀한 소묘가 아닌 자유로운 필체에 의해 구성되었거든요.





세잔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순간적인 영감에 의지하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는 생각했습니다. 세잔에게 사과는 하나의 구로 보였습니다. 병은 원기둥, 산은 원뿔로 보였죠. 그는 그가 보는 대상들을 추상적인 형태로 환원합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대상에 적용해 그림을 구성합니다. 세잔은 이렇게 하는 것이 원근법에 의한 구성보다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전미술의 오랜 형식인 원근법을 무너뜨렸죠.

이렇듯 사진의 등장, 고흐와 고갱, 세잔의 시도는 미술에 새로운 혁명을 불러옵니다. 소묘와 원근법으로 구성된 고전미술은 더이상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점차 사람들은 인상파의 그림이 훨씬 더 열광하게 되었죠. 전문미술가들도 슬슬 인상파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미술가가 마티스와 피카소입니다. 이들은 고흐의 자유로운 표현과 세잔의 방법론에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마티즈는 색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빛을 몇가지 원색으로 환원하고 이 색들을 과감하게 사용합니다. 피카소는 형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대상을 추상적인 형태로 환원하고 형태들을 자유롭게 구성합니다. 가령 사람의 얼굴을 경우 눈과 코, 입, 귀, 패턴 등으로 분해한 다음 그것을 자유롭게 조작해 재조립하는 것이죠.

이 대목에서 뭔가 떠오르시지 않나요? 바로 데카르트가 <성찰>에서 기술한 방법론입니다. 분해과 조립 그리고 이를 조작하는 주체 말입니다. 17세기 사상가가 주장한 방법을 20세기 초 미술가들이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죠. 미술에서는 이를 콜라주, 몽타주라고 말하고 구성주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티즈와 피카소의 구성의 여러 미술사조에 영향을 줍니다. 네덜란드 지역에서 시작된 데스틸운동(더스타일운동)은 마티즈처럼 색채를 극단적으로 추상화시켜 색면을 구성합니다. 몬드리안이 대표적이죠. 러시아 지역에서 시작된 구성주의는 형태를 극단적으로 추상화시켜 구성합니다. 말레비치와 로드첸코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대상을 추상적인 요소로 분해하고 이를 편집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정리하면 고전미술가들은 감각을 모방해왔습니다. 사진이 발명되면서 인상파 미술가들은 감각을 종합하고 기억과 버무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지각을 재현해 왔습니다. 그리고 세잔 이후 현대 표현-구성주의 미술가들은 생각을 편집하는 콜라주를 활용했습니다. 전통에 의해 디자인 되던 미술활동이 새로운 기술과 사회 변화에 맞추어 디자인 하는 미술활동으로 변화한 것이죠.




4) 생각=존재의 부정

약 300년의 차이로 미술가들은 데카르트의 방법을 수용합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데카르트의 사상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먼저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에 대한 인식을 크게 바꿉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정신과 신체로 구분하고 정신은 신을 닮은 반면 신체는 기계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에 비해 신체를 폄하했지만 여전히 인간은 신을 닮은 존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다윈이 인간은 박테리아와 같은 조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당장 나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과연 인간의 신성함이 의심받기 시작합니다.

데카르트의 사상에서 더 큰 문제는 신체에 비해 정신이 위대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점을 공략합니다. 그는 종교와 정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경제와 사회라고 주장합니다. 종교과 정치 같은 상부구조는 경제와 사회라는 하부토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 것이죠. 데카르트처럼 정신과 신체 구분은 여전했지만 둘 중 정신이 아니라 신체를 더 중요시 여긴 것이죠.
마르크스는 신체적 노동을 강조합니다.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는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예술가입니다. 그는 미술공예운동을 주장했습니다. 정신적으로 타락한 미술을 부정하고, 신체적으로 경험하는 공예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많은 미술가들이 여기에 동조했습니다. 사진과 같은 기술의 변화로 미술가들은 위기를 느꼈거든요. 동시에 공장 기계의 발명으로 길드 공예가들도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리스는 미술가와 공예가가 손을 잡고 이 위기를 극복하자고 주장한 것이죠. 그리고 그 방향성은 고뇌하는 미술(순수미술)에서, 노동하는 인간(공예미술)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마르스크주의는 영국에서 시작해 독일과 러시아로 전해집니다. 생각-편집을 하던 독일과 러시아의 표현주의 미술가들은 마르크스의 사상과 미술공예운동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자신들의 활동을 순수미술에서 공예로 전환하기 시작합니다.
거의 동시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새로운 발견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프로이트의 무의식 발견입니다. 마르크스의 노동이 데카르트가 무시한 신체의 중요성을 되살렸다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데카르트가 강조한 정신=이성의 위대함을 부정합니다. 프로이트는 어릴때부터 쌓여온 무의식적 경험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주장은 심리학과 정신분석에 큰 영향을 줍니다. 사람들은 점차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분야간 자유로운 토론이 활발하던 빈의 학자들은 프로이트의 발견에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여기에 예술가들도 상당수 속해 이었습니다. 클림트와 코코슈카, 에곤쉴레 등 당시 빈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은 무의식을 표현하는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무의식의 출현은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던 의미를 해체하는 미술활동을 낳게 됩니다. 현대예술은 사실 뒤샹으로 대표됩니다. 뒤샹은 변기로 유명한 예술가입니다. 그는 변기를 변기를 화장실이 아닌 미술관에 전시함으로서 레디메이드라는 새로운 미술 장르를 개척합니다. 모방과 재현에 있어 이미 만들어진 대상을 직접 가져다 놓는 것만큼 완벽한 것은 없죠.
사실 이미지로 구성되는 미술은 즉각적인 표현매체입니다. 그래서 감각모방이든 생각편집이든 미술활동은 즉각적인 지각을 자극하는 활동입니다. 이 지각에 어떤 자극을 주느냐가 현대 미술의 핵심 과제가 되었죠. 표현주의 미술은 기존의 회화와 조각, 건축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사람들의 지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반면 뒤샹은 기존의 회화와 조각, 건축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 대상들의 의미조차 해체해 사람들의 지각을 자극합니다. 전통 예술매체인 회화와 조각의 의미가 해체되고 부정되면서 예술가들은 새로운 형식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미술사가들은 20세기 현대미술을 '형식주의'라고 규정합니다. 예술 형식이 계속 바뀌었으니까요. 이를 아방가르드 예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데카르트의 생각=존재는 정신만이 인간존재라고 규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이를 부정하고 새로운 관점을 내놓습니다. 인간존재는 정신보다는 신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죠. 덕분에 미술가들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습니다. 형식과 내용 모두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었죠. 한쪽으로는 전통을 새롭게 이어가는 방식으로, 다른 한쪽을 전통을 완전히 부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저는 전자는 현대디자인으로, 후자는 현대미술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5) 바우하우스의 등장

1919년 뒤샹은 파리거리를 걷다가 모나리자 엽서를 사서 수염을 그려넣습니다. 모나리자라는 기존 상식적 개념을 코믹하게 해체해 버린 것이죠.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위인의 얼굴에 테러를 저지르듯이. 같은 해 독일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라는 학교가 개교합니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앞서 말한 독일과 러시아 그리고 빈의 표현주의 예술가들이었습니다.
독일과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미술공예학교를 상상했습니다. 그들은 예술은 가르칠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공예중심의 커리큘럼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빈 출신의 요하네스 이텐은 예술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빈분리파 출신의 선생님에게 예술을 배웠고, 이를 응용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바우하우스에 합류합니다.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역사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뤄집니다. 앞으로 수업에서 계속 이 학교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디자인에 있어 바우하우스의 가장 큰 의의는 현대디자인 개념이 이 학교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개념을 갖고 디자인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의의입니다. 사실 생각-편집의 원조는 마티스와 피카소, 나아가 세잔입니다. 하지만 디자인역사는 그들보다 바우하우스를 더 주목하죠. 사실 르네상스에서 원근법을 처음 시도한 사람은 마사초와 브루넬리스키입니다. 하지만 이를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은 알베르티입니다. 그래서 미술사가들은 알베르티의 위대함을 찬양합니다. 바우하우스는 알베르티가 했듯 기존에 활용되던 방법을 개념화시키고 교육에 적용한 최초의 학교입니다.
바우하우스 교육에서 조각은 제품디자인, 회화는 그래픽디자인이 됩니다. 학생들이 조각과 그래픽에 필요한 각각의 요소와 재료들을 배우고 익혀 건축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쌓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실제 건축교육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건축적인 태도를 확실히 갖게 되었죠. 실제로 2차대전이후 바우하우스 출신 교사와 학생들은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활발한 건축활동을 하게 됩니다. 북한의 함흥 도시 계획을 바우하우스 출신 건축가들이 투입되었습니다.

데카르트의 생각-편집 방법론,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사상이 바우하우스에 모여듭니다. 바우하우스 교사와 학생들은 점선면 등 기하학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경험적인 형태를 만드는 실험을 거듭합니다. 사실 기하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점을 찍어도 그것을 확대하면 면이 되기에 '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죠. 점은 우리의 개념속에 존재할 뿐입니다. 선도 면도 그렇습니다. 삼각형이나 네모, 원, 입체 등등 기하학적인 표현은 모두 개념일 뿐입니다. 바우하우스의 교사와 학생들은 이 개념요소들을 가지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경험적 사물을 구성했습니다. 의자와 책상, 주전자, 옷감, 글꼴 등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은 현대미술가들처럼 새로운 형식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다만 현대예술가들처럼 개성 넘치는 아방가르드형식이 아니라 누구나 사용하고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형식을 추구했습니다. 이것이 현대미술과 현대디자인의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책상, 의자, 핸드폰, 옷 등등 우리의 생활양식은 바우하우스에서 비롯된 모더니즘 양식에 근거합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생활양식이 현대디자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바우하우스를 알고 디자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점에서 디자인을 배운다는 것은 취향을 갖고 예쁜 것을 만들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만이 아나리 우리시대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6) 디자인=요리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종합하면 '요리'에 은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리 과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요리를 하려면 먼저 재료를 준비해야 겠죠. 대상을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재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먼저 어떤 요리를 할지 주제(Subject)를 정하면 관련 재료(Object)는 자연스럽게 따라 나옵니다. 그리고 나름의 레시피를 갖고 요리=콜라주를 시작하면 됩니다. 요리를 하는 과정과 현대미술, 디자인을 하는 과정은 아주 유사합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미술과 디자인에 필요한 요리재료와 기존 레시피를 배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강의 구성을 살펴보면 크게 3가지 입니다.
1단계는 예술과 디자인의 요소들을 살펴봅니다. 우리는 20세기 초보다 학문적으로 더 발달했습니다.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갖게 되었죠. 새롭게 발견된 지식들을 갖고 그들이 발견한 형태와 색, 언어 요소들의 본질적 특성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사유방법을 이야기합니다. 데카르트의 사유 방법을 넘어 더 풍부한 사유 방법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2단계는 조작적 주체인 인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시대가 주목하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 인간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3단계는 예술과 디자인의 역사입니다. 사실 예술과 디자인의 이론 수업은 대부분 역사 수업입니다. 그래서 여러 다른 경로로 이런 내용을 접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선 단계들은 이 수업 외에는 들을 기회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3단계는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3단계는 다른 곳에서도 들을 기회가 많기에 이번 수업에서는 최대한 1~2단계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첫 시간부터 어려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한 이야기는 이번 강의의 전반적인 요약이기도 합니다. 다소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계속 반복해서 얘기될 것이니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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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저술가, 이론가, 교육자다. 저서로는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지콜론북, 2014),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2017),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이숲, 2020)가 있으며 『디자인평론』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그린디자인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경향신문 정보 그래픽 디자이너,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한다. 2017년부터 디자인대안학교 디학(designerschool.net)을 운영하며, 한국말 공부 모임 ‘묻따풀 학당’에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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